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 <때>는 누가 정할까?
해가 뜨고 지는 사이에서
어느 한때가 가장 아름다웠냐고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누군가는 동이 트는 새벽을,
누군가는 해가 지는 저녁노을이 지는 때를,
또 다른 누군가는 정오의 한낮을 말하듯이
꼭 꼬집어서 어떤 때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고 대답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가장 좋은 때는
그 사람의 마음이 정한 때 일 수 있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내가 제일 예뻤을 때
거리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난데없는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게 보이곤 했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누구도 정다운 선물을 바쳐주지는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엔 알지 못했고
서늘한 눈길만을 남기고 죄다 떠나버렸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딱딱했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 졌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했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넘쳤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어찔 거리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했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 수만 있다면 오래 살기로
나이 먹고 지독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 니바라기 노리코
어제, 브런치에 소개한 첫 소설 연재가 끝났다.
자신이 넘쳐나서 글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공개하기 위해서
다시금 글을 매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글을 공개한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글을 쓰게 한다.
어린 나이에 써야 상상력도 풍부하고 창의성도 활발하다는 편견에 맞서서
모두가 늦었다고 말하는 나이에 도전장을 내민 나를 칭찬한다.
<내가 제일 예뻤을 때>의 시에서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그 <때>라고 하는 시기는 통념적인 기준에 따라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속도에 따라서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나에게
글을 쓰기 위한 <때>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글쓰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고 가장 좋은 때이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차곡차곡
내 마음으로 들어온 문장들을 발굴해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옮겨 적을 계획이다.
다음 주 목요일부터는 새 소설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