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로부터 떠나, 나를 만나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언감생심, 애초 그런 거창한 스토리는 꿈도 꾸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떠남, 오로지 그 한 가지였다. 그러니 여행 갈 시간을 만들고 일정을 짜고 짐을 꾸리고 공항까지 당도한 것만으로 이미 나는 목적의 90%를 달성한 셈이었다. 이제 비행기만 뜨면 된다. 평소 입던 그대로, 평소 쓰던 백팩을 둘러매고 담담한 듯 고요하게, 편안한 듯 자연스럽게, 비행기 이륙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간 지겹게 붙들어둔 나를 놓아버릴 수 있는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는 것이다. 간절히 원했던 시간,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될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탈리아 중부에서 북부로 달리는 고속도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평원을 달린다. 2백 년 전 대문호 괴테가 20개 월 간의 이탈리아 일주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바로 그 길이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괴테라는 이름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31년 전,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겨울, 깜깜한 밤이었다. 두툼한 솜이불이 벽을 타고 올라갈 정도로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만큼 좁은 방이었다. 처음 몸을 들일 때, 솜이불은 냉정하게 차다. 체온이 이불에 전해질 때까지, 이불 속 몸은 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날도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솜이불 속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남들은 모르는 은밀하고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그때 나는 괴테를 만나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함께 느끼려 애썼고 파우스트의 수많은 명언을 뜻도 모르면서 외우고 또 외웠다. 방안 공기는 싸늘했지만 내 얼굴은 붉고 뜨거웠다.
15살 그때, 어쩌면 나는 괴테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니 어른이 되면 괴테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서관의 모든 책을 섭렵한 후 역사와 문학,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인류는 아니더라도 내 이웃들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로마>
운명이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난생처음 가보는 이탈리아 대평원에서 막 사춘기 열병을 앓기 시작했던 어린 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 소녀는 그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내 모든 ‘처음’의 경험들로 나를 인도했다. 놀람, 벅참, 감동, 슬픔, 좌절, 분노, 비겁함...... 생생하게, 아프게 되살려주었다. 영원히 잊히지 않고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모든 명징했던 각인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배부른 허영이 양심의 눈을 가릴까 봐 차라리 굶는 공복감을 사랑했고 남들은 모르는 각성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밤을 지새우던 소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슬퍼도 슬픈지 모르고 기뻐도 기쁜지 모르는, 무감각의 습관 속에 길들여진 오늘의 나는 누구인가? 배고프지 않지만 서둘러 먹고 밀려드는 잠의 나태함을 벗지 못하는 지금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잊은 듯, 모르는 척, 외면하며 살아온 나를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었다니. 가엽고 또 고마웠다. “안녕, 잘 지내야 해!” 2016년 1월, 롬바르디아 평원에서 45살 나는, 15살 어린 나와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베네치아>
<런던>
다시 달린다. 유럽 대륙을 떠나는 유로스타 안. 떠남으로 시작한 나의 여행이 돌아감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열차를 놓치고....... 멘탈이 탈탈 털려 눈 앞 풍경조차 즐길 수 없는 초긴장의 연속이지만 이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고 만나야 할 이들이 있기 때문에.
내 소중한 일상에 대해, 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떠남이 가능한 것은 머물러 지켜주고 안아주는 이 모든 것들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나도 곧 돌아갈 것이다. 떠나온 그 자리, 그들 곁으로......
<마음에 담아야 할 글>
여행이란 떠남과 만남의 낭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