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움직임의 순간

움직임을 인지하는 것은 배경이 있으므로 가능하다.

by 코코넛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아름다움에 취하거나 리듬에 취하거나

취해 있었던 시간이 많았다.

술에 취하거나 분위기에 취한 경험도 많고

문장에 취한 경험이 많다.

그러므로 나는 나사 하나가 빠진 기계에

나를 대입해서 표현했던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취함은 생소한 경험이다.


아름다움이나 리듬, 혹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긴 눈발 뒤로 펼쳐진 푸른 잿빛 허공에 취했다.

운전하는 중에 취하는 일은 아주 위험하기에

정신을 차리려고 하다가 갓길에 주차 후

취기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눈발을 바라보기로 정했다.

아마도 30분 정도 갓길 주차를 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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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 해돋이



귀가 후 눈에 취할 땐 언제나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할 만큼의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였는데

왜 성긴 눈발이 아니라

배경에 취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취하는 것과 연계해서 최면을 함께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최면술사 혹은 심리학자의 최면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내가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오늘처럼 취함이 운전을 방해할 정도라면

최면에 잘 걸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최면이라고 했나?

최면이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 속 히프노스 신에서 유래했지.

히프노스는 밤의 신인 닉스의 아들이자

죽음의 신인 타나토스의 쌍둥이 형제야.”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54, 꿀벌들의 예언, 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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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 연못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다른 인상으로 보이는

대상에 매료되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렸던 모네가 온전하게 이해되었다.

그는 빛의 산란,

빛이 그리는 그림에 취했던 것이다.

아름다움과는 조금 다른 취함일 수 있다.


에르네스트 쉐노는 1874년에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고

"잡을 수 없고 부유하는 움직임의 순간"을 캡처한

유례없는 감성의 소유자라며 모네를 칭찬했었다.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서

시야에 들어오는 많은 이미지들을

모두 기억하지 않지만,

오늘 본 하늘, 허공은 아주 오래 기억에 저장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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