젊은힐러의 일상 스토리 #01
친한 형님에게서 한 통의 SNS 문자를 받았다. 지인분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비보였다. 사실 형님의 지인이기도 하면서 내겐 부서 선배이기도 했다. 소식을 들었을 무렵까지만 해도 감정요동 없이 평온한 상태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본인의 일만 아니면 크게 상관없다라는 알량한 생각이 0.00001% 정도 머릿속에 존재하다보니 내게도 당연했던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합리화 하고 싶었나보다.
만약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마음속 깊은 곳 나에게 질문을 던진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본다. 굳이 이런 죽음과 관련된 무거운 주제가 나와야만 자문자답하는 사태가 벌어져야만 했는지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치 볼 일을 다 보지못한 화장실 사례같이 찝찝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나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라면 무슨 기분일까? 심각하게 감정이입의 장단점을 지금에 와서 따질 필요는 없지만 생각을 꺼내 본 이상 슬그머니 집어넣기엔 너무나 늦어버렸다. 슬픈마음이 치밀어 올라오며 잠시나마 가졌던 0.00001%의 생각을 죄송함으로 변질시켜 함께 가지고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장례식장이 속한 병원까지 2시간 가량의 거리였다. 퇴근이 무섭게 탈출하듯 회사를 나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 속 퇴근인파에 물결치듯 떠밀려 지옥철이라 불리는 전철에 올랐을 때도 좀 전에 느꼈던 슬픔, 미안함 등의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멍함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병원이 보이기 시작하고 육교 위를 걷는 무렵 올려다 본 노을 머금은 저녁하늘이 장관이었다.
Q) 형님은 죽음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A) 죽음만큼 무의미한게 없지. 돈이든 명예든 다 부질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니까. 옛날에 조선시대 고어에서도 정승의 아버지가 죽으면 그 집에 사람들이 가득차지만, 정승이 죽으면 지나가던 개도 안 쳐다본다는 말이 있지.
이런 무거운 질문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는 바는 아니지만 답을 들었을 때, 그 대답자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형님은 항상 나와 인생의 참 된 의미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많은 의견을 나누다보니 인간관계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정도 나와 일치하게 형성이 되어 있다. 즉 이러나 저러나 세상과 작별을 고할 때 무의미 해지는 짧은 관계라면 조금 더 진심으로 슬퍼해 줄 인연들에게 쏟는 시간이 더 소중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주황색으로 물들은 저녁하늘을 바라보며 나의 부모님보단 내 자신의 죽음에 있어 이를 슬퍼해 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세아려 본다. 내가 인생을 잘 살았는가 못 살았는가는 이슈가 아니었다. 서울의 저녁하늘은 나에게 또 다른 숙제를 던져주는 느낌이었다.
산재라고 하신다. 용돈이라도 벌어보고자 취업한 직장에서 작업을 하시다가 지게차 사고가 나셨다고 한다. 뇌출혈의 지혈이 어려워져 하루 이틀의 시한부를 선고받으신 셈이었다 한다. 내일 혹은 모레안에 생명이 질 수 있다라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남성이지만 남자라고 센티(Sentimental)해질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게 더 우습다고 여긴다. 사람은 각자 자기 감정을 표출할 권리가 있으니까 나는 분노의 감정도 잘 표출하듯 지금 느끼는 슬픔을 충분히 내 가슴속에 전달했다.
갑작스레 부모를 보내야 하는 죄가 없는 검은 옷의 저들의 심정을 100%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나 역시 겪어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슬퍼졌다.
어머니들이 가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외가(어머니의 고향)에 방문하고 나면 너무나 속상해서 힘들다고.... 서른살이 넘고 이제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런 어머니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번주에 찾아 뵌 부모님 댁에서 동일한 감정이 못 박히듯 내게 다가왔다. 똑같은 일상에 하루살이처럼 버텨오던 찰나 부모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언제였던가.... 자글자글한 눈밑 주름과 주근깨, 굽어버린 등 그리고 방 곳곳에 숨어있는 먼지들과 정리되지 못한 집안. 속상함이 분노로 다가왔다. 마음만큼 효도할 수 없는 나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형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 버킷리스트를 하나 찾아냈다. 바로 부모님과의 여행! 그것도 1등석으로 유럽여행 거창하게 보내드리기!
솔직히 지금 있는돈 탈탈 털어 보내드릴 순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감히 쉬울까 생각이 들면서도 만약 내일 돌아가실 입장이라면 그 돈이 아까울까라는 생각 역시 공존하게 된다. 이 역시 나의 완숙되지 못한 철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루 이틀 일년씩 지나치다 금새 내 곁을 떠나시는 것은 아닐지 두려우면서도 상당히 죄송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언젠간 보내드리겠지 보단 꼭 해드려야지라는 마인드를 더 심기로 혼자 다짐을 해본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힘을 가지는 부분은 권력과 명예가 아니라 말그대로 자본이다. 쉽게 풀이하면 돈이 되겠다. 돈에 대한 내 신념은 확고하다. 돈은 많다고 행복할 순 없지만 없으면 불행하다. 부모님 1등석 유럽여행 한 번 고민해야 할 내 자신이 무능하다 느끼는 이유는 아직 이 돈, 즉 경제적 자유를 내 목표치 만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에서 돈으로 귀결되는 이상한 하루일 수 있었지만 새롭게 다가온 고마운 서울의 저녁하늘과 함께 내 미래를 다시 꿈꿔본다.
내일 죽는다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