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이미지와 텍스트

눈을 뜨면 벗어날 수 없는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출발한 아침

by 코코넛




몇 시간 만에 이 야릇한 계절에 익숙해져서

옷을 잘 선별해 입고 외출했다.

도시의 정오는 따스했고 행인의 걸음걸음에도 리듬이 생겼다.

건물마다 글씨들이 적혀있어서 건물 형태보다

글씨를 먼저 읽게 되는 순간 다시 이미지와 텍스트에 대한 상념이 깃들었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오랜 시간 동행한 이미지와 텍스트.

눈을 뜨면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되었으므로

의식이나 무의식이 언제나 그 관계성에 대해 생각한다.

텍스트에서의 모호성을 이미지가 구체화할 때도 있고,

반대로 이미지의 모호성을 텍스트가 구체화하기도 하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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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텍스트의 원리,

여기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우리 사고에는 또 다른 차원이 열린다.

확장된 수평선 너머로 형체가 드러난다.

표현과 발견의 수단으로써 그 자신만의 형체를 완전히 갖춘 채로

루돌프 아른하임 (Rudolf Arnheim)에 따르면

”본다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사물을 본다"라는 뜻이다.

서로 떨어진 두 눈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 머리와 신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우리의 외부 환경의 관계는 시시각각 변한다.

따라서 지각은 능동적인 행위다.

항상 기민하게 움직이고 절대 고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며 전후 맥락을 파악한다.

시선은 밖으로 뻗어나가 손으로 물건을 더듬듯 주변을 탐색하고

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의 이면을 파헤치고

계속해서 새로운 면을 발견해 나가며

추가 정보를 조금씩 모아 적극적으로 이해를 발전시킨다.

이런 현상들의 다양성을 통해

우리는 외부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방대한 시각 정보를

분류 및 구분하고 사물들의 깊이를 추정하고,

끊임없이 내적 도식을 구축하며,

가능한 경로를 예측해 자신의 신체를 움직인다.


-닉 수제니스의 <생동하는 인간의 신체> 중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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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듯이 쌀쌀한 바람과

따듯한 햇살의 조화가 선물한 상쾌함으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방황이 아닌 방황처럼 목적지로 가기 전에

느긋하게 거리를 스케치하듯이 걸었다.

이미지 채집은 의식을 관통해서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어느 한 날 꺼내 쓰기 좋은 위치에 숨었다가

적재적소에서 필요로 할 때 되살아나길 희망하면서

꼼꼼하게 대상들을 봤다.




소설을 쓴다는 내 말에

친구는 소설 소재로 좋을 이야기가 있다면서

주고받던 이야기에서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로 내가 먼저 들어선 것인가?

엄마가 해 준 이야기라면서 진구가 전해준 이야기는

친구 모임에 후줄근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친구에 대한 것이다.

모임의 다른 친구가

<걔는 우리까지 창피하게 왜 하고 다니는 꼴이

맨날 그런지 몰라 우리 모임에서 빼자.>라고 했는데

거기에서 거론된 “걔”는 아주 부자라고 했다.

일명 벼락부자?

가지고 있던 땅이 개발되면서 백 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는데

그분은 평생 알뜰하게 사느라

자기 치장을 할 줄 모르시는 분이었다고 했다.




친구에게 들은 말을 모두 옮기려고 하니 너무 길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린고비같이 돈만 움켜쥐고

가족들에게 인색해서 발생한 일.>

뒤로 갈수록 <헉> 소리가 나는 이야기인데

기억에 오래 저장되었다가 다시 꺼냈을 때는

친구의 말대로 소설의 소재가 될 수도 있으므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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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였나?

하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친구와의 대화 중에는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류에서 파생한 소재나 주재로 이야기를 쓰는 일이라

장르를 따지지 않고 입체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막장에 가까울 수도 있을 듯하다.

막장이라면서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도 기막히게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어이없어서,

혹은 기막혀서

웃긴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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