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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말해요

바람이 현살이 되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길

by 코코넛


어느 날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은데,

꽃, 나무, 하늘이, 구름이 예쁘다. 예쁘니 더 자주 바라본다.

순간, 과거에는 예쁘지 않았었나?

무엇에 정신이 팔려서 살았었는지 자연에 도통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예뻐 보이는 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공기청정제를 뿌린 듯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에 있다는 안도와 꽃향기로의 초대가

축복 같고, 삶에 이런 호사를 누릴 날이 오다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자

친구가 한마디 한다.


"너도 이젠 늙었구나?"

"자연에 관심이 많아지는 순간부터 늙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던데?"


그 말을 듣자마자, 빨리 늙을 걸 그랬네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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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정에 핀 꽃들의 변화에 눈길을 주고

걸음을 멈춘 후 자세히 꽃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지?

아마도 나태주 시인의 시귀가

교보문고 건물의 벽에 걸려있을 때부터였나?

시가 좋아서 시를 읽고 쓰고 하면서부터인 것은 확실하다.

그때부터 나의 입술을 통과하는 언어에

형용사가 급격하게 늘어났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현상을 < 호들갑? >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감탄사보다는 그나마 형용사의 사용이 감가적으로 섬세하지 않나?


< 말 한마디에 천냥빛을 갚는다 >라는 속담도 있듯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를 선택함에 공을 들이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눈빛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처럼 <끼리>로 묶을 수 있는 관계에서는

눈빛으로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 눈빛만 봐도 알아요 >는 친숙한 관계에서 통용된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타인,

일면식도 없고 또 서로 관계 맺을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을 향한

나의 눈빛은 어떨까?

사용하는 단어와 말투와 목소리의 톤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듯이

나는 눈빛의 온도가 도시의 풍경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건네는

수더분한 성격까지 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모르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눈빛이 부딪쳤을 때,

내 눈빛이 상대에게 경계나 차가움이 아닌

따듯한 눈빛이라는 인상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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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건네는 눈빛이

따듯해서 민들레의 홀씨처럼 사방으로 따스한 씨가 되어

훨훨 날아다닌다면?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전통을 고풍스럽게 만들려면

한 가지 일을 절대 잊지 않고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 한다.

산업재해 보상 보험에서

매주 10센트씩 수거해 가는 것이나

거리를 청소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헨리의 단편 추수감사절의 두 신사에서 발췌


눈빛의 온도에도 행여 고풍스러움이 있다면

아마도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36도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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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하고 정감 있는 문화가 도시 전체에 번지면

생활고로 힘들어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실연당한 후라도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싹트지 않을까?

눈빛이 따스하다는 행위 하나로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격려가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유럽은, 아니 영국은 타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미소를 보낸다. 입이 웃으면 누도 따라서 따듯한 빛을 가진다.

그런 문화에 익숙했던 내가 귀국한 첫 해는,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가

상대의 반응이 이상해서 당황하곤 했다.

그 이후 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거리를 걸을 때,

행여라도 누군가와 눈빛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거나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지금 되돌아보니,

그런 여정에서 내 눈빛의 온도는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상태에 놓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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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그를 스스로 인정하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 개조하고 깎고 다듬어 찍어냈다.

도시는 그에게 사교계의 문을 열어 준 다음

그를 엄선된 반추동물 무리와 함께

격식대로 바싹 자른 잔디밭에 가둬 놓았다.

그의 옷차림과 습관,

예의범절, 말투, 하루 일과, 편협성 등"


- 오헨리의 단편 도시의 패배에서 발췌


모르는 사람을 향해 미소 지으면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서로 미소로 응대할 수 있는 문화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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