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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l 09. 2024

작곡은... 쉬워졌다?

...근데 이게 작곡이 맞나? | 이레네의 혼자서 음반 내는 법 5화

글쓰기와 작곡의 공통점.

이 글을 쓰기 전에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작곡이 쉽다고 하면 그것도 곡해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어렵다고 하면 괜히 처음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벽을 너무 높아 보이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의 중심을 잡기 힘들었는데, 그냥 담담하게 내가 어떻게 작곡을 생각하는지 풀어내는 게 적절해 보였다. 용기를 얻게 된 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책을 읽고 나서였다.


밀리의 서재에 있다.

이 책은 A부터 Z까지 시시콜콜하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과 방법론을 풀어나가는 서술방식으로, 그럼에도 소설을 쓰는 핵심을 이야기한다. 작곡에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얘기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정신 감응이다. 작가와 독자 간의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는 정신 감응이며, 자신이 생각할 때 문학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정신 감응이라는 것이다.


이를 음악으로 치환하면, 창작자와 청자 간의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는 정신 감응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글쓰기와의 차이점은 글은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책의 형태로 보존될 수 있었지만, 음악의 경우 악보로만 전승되어 음악을 들으려면 실제 연주를 들으러 현장에 가야 했다. 우리가 기록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것이 1877년이다. 약 150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저장 매체의 등장 이후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약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영국에서 제작된 비틀즈의 <애비 로드 Abbey Road>를 현재 한국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청난 혁신이다.


또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크게 영감을 받은 건, 이 책에서는 문법이나 글 쓰는 구조 등의 기초를 교과서처럼 설명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 있으면서 실제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힌트를 준다. 나도 <혼자서 음반 내는 법>을 작성하며 어디까지를 다뤄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거기에 대한 정답인 것 같았다. 앞으로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적게 서술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

나는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그리고 물론 그것을 받아 적는) 것뿐이다.


물론 소설 창작과 작곡을 1:1로 그대로 치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곡을 만들고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곡을 만들 때,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완성된 곡이 구상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능한 천재도 있겠지만...) 건반을 두드려보다가 좋은 멜로디나 코드 진행을 건져낸다거나, 샘플링을 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본다거나, 꽂히는 가사가 떠올라 일단 적어놓고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 이후는 손 가는 대로 '저절로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저절로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닐까. 그리고 이 것이 가능하려면 수많은 음악을 들어보고, 수많은 습작을 만들어봐야 한다. 그래야 몸에서부터 반응해 쭉쭉 뻗어나갈 수 있다. 스티븐 킹은 책을 쓰고 있는 와중에는 하루에 4~6시간을 무조건 글쓰기에 투자한다고 한다. 물론 음악과 글쓰기는 다르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는 순간이고 그걸 구현하는 것에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일단 해봐야 한다. 창작물이 땅 속의 화석이라면, 일단 땅을 파야 화석을 발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삽질을 하다 보면 유물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머릿속으로 전부 구상해서 나오는 것보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몸을 맡긴다면 자신도 예측하지 못하는 곡이 나온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그게 나만의 창의적인 곡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작곡, 쉬워도 너무 쉽다.

자, 그렇다면 이제 드디어 실전으로 들어가 보자. 도대체 어떻게 곡을 만드는 것인가?


먼저 당신이 정말 작곡을 배우려는 아무런 의지가 없지만 좋은 퀄리티를 내고 싶을 경우, 그런 사람을 위한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 세계에는 작곡은 못해도 곡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진짜 많다. 첫 번째 방법은 컨스트럭션 키트(Construction Kits)를 구매하는 것이다.


유명 샘플 판매 사이트인 Big Fish Audio.
이 웅장한 멀티트랙을 보아라. 편곡도 쉽게 가능하다.


컨스트럭션 키트가 무엇인가? 바로 완성된 노래의 반주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것도 트랙 별로 나뉜 멀티트랙 파일을 말이다. 아마 몇 개 검색해서 들어보면 퀄리티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서 만들면 노래 하나가 나온다. 그리고 보통 하나의 컨스트럭션 키트에 5~10곡이 들어가 있다. 이론상 앨범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럴 거면 타입 비트(Type Beat)를 구매하지 왜 컨스트럭션 키트를 사라는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한데, 타입 비트는 스템 파일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면 편곡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곡을 하려고 한다. 또한 타입 비트는 작곡한 저작권이 비트메이커에게 있다. 컨스트럭션 키트는 구매하는 순간 당신의 것이 되고, 작곡가도 본인이 되기 때문이다. '작곡'이 되는 것이다.


https://youtu.be/elDPi481IUE?si=40u7fdIofWERL7HG

단돈 129달러에 스무 곡을 구매하세요! 작곡가가 되고 앨범으로 발매하세요! (광고 아님.)


