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자, 놓아주자, 그래야 비로소 채울 수 있고 잡을 수 있으리.
세수를 한다. 얼마나 수 없이 반복해온 일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서툴고, 간혹은 생경하기조차 하다. 20년 전, 싫다는 남자에게 매달리다 끝내 무참하게 차이고 온 날도 그랬고 15년 전, 결혼을 했으니 이제 좀 쉬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 같지 않은 말을 들은 날도 그랬다.
수도꼭지를 열고, 손바닥 가득 물을 가두고 얼굴을 적시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데 나의 세수는 늘 소매 끝이 축축하게 젖는 것으로 결론 났다.
수도를 열면서 오른쪽, 왼쪽, 어느 손으로 비누를 집을 것인지를 흘낏거리고, 두 손 안에 물을 담으면서 머릿속 생각은 벌써 세면대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몸 따로 머리 따로, 먼저 생각하고 미리 걱정하는 버릇 때문에 결국 나는 세수 같은 난이도 제로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를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비단 세수뿐이겠는가! 내 모든 삶, 일상이 그러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당당히 강변할 수 있겠는가! 몸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머리는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입으로 짜장면과 단무지를 씹으면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 중 어떤 후식이 좋을까 걱정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다. 우울한 일상이고 불쌍한 자아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사실 뭐 그리 대순가! 축축해진 소매는 자연 건조될 것이고 늦어서 낭패 보는 것보다 서둘러 달려가는 것이 나은 것 아니겠는가!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그런데 말이다. 이처럼 쉼 없이 줄기차게, 먼저 생각하고 미리 걱정해 왔는데 나는 왜, 늘, 항상, 한결 같이 축축한 소매를 참아내고 남보다 앞서 가지 못하며 늘 아메리카노만 먹는 걸까!
어쩌면 말이다. 20년 전, 이별 아닌 이별 때문에 울었던 날 그리고 15년 전, 해고 아닌 해고를 통보받았던 날, 그날만큼은 세수하지 않은 더러운 얼굴로 그냥 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어쩌면...... 오늘 나에게 여전히 생경하고 어눌하고 지겨운 세수라는 일상이, 재미있고 기대되고 하고 싶은 특별한 이벤트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그래... 비우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고 놓아주지 못했기에 더 채우지도 더 안을 수도 더 잡을 수도 없게 된 것일지도.... 더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이제라도.
<문득 생각나는 구절>
......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 <피로사회> 한병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