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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Oct 30. 2024

날아가는 새, 앉은 새

천상병 시인의 <새>를 오랜만에 감상한다.


인사동에 갈 때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 놓고 카페 <귀천>이 있던 곳을 살펴보지를 못했다. 

가끔씩 아직도 그 카페가 있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지만 

시인이 소풍을 떠난 지 오래되었기에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다.

시인이 소풍을 떠나기 두 해 전이였나?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카페에 갔었던 그때 시인과 마주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넘사벽>이었다. 

그의 정신세계는 내가 따라잡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술에 취한 듯한 그의 움직임과 또렷하지 않은 그의 발음이 

나와 시인의 사이를 벌어지게 한 요인이었을 수도 있다. 

세대 차이와 더불어 세상을 해석하는 눈의 차이였다. 




사실일까? 

지금 나는 위선자처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20대의 나는 꿈이 많고 욕심이 많았으므로 더 천상병 시인의 시가 아무리 좋았고,

시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상태일지라도 

그의 외모가 그에게 다가가지 않게 만들었다. 


좁혀지지 않는 삶의 태도와 해석으로 긴 시간 시인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았었다. 


화려한 곳만 바라보던 때였으니 

술주정뱅이와 같은 시인의 외모가 

내 의식을 가려서 

시인의 기치였던 내면의 빛을 가렸을 것이다. 




정비소에서 자동차를 되찾아 오는 길에 

잠시 강변에 멈추어서 한가로움을 즐겼는데 

유난히 새들이 많이 보였다.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다가 

햇살이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는 강렬함이 새를 검은 새로 보이게 했다. 

문득, 기억 속 천상병 시인의 <새>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의 삶을 살아낸 지금, 그때의 나와는 분명 다른 지금, 

기회가 주어져서 시인과 다시 마주한다면 

대화가 잘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죽음>을 <소풍>이라고 표현했던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바라보는지 이젠 알 듯하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천상병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나이에 따라서 변화가 생기는 신기함을 체험하는 삶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아름다움에 <허공의 새>가 있다. 

자기 의지로 방향을 정하고 날아가는 새가 아름다워서 

오래 날아가는 새의 움직임을 바라본 날이다. 

날아라 날아라 새여, 

앉아있을 때보다 날을 때 비로소 네가 보인다.


나도 날고 싶은 방향이 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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