두 번째 방법은 조금 더 자유도가 있다. 스플라이스(Splice)를 이용하는 것이다. 스플라이스는 다양한 샘플을 판매하는 사이트로, 월 구독을 통해 일정 크레딧을 얻고 그것을 소비하여 샘플을 얻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사이트들은 샘플 묶음을 일정 금액을 내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은데, 스플라이스는 넷플릭스처럼 구독하는 방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최근에 스플라이스에 추가된 기능이 있다. Create라는 기능인데,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사실상 곡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막강한 기능을 제공한다.


Splice의 Create 기능은 사실상 자동 작곡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이것이 완전한 AI 작곡은 아니다. Suno와 같은 AI 작곡은 저작권을 무시한 채로 데이터를 학습하여 현재 메이저 레이블 사에서 고소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또한 현재의 AI 작곡은 트랙 별로 나뉘어있지 않아 편곡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면 해결되겠지만, 지금의 AI 작곡은 음질이 나쁘다.


스플라이스의 Create는 이와 다르다. 이 기능은 스플라이스가 이미 갖고 있는 방대한 양의 샘플 라이브러리에서 서로 어울리는 샘플을 AI가 찾아주는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에서 안전하고, 멀티트랙이기 때문에 편곡이 가능하다. 또한 이미 작곡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 발전도 가능하다. 퀄리티는 복불복이지만 슬롯머신을 돌리다 보면 하나쯤 괜찮은 게 걸린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트랙은 다시 슬롯머신을 돌릴 수 있다.


https://youtu.be/9Mn2riOV5X0?si=-TUyUsCOiVwUjqQI

AI가 세상을 바꾼다. 바꾸긴 바꾼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머릿속에 거대한 의문이 하나 생길 것이다. 진짜로, 이게 작곡인가?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진짜 작곡이고, 무엇이 가짜 작곡인가? 나는 여기에 굳이 도덕적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런 편한 방식으로 작곡을 할 수 있어도 정작 결과물을 들어보면 실력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미스터리다. 방법은 똑같은데 왜 결과물이 차이가 날까.


내 생각에는 모든 것이 한 끗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정답을 모르겠다. 무엇이 어떤 노래를 엄청나게 개성 있고 매력적이게 들리게 하는지, 아니면 한 번 듣고 다시는 생각나지 않는 노래가 되는지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컨스트럭션 키트나 스플라이스의 AI 기능을 이용해서 기억나는 노래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아티스트다.


그렇지만 일부러 좀 옛날 방법으로 곡을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창작에 제한을 두면 더 창의력이 발휘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다음 화에서는 작곡에 내가 어렸을 때 궁금해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어쩌다 보니 악보를 쓰는 방법으로 시작해 시퀀싱을 배우고 마지막으로 샘플링을 익혔다. 그 순서대로 풀어보려고 한다.


<용어 설명>
DAW: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Digital Audio Workstation)의 줄임말. Pro Tools, Cubase, Logic Pro, Ableton Live, FL Studio 등의 소프트웨어를 가리킨다.
샘플 디깅(Sample Digging): 샘플을 찾는 행위. 샘플이 무엇인지는 다음 화에서...
멀티트랙(Multitrack): 노래 하나에 들어있는 모든 트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드럼에서의 킥, 스네어와 보컬, 그리고 보컬에 들어가는 리버브와 딜레이 사운드까지 전부 포함한다. 스템(Stem)과의 차이점은 스템은 드럼파일이면 드럼 전체를 묶어서 하나의 파일로 만드는 반면, 멀티트랙은 드럼이 전부 분리되어 있다. 현실에서는 두 개가 혼동되어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타입 비트(Type Beat): 유래는 Drake Type Beat, 21 Savage Type Beat 같은 이름에서 뒤의 'Type Beat'만 딴 것으로, 특정 뮤지션의 스타일과 비슷한 비트를 의미한다. 유래는 그렇지만 사실상 비트 자체를 판매하는 것으로 봐도 될 정도로 오리지널하고 다양한 비트들이 많다. '타입 비트' 자체가 명사화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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