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던 편지 하나가 오늘 하루를 행복과 감동으로 물들였다.
먼 곳으로부터 온 편지,
너무너무 오랜만에 받아 본 편지,
잊고 살았었다.
온라인으로 소통이 자주 이루어지다 보니
'손글씨로 빼곡하게 적은 편지'는 고전적인 아름다운 소통방식이라는 느낌?
반갑고 기쁘고 행복했다.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교류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단어와 단어 사이에,
행과 행 사이에서 봄날의
들판에서 보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페이스북으로만 소통하던 대학원친구가
느닷없이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기에 주소를 알려주었던 기억도 잊어버렸는데
오늘, 편지가 당도했다.
편지를 보낸 내용인 즉,
나이가 한 살 더해질 때마다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을 덜어내면서
한 해 한 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고전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당도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영국의 땅끝마을이라 불리기도 하는
콘월에서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성정이 곧고 단아하니
아름다운 여자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그녀 덕분에 문득 떠오른 문장,
엘리너 루스벨트의 문장,
"아름다운 젊은이는 자연의 우연이고,
아름다운 노인은 예술작품이다.
Beautiful young people are a accidente of nature,
but beautiful old people are works of art."
- by Eleanor Roosevelt
저마다 노년의 모습을 한 번쯤 그려보겠지만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은 대다수가
노년을 준비하는 자세에서 물질적 안정 혹은
풍요에만 집중한다.
오늘, 내게 당도한 편지를 쓴 줄리아처럼
물질이 아닌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준비하는 지인은
아주 드물기에 더 마음을 흔들었나?
그런 연유로 밀레의 그림을 펼쳤다.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의 그림에서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따듯하고 온기로 충만한 이미지가
나의 노년에서도 느껴지길 작은 목소리고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