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인 성격의 문제?

세상의 밝은 면을 향해 서있기에 낙천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by 코코넛


추운 겨울밤, 달 밝은 밤에,

창문의 프레임 안에 자리 잡은 달을 바라보다

문득 정화수를 떠놓고 빌던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간절하게 기원하는 그 무엇은

기대라기보다 희망은 아니었을까?

바람이 이루어질지 아닐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원이라는 행위로,

꿈을 꿀 기회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펼쳤다.

이 책이 발간되자마자 구입했던 당시

낙천적인 나에게 충격으로 와닿았었던 문장을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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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의 <춤>



"예쁘장함에 대한 우리는 두 겹으로 중첩해 있다.

첫째, 예쁜 그림은 감상벽을 만족시킨다고들 우려한다.

감상벽은 복잡성에 충분히 이끌리지 못하는 증상으로,

이는 사람들에게 곧 문제를 의미한다.

예쁜 그림은 좋은 인상을 영위하려면

꽃 그림으로 아파트를 화사하게 꾸미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만일 예쁜 그림에게 이 세계가 어떻게 잘못되었냐고 묻는다면,

그 그림은 단지 "일본식 연못 정원이 부족해요"라고 말한다고 취급당할 터다.

이런 대답은 인류가 직면한 더 긴급한 문제들

(기본적으로 경제뿐 아니라, 도덕, 정치, 섹슈얼리티의 문제들)을 모조리 무시하는 듯 보인다.

그런 그림의 천진함과 단순성은 삶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만 같다.

둘째, 그와 관련하여 예쁘장함은 우리를 마비시켜,

우리 주위의 부당함을 적절히 비판하고 경계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에 있는 자동차 공장의 어느 노동자가

인근의 블레넘 궁전을 담은 예쁜 그림엽서를 산다고 해보자,

그곳은 멀버리 가의 공작들이 살던 역사적인 장소로,

그는 엽서를 구매함으로써 그 궁전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귀족의 부당함을 간과한 셈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즐거워하고 유쾌해진다는 점,

인생과 세계를 지나치게 낙천적인 눈으로 본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터무니없이 희망적이다."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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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반 에이크의 <결혼>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세상을 너무 밝게 보는 사람들에 의해 생긴 것은 없다는 점이다.

맞는 말이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면서

한 걸음 더 발전하므로

낙천적인 성격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낙천적이면서도 현실을 분석하는 능력이 있다면,

낙천적인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면,

낙천적인 점이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무용지물과 같지는 않다.

밝음과 어둠은 공존하고

어둠에서만 문제가 보이는 게 아니라

밝음에서도 문제를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의 반격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의견도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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