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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팅이 싫은 이유?

루틴이 깨지는 상황에서 공감할 수 없는 대화

by 코코넛


아침 산책길에서 전화벨이 울렸다가 멈추고,

다시 울렸다가 멈추어서 전화를 건 사람을 확인했더니,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그런데 최근에 한 번 통화한 이력이 있었던 번호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확인 절차가 끝났을 때 또다시 동일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연거푸 세 번 울리니,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중요한 일인듯한 느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받아보니, 주식권유의 전화였다.


아침 산책을 방해한, 나의 사색을 방해한 주인공이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라 순간 짜증이 났지만,

아침부터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는 일은 무례한 행동이라 망설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상재방의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 상냥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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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아주 좋은 종목의 주식이 있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친절한 것은 친절한 것이고,

내 삶과 무관한 일로 상쾌한 아침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저는 주식에 관심이 없다고

일전에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 같은데,

전화를 또 하셨네요? >하고 말했다.

걷고 있어서 숨이 헐떡일 텐데도

상대방은 전화를 끊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예의를 갖추어 들었다.

<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이고,

고급정보라서 꼭 살펴보고 투자하세요 >라면서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나를 설득했다.

상술이라는 게 뻔한데, 상대는 나를 무시하는 것일까?

너무 뻔한 말들을 빠른 어조로,

마치 녹음했다가 틀어놓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 사람이 신기했다.

< 한편으로는 저 직업도 정말 고단한 직업이겠다 >하는 생각도 스쳤다.




상대방도 내가 자기 말에 넘어가서 투자할 것이라고

딱히 기대하는 것 같지도 않게 느껴졌는데,

뻔한 말을 계속하면서 열정을 낭비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주식분석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전화기 너머의 그 사람에게

<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저는 투자 같은 것엔 관심이 없고,

경제관념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적당히 가난한 사람이에요.

저한테 길게 설명하시는 일은

시간 낭비일 테니 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세요. >라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권유했다.


경제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사람의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점이 미안했지만,

나는 골치 아픈 투자에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었고,

내가 정한 일상의 루틴이 깨지는 것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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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에 오만은 가장 흔한 결함이야. >

메리는 생각이 깊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이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사실 아주 일반적이고,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쉬우며,

실제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가운데 거의 없다고 봐야 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지만 서로 달라.

허영심이 없으면서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고,

허영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느냐의 문제거든. >”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발췌


돈을 좋아하면서도 돈 앞에서 나는 혹시 오만한 게 아닐까?

돈을 버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 요즘은 월급만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나는 돈에 대한 융통성이 떨어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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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난 이후부터의 산책은

평화가 깨진? 자연을 관찰하는 힘이 사라진 시간으로 돌변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갑자기 바뀌었다.

과거와 현재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의 변화가 떠올랐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직종이 늘어나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돈을 잘 버는 어린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신기했다.

모두들 너무 똑 부러지게 사는 듯해서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돈에 정직한 돈, 정직하지 않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번도 주식을 사본 적도 없고

주식 투자를 해볼까?라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돈 문제 앞에서는 이상하게 어려웠다.

산수나 수학 과목을 어려워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는?

돈에 애착을 보이지 않는 나를 항상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내가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투자한 후 매일 주식의 동향을 살피면서

일희일비하는 삶이 싫어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주식 관련 전화가 자주 온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중 상당수가 주식 투자 권유, 보험권유 전화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의 말을 전화 통화로 듣고 투자하는 사람이 많나?

지인 중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도 있고,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그들은 내 성격을 알아서인지 권유하지 않는다.

필요한 보험은 지인을 통해 가입했지만,

주식은 너무 복잡해 보이고 어렵게 느껴지고,

그냥 눈길이 미치지 않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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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척하는 것보다, 더 기만적인 것도 없지.

겉으로는 겸손해 보이는 것도

때론 무성의에 지나지 않거나 간접적인 자기 과시이기도 하니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발췌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가 아닌 번호로 전화벨이 울리면

받을까 말까로 잠시 고민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다.

홍보, 광고, 주식권유, 보험권유의 전화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주저한다.

나한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전화,

그러나 전화하는 쪽에서는 간절할 수도 있는 전화.

어떤 경로로 내 전화번호가 그런 회사들로 유입이 되었는지 모른다.

일상에서 아주 많은 부분이 예약제라서

이곳저곳에다 전화번호를 뿌리고 다닌 셈이니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하다.


텔레마케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일이지만,

아침부터 그런 전화를 받는 일은 매우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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