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수 없는 사진, 그 사진은 아직 기억에서 선명했다.
<오늘은 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금줄처럼 쳐놓은 집,
산 중턱에 있는 듯 보였던 그 집엔
상호가 없어서 더욱 묘한 기분이 들었던 사진이다.
십 년도 더 된 기억 속 그 사진은
<달그림자>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던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이다.
사진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달랑 사진 한 장이 올라왔었는데 심장이 덜컹 소리 내는 듯
맥박의 진동이 컸었다.
그 블로거가 어떤 연유로 그런 사진을 올렸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때 많이 놀랐다.
그 이후로 가끔 쉬는 식당이나 카페와 같은
서비스를 베이스로 하는 장소들이 사용하는
휴일 안내 팻말을 유심히 보았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문구는
< 정기 휴일>이었고
더러는 그 문구 아래에
요일도 명확하게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다 그런 사진을 보고 놀랐던 일조차 잊고 살았는데
그 기억은 선명하게 보존되었음을 오늘 알았다.
오늘 자주 다니던 반찬가게엘 들렸는데,
문에 A4용지에다
자필로 <오늘만 쉽니다>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그 안내문이 기억을 깨우는 성냥개비였는지,
잊고 살았던 사진이 아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이분 증오>가 끔찍한 것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절로 거기에 휘말려 들기 때문에 끔찍한 것이다.
일단 휘말려 들면
삼십 초도 안 되어 어떤 억제도 소용없게 된다.
공포와 복수심에의 무서운 도취,
큼직한 쇠망치로 때리고,
고문하고,
얼굴을 깨부수어 죽이고 싶은 욕망이
전류처럼 모든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서
뜻하지 않은 사람조차
오만상을 찌브린 채 비명을 지르는
광적인 상태에 빠져 버린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는
램프의 불꽃처럼 대상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꿀 수 있는,
추상적이면서 방향감각도 없는 감정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발췌
허탕을 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혹시 <사장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붙여 놓은 안내는
과연 친절한 것인가로 생각이 이동했다.
사실, 나는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유형이라
반찬가게를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끔 <무엇을 해 먹을까 >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딸리면 반찬가게로 가서
눈길이 제일 오래 머무는 반찬을 집어온다.
그래서 자주 가는 단골이 아닌 가끔 가는 단골?
그렇지만 문이 닫혀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곳이다.
자주 방문하지 않아서였는지,
믿고 사서 먹을 수 있는
작은 반찬가게의 사장님 얼굴을 떠올리려 했으나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이중사고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며낸 거짓말을 하는 것,
상반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 다 똑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것......”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발췌
<오늘은 쉽니다> 혹은 <오늘만 쉽니다>와 같은 문장은
소비자 혹은 단골에게 보인 친절한 행동이었을 텐데,
친절이 아닌 걱정과 불안을 안겨주는
문구로 둔갑할 수도 있는 문장이라는
오래된 기억을 상기했다.
빈손으로 들어오면 냉동고를 뒤져야 할 판이라
마트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금요일 오후라 이마트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혼자 장을 보는 사람보다 가족과 장을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나도 모르게 트롤리를 밀고 들어갔다.
아차 싶었다.
먹거리를 사러 갈 때는
밥을 먹은 후에 가야 꼭 사야 할 것만 사는데
먹기 전에 갔으므로 닥치는 대로 살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우려는 결국 맞았다.
계획에 없던 재료들이 이미 내 손안에,
집으로 들어오는 양손이 무거웠고,
가득 찬 냉동실에 또 꾹꾹 밀어 넣었다.
반찬가게에 붙어있는 <오늘만 쉽니다>라는 문구가
나를 마트로 가게 했고,
나는 왠지 요리책에서 볼 수 있는 맛있는 요리,
그런 요리를
내 손으로 해낼 것이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