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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날다 Apr 06. 2019

불혹의 끝자락에 만난 내 청춘의 도시, 홍콩

느낌을 잃고 살았던 일상이 푸르고 아팠던 '청춘'의 한 때로 돌아갔다!

 공항의 공기는 마치 중력의 강도가 살짝 줄어든 상태 같다. 굳이 바삐 움직일 이유가 없어져서일까? 흐느적, 흐느적, 움직임이 느려진다. 북적이는 사람들, 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먹먹하게 흩뿌려질 뿐이다.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찰나. 꿈이 일상을 대체하는 순간이다.    

 티켓팅을 하고 이륙을 기다리는 시간, 이미 나는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의 대부분을 만끽한다. 복잡다단한 일상의 시시각각에서 탈출했으므로. 여행은 이미 그 목적을 이룬 것이다. 물론 떠남은 되돌아오기 위한 것!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리미티드 타임인 것처럼……. 

떠나기 위한 준비..... 청바지와 운동화

새 날을 막 시작한 0시 35분 홍콩에 도착했다. 일상의 피곤을 이기지 못한 몸이 겨우 공항을 빠져나왔다. 香港, 향기로운 항구라니! 그러나 홍콩의 공기는 생각보다 향기롭지 않았다. 몸의 물리적 컨디션 탓이리라. 그 순간, 킄킄 웃음이 나는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택시기사가 양조위라면?’ 상상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승강장에 도착하자마자,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남성-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공항 관계자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이 성큼 다가섰다. 어딜 가는지 묻고, 택시를 잡아주고, 기사에게 행선지를 알려주고, 휴대용 단말기로 예상요금까지 미리 뽑아 탑승을 도왔다. 예상치 못한 시의적절하고 재빠른 서비스, 감사해야 할 일인데 어쩐지 등 떠밀린 느낌이다.      

택시는 꽤 긴 시간을 달렸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달릴 정도의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 그마저도 위, 아래로 얽혀 있었다. 택시는 익숙한 듯 멈춤이 없다. 침사추이 파크호텔 도착. 짐을 내리고 바로 취침. 내일 아침 8시 마카오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간밤 항공사가 제공한 치아바타를 먹지 않고 챙겨 왔다. 요긴한 끼니가 되어 주었다. 걸어서 15분,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목도리가 과하지 않다. 바람이 꽤나 차다. 배 안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남해안 작은 섬을 오가는 유람선 같다. 제발 목소리 좀 낮추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시끄러운 중국말이 가득하다는 것 빼고는 다른 점이 없다. 깜빡 졸았나? 벌써 40분이 흘렀다. 마카오 도착. 국경을 넘은 것이다. 다시 입국신고서를 작성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65세 이상을 위한 경로우대 라인이 있다는 것. 방문했던 세계 어느 입국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있었는데 못 봤을 수도 있지만....

현지 투어 가이드를 만나기까지 30분의 시간이 남았다. 터미널 2층 식당에서 재빠르게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플레인 콩지, 쇠고기 콩지, 그리고 완탕. 플레인 콩지는 그냥 흰 죽, 소금과 후추를 섞어서 먹었다. 첫 현지식인데 너무 허무한 맛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살짝 후회를 했다. 속은 편안했다.     

'콩지'는 정말 '죽'이다!

도박의 도시, 포르투갈의 식민지… 마카오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알면 되지 않을까, 하는 오만방자함이 있었다. 제주도 크기의 65분의 1, 그런데 인구가 무려 65만 명이라나! 밀도가 장난 아닌 도시다. 게다가 중국 본토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있어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단다. 포르투갈 식민지라는 내가 가진 유일하고 확고한 상식은 추상적 이미지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카오에서 중국인과 포루투칼인은 5~6백 년 이상 이웃으로 잘 지내왔다는 사실, 도시가 온통 노랑, 분홍, 초록 빛깔 집들이 즐비하다. 포르투갈이 남긴 유산이다. 정체와 근원을 알 수 없는 하이브리드(?) 문화가 곳곳에.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성 바울 성당의 남은 벽체. 동서양의 하나 됨을 상징하는 여러 표식 덕분에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솔직히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부조로 장식한 가톨릭 성당이라니... 

 매캐니즈(Macanese)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중국과 포르투갈의 혼혈인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마카오의 문화와 음식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세계 최초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쿠키도, 포르투갈 사람들의 간식인 에그타르트도 오늘날 마카오를 대표하는 상품이 되고 있다.      

성바울성당을 등지고 오른 쪽 가게에서 파는 에그타르트가 마카오 3대 천왕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은 진실이었다!

마카오는 또한 도박의 도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지노에서 일하며 고소득을 올리며 살고 있다. 카지노 대부인 모모 할아버지가 마카오 사람들이 내야 하는 세금의 70%를 부담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한다. 부자인 데다 돈을 잘 쓰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하긴 힘들다. 마카오에서는 돈의 권력이 법과 제도를 대신하는 걸까? 금권 통치가 이루어지는 도시국가구나!

카지노를 품은 호텔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베니시안은 베니스를, 파리지앵은 파리를 흉내 낸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가짜(짜가) 곤돌라를 타고, 가짜(짜가) 에펠탑을 올려다본다. 이루어지기 전 상태를 ‘꿈’이라고 하니 원래 모든 꿈은 ‘가짜’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카오는 '가짜의 도시'가 아니라 '꿈의 도시'가 되는 걸까? 흥미롭게 시작한 마카오 여행이 씁쓸하게 끝나고 있었다.      

