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므로 변형되기 쉽고 전염되기 쉬운
움직임으로 마주한 어제의 풍경은
추운 장소에서 더운 곳으로
눈부신 빛을 등 뒤로 비가 내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마중 나와
정체된 도로 위 차 안에서의 짧은 데이트
그리고 마주한 장면 앞에서 압도당했다.
마음
분홍색 얇은 꽃 이파리 결 따라 팔랑거리는 물
암술 수술의 간절함으로 가녀린 물
비린 거울처럼 내가 비춰지는 몸속의 물
비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
바람에 섞여 흩어지다가 머리칼을 적시는 물
방바닥까지 내려온 구름처럼 나를 잠기게 하는 물
흐릿한 먹물로 찍어 쓴 초서처럼 내 몸 위에 씌어지는 물
그 물결로 나를 살랑살랑 흔드는 물
햇볕에 마르는 희디흰 광목에
보고 싶은 얼굴의 형상으로 번지다 마는 물
알약과 함께 삼켜지는 물
저녁나절 창문을 어루만지다 돌아가는 물
어항에 담겨 물고기의 숨이 되는 물
방 한가운데서 거룩하게 끓어오르는 물
향기로운 찻잎을 적시는 물
서로 마주 앉아 예를 다해 정중하게 마시는 물
이어서 내장을 닦고 방광에 모이는 물
더러운 물
썩어서 끓어오르는 물
내 살갗의 작은 구멍마다 송송 맺히는 물
짠물
물이 물을 때렸어. 뱀처럼 엉킨 물. 발가벗은 물. 물이 물을 박살 냈어. 철썩철썩 때리는 물의 손가락. 기어가는 물. 뒹구는 물. 쇠처럼 굳은 물. 참지 못하고 마침내 쏟아지는 물. 뺨 위에 씌어지다 귓바퀴 뒤로 흘러내리는 물. 물과 물이 마주 앉아 서로를 비추다 가버렸어. 물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나날의 그림자. 축축한 이 거울이 죽으면 나도 죽게 되는 물.
(입 속에서 하루 종일 물이 끓었어)
-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처럼 마음은 물과 닮았다.
어제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
3,4관에서 전시 중인 <사물의 초상> 전시 관람을 했다.
전시관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컸고 층고도 높아서
전시실을 꽉 채운 느낌이 드는 전시는
설치미술밖에 없을 것 같은 장소에서 하는 사진전.
사진전이 변신했다.
프레임 밖으로 나와 바람처럼 물처럼 공기처럼 다가온 작품들.
하늘에서 내려앉는 듯한 작품이 주는 느낌,
땅에서 막 건져낸 듯한 작품이 주는 느낌,
키가 엇비슷해서 마치 한바탕 탈춤을 춘 사람들과 섞인 듯한 느낌,
전시관에 발을 옮기면서부터 분위기에 휩싸여서
인터렉티브전시라는 느낌이 든 전시였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던 마음,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시간이다.
그리고 오늘, 어제의 기억이 더 생생해지는
시간과 마주 앉아
마음의 흐름이 시시각각 다채롭다는 걸 다시 인지했다.
김혜순 시인의 <마음>을 꺼내 읽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