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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스터 Sep 18. 2023

2023-09-18

그냥 일기


자기표현의 수단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제 예술적 재능은 저를 모두 담아낼 만큼 뛰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문학적 재능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저는 그저 구조가 잘 짜인 기호의 형태로 저를 담아내어 보고자 합니다. 이전의 글들은 지우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의 과거로 여기고 앞으로는 조금 더 친숙하지만 제 깊은 곳의 생각들을 담아 보겠습니다.

제 글에 타이틀을 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골똘히 고민하여 글의 이름을 다는 것보다 날짜의 형태로 어느 정도의 기간에 제가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남기는 형태가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삶에 대한 제 가치관에 변동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철학에 관심은 많았지만 여전히 제가 그리는 삶의 형태는 합리주의에 근거한 기호의 논리였습니다. 

비단 제 가치관이 합리성에 근거하지 않은 타동적 소명召命에서 기원하였지만 제 나름대로 여러 기호와 논리를 이용한 사상의 작업으로 합리성의 구색을 갖추었으니 이것에 저를 움직일만한 자격을 주었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여러 철학을 통해 사상을 견고화 하는 작업을 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세상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삶의 불확실성과 저를 밀어내고 또 당기는 거대한 운명의 범람으로부터 제 모든 가치를 잃을지라도 보존하고 싶은 저의 정체성 혹은 사상이 저의 삶을 지탱해 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학을 공부하고 합리성을 추종했기 때문에 제 사상적 작업의 과정은 단순합니다. 


우선 내가 관측하는 세계와 존재들을 합리주의의 큰 틀에 넣기:

이러한 틀에 담긴 우리의 세상은 끊임없이 분해되고 정규화되어 결국에는 태엽이 감긴 시계처럼 보편적인 기호의 논리에 따라 작용과 결과가 반복되는 결정론적인 (저는 비록 결정론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형태의 삶으로 나에게 덮칠 운명의 범위를 예측 가능하게 합니다.


이로써 저는 실제로는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였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고고한 자아를 가정하고 이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제 스스로를 보호하였습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저는 제 행복도, 목표 의식도 그저 논리와 기호의 작업들로 점칠된 합리주의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제 자신으로부터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합리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이것이 우리의 세계를 확률의 세계로 인식하고 이 속에서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의 법칙, 대표적으로 열역학에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또한 대원칙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것은 압도적인 확률의 결과물일 뿐 절대적 법칙이 아닙니다.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는 확률이 낮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대비하지 못하고 사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은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여서, 가끔 우리에게 수많은 동시사건들로 합쳐져 그 확률이 배정밀도를 뛰어넘어 컴퓨터로 그 수치를 다룰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확률이 낮은 사건을 발생시키곤 합니다.

단단하지만 다공성의 합리주의 껍데기가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침습되어 버리는 순간입니다.

글쎄 평생을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살아오던 저는 이제 다른 생존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선 나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기:

세상 속에서 작용하는 나의 존재로 인식하도록 노력합니다. 저의 욕망과 염원 모두 스스로 생성, 조종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립니다. 

하심下心하기:

교만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를 낮추며, 올바름을 알고 느슨하게 추구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온갖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세상을 깊게 바라볼 때 제 속에서 강하게 울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마 이게 제 숙명이지 않을까 하는데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 밑바닥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평생에 소망하는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다면 아마 저는 그때만큼은 세상으로부터 분별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운명을 찢고 제 삶을 던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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