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시절에 관한

잘 살고 싶다

by 혜안

스스로를 남인 듯 버려둔 시기가 있었다

글을 쓸 수도 써지지도 않는 시기가 있었다

괜찮은 척 긍정적인 척 기쁜 척 즐거운 척

온갖 척으로 점철된 시기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곪아버렸고 아팠다

많이 아팠지만 아프면 안 되어서 안 아픈척했다

문득문득 눈물이 나서 울었는데

왜 우는지 이유를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았고 관계에 대한

허무가 가득한 시기가 있었다

낱낱이 벌어지는 점 같은 시기를 지나 돌아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고 어느날은

그게 하나의 흐름이었다는 것이 보였다

어슴프레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을때

아이가 기역니은을 배우는 심정으로 천천히

짧은 글을 써 내려갔다. 그게 나를 붙들어주었다

내 마음을 꽁꽁 매어둔 밧줄이 실은

아무 매듭도 없는 얇은 실이란 걸 알았을 때의

허탈함

삶에 고통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걸 괴로움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이제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쓸 수 있고

사람들과 따뜻하게 인사 나누며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큰 용기를 내어야만 할 수 있던 일들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나의 삶의 반경을

넓히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더 큰 나로

살고 싶다 아주 잘.

다 때가 있고 시절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참 멀리 오래 걸렸지만 이 또한 내 몫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곁에 있어주는

모든 인연들에 감사하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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