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들의 허무함

그레이슨 페리의 태피스트리 연작을 감상한 저녁

by 코코넛


자꾸 몸을 웅크렸다.

옷의 레이블에 두께와 무게가 높게 책정된 옷을 입었음에도 옷깃을 여민다.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가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나뭇잎들은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는데도

옷을 입은 게 불편하고 하나의 천 조각,

그것도 아주 가벼운 천으로 디자인한 옷을 입고도 집

밖으로 나가면 더워서 땀을 흘렸던 날이

벌써 그리울 줄이야.

외출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내 마음을 채웠던 기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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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초록 반짝이는 나뭇잎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비웃듯이 몸을 흔들었다고,

정신 차리라고 바람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고,

가로수 밑에서 날아간 것은,

낙엽이 아닌 누군가가 떨군 종이 었다고

집에 도착한 후에야 떠올렸다.




숙취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혼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이 시원해지는 해장국을 마시는 사람들과 다르게

국물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버터의 향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진다.

가스 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달군 후 버터를 한 조각 떼어 넣었다.

버터는 펜에 닿자마자 자글자글 녹았고

나는 우유에 적신 식빵 두 조각을 그 위에 올린 다음에

불을 약하게 줄였다.


오늘의 저녁으로 당첨된 메뉴는 퓨전 요리?

프렌치토스트와 에그 베네딕트를 합쳐서 만들었다.




“운명은 말로 표현할 수없이 부드러운 손으로 짠

커다랗고 근사한 태피스트리

(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주로 벽을 장식하는 용도다)와 같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태피스트리를 떠올리면 나는 제일 먼저 점과 선으로 마음을 표현했던

스페인의 화가 호안 미로를 떠올린다.

바르셀로나에 소재한 그의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벽면 전체를 채웠던 태피스트리의 압도적인 크기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레이슨 페리의 태피스트리를 감상했다.

비록 나는 날씨에서 느낀 차이였지만,

그레이슨 페리의 담론은 훨씬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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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슨 페리의 <작은 차이들의 허무함>은

6장의 태피스트리로 제작되었다.

마치 윌리엄 호가스의 연작 <탕아의 인생 역전>과 닮은 꼴이고

형식도 비슷한 스토리 구조이지만,

21세기의 레이크 웰의 성공과 몰락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앞으로 변화의 바늘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

깨닫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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