페리를 타고 다시 홍콩으로! 또다시 입국신고서를 작성했다. 하루에 두 개의 나라를 오고 간 셈. 침사추이 거리를 잠시 걷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피곤한 몸을 뉘었다. 내일을 위해.     


8시에 일어났다. 미리 점찍어 둔 맛집이 있었다. ‘쿵후 딤섬’ 쿵후 판다가 서빙을 할 것 같은 이름이다. 하지만 식당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딤섬은 얌차라는 문화에서 비롯됐다. 얌차, 차를 마시는 문화다. 차를 먹으며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중국인들, 차만 먹으면 심심하니 다양한 딤섬을 곁들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차를 먼저 주문했다. 아니 서빙하는 분이 주문하라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차는 공짜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딤섬이다. 주문이 꽤나 어렵다. 영어 설명을 보고 재료가 무엇인지 대충 이해했지만 그 맛이 어떨지, 또 얼마나 주문해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된다. 서빙하는 분들의 영어실력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대충의 눈치와 손님들의 양해만 있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세 가지 정도의 딤섬과 국물이 들어간 면을 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맛이 있었다. 가성비, 가심비 모두 만족이다. 양이 조금 부족한 듯했지만 이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배를 비워 두기로 했다.      

먹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쿵푸딤섬' 다음에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빅토리아 항구 시계탑 앞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먼저 빅토리아 항구에서 정면에 보이는 홍콩섬의 마천루를 눈으로 훑었다. 오후에는 그곳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명품이 그득하다는 하버시티, 애프터눈 티의 원조라는 페니슐라 호텔에 대한 설명을 듣고 버스를 타고, 길을 걸어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세계 최고의 마천루 도시가 황무지 돌산이었던 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다. 아편전쟁과 난징조약, 문화대혁명과 본토인들의 이주, 다시 중국으로의 반환까지. 불과 100여 년 사이 이토록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도시가 또 있을까! 어디선가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역사박물관 방문은 홍콩의 어제를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선택이었다.      

세계 최고 금융도시 홍콩의 오늘을 알기 위해서는 센트럴 지역을 방문해야 한다. 서울의 1.8배. 인구는 700만. 그러나 관광·비즈니스의 목적으로 방문한 인원까지 합하면 연 1억 명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도시 홍콩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다. 도시는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고 사람들은 줄서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빠르게 걸어야 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우리나라보다 1.5배는 빠른 듯했다. 그럼에도 도심은 미로처럼 얽힌 작은 골목 곳곳에 보물 같은 여유를 숨겨두고 있어,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방문객들에게 숨 쉴 여유를 선물한다. 엔틱한 느낌의 카페에서 깊은 에스프레소의 향기를 맡을 수도 있고 거리에 테이블을 내놓은 펍에서는 맥주 한 잔과 함께 긴 수다도 떨 수도 있다. 차가 점령해 버린 좁은 골목,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교통정체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순간이다.      

<왼쪽> 영화 '중경삼림' 속 양조위의 집이 왼쪽 아파트 어디 쯤이라는...<오르쪽>홍콩사람들의 줄서기 정신은 대단하다.  
홍콩 속 유럽이라 불리는 소호, 스탠 톤즈 바

빅토리아 피크, 홍콩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정상이다. 피크에 오르는 트램을 타기 위해서는 꽤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국 총독이 탄 가마를 메고 정상에 있는 총독의 집까지 매일 올랐다는 홍콩 사람들의 식민지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면 관광객의 고단함 따위는 꺼내놓기조차 민망해진다. 빅토리아 피크 트램은 세계 대도시 어디에나 있는 흔한, 전망대 고속 엘리베이터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시간여행의 교통수단이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인증숏을 찍고, 내려올 때는 택시를 탔다. 홍콩의 택시기사들은 과묵하다. 영어를 잘 말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운 좋게도 영어를 매우 잘하는 청년 기사를 만났다. 한국인에 대한 호감, 천정부지 높은 홍콩의 집값 등 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돈 많이 벌어 좋은 집 사라!”는 덕담에 그는 “돈 모으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쿨하게 답했다. 또 자신은 “중국사람이 아니라 홍콩 사람”이라며 중국 본토인과의 차별을 강조했다. 홍콩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중국사람이라는,  현지 가이드로부터 건네 들은 이야기가 주관적 판단이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홍콩인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스스로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선택했다. 역사적 당위에 따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짧게 머물고 떠날 여행객의 눈에도 홍콩과 중국의 간극은 꽤나 넓고 깊어 보였다. 100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아온 두 개의 국가(?)가 꼭 하나로 같아질 필요가 있을까?  

빅토리아피크로 올라가는 트램

<영웅본색> <첨밀밀> <중경삼림>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 내 청춘을 아프게 했던 도시를 볼혹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찾았다. 거리의 경찰은 양조위가 아니었고 희끗희끗 백발 여인은 임청하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호 에스컬레이터에서 <중경삼림>을 떠올렸고 만다린 호텔 앞에서 장국영을 추억했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는 혹, 주윤발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자신을 홍콩 사람이라고 말하는 택시 드라이버, 오늘의 홍콩이 아직도 청춘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홍콩에서 나도 잠시 청춘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많이 걷고, 많이 웃고……느낌을 잃고 살았던 나의 일상이 푸르고 아팠던 그때로 돌아간 듯, 심쿵했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본 홍콩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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