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네 Jun 25. 2024

당신은 앨범을 내고 싶다.

내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 | 이레네의 혼자서 음반 내는 법 1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아버지 친구 집에 어쩌다가 같이 갔다. 방 하나에 CD와 LP가 책장을 수북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스피커와 CD플레이어. 그때는 몰랐지만, 그 아버지 친구분은 꽤나 음악 감상에 진심이셨던 분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책장에서 이것저것 꺼내보다가 특이한 CD를 발견했다. 바로 빨갛고 투명한, 뭔가 범상치 않게 생긴 케이스였다.


나는 친구분에게 혹시 들어봐도 되느냐고 여쭤보고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이윽고 처음 들어보는 묵직한 디스토션 기타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즉시 감동을 받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동물적인 호감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OST와 닮은 음악 스타일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락'이라는 장르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 이야기이다.


여차저차해서 나는 그 CD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앨범은 지금도 집에 있다. 그 앨범은 바로 '울트라맨이야'가 들어있는 서태지의 6집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있는 음원으로만 봤다면 붉은 케이스에 있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정말 새빨간 색의 케이스다.


사실 음악을 그전부터 좋아했다. 게임의 수록곡을 어디선가 다운받아서 삼성 MP3에 담아서 듣곤 했는데, 재미있는 건 그때는 '음악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상한 빨간 CD의 음악을 듣고 나니, 내가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환경의 큰 스피커에서 크게 음악을 들었던 것이 내게 크게 다가왔었다. 내겐 기타가 필요했다. 집에는 아버지의 클래식 기타가 있었다. 집에 있는 교본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뭔가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클래식 기타의 소리는 너무나 맑고 청아했다. 내가 이끌렸던 그 야성에 가까운 그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나는 일렉트릭 기타를 가져야 했다.


내가 구매한 것은 스윙의 가장 저렴한 스트라토캐스터 외형의 모델이었다. 약 10만 원 대 중반의 가격이었던 것 같다. 앰프도 딸려오는 호화 구성이었는데, 그 앰프에는 디스토션 기능이 있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이펙터가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진짜 좋지 못한 사운드의 기타와 앰프였다. 뭔가 비어있는 느낌의 소리가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기타를 스무 살 때까지 썼다.


검색해 보니 판다. 아직도.


당시에 기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기타 프로(Guitar Pro)'다. 네이버 카페를 뒤적이다 보면 쉽게 락 밴드의 기타 타브악보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악보는 .gp5 확장자로 공유가 되었고, 그걸 열 수 있는 기타 프로는 필수였다. 그런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기타 프로의 악보를 수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백지상태에서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영어도 모르니 그냥 대충 내가 생각하는 음표를 넣고, 드럼은 다른 곡 악보에서 복사해서 가져온다. 그렇게 내 첫 자작곡 '성적표'가 탄생했다. 가사는 기억에는 이랬다.


오늘 내가 성적표 가져왔지

엄마는 나에게 소리치지

다 맞는 말인데 왜 짜증이 날까

지금 내 기분이 풀리지 않아


종이 하나로 바뀌는 내 마음이

왜 성적 하나로 이러는 걸까

같은 반 친구와 하는 경쟁은

왜 성적 하나로 이러는 걸까


...이 불만들은 어디서 생겼던 걸까? 미스터리다.


그렇게 기타 프로로 작곡을 하다 보니 뭔가 많이 부족한 게 느껴졌다. 가장 큰 문제점은 내 기타 소리와 보컬을 녹음할 수 없었다. 나는 부단히 검색을 했다. 그렇게 나는 큐베이스 3와 어도비 오디션의 불법 복제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또한 녹음을 하려면 사운드카드라는 게 필요했다. 마침 그때 나온 것이 일렉트릭 기타를 녹음하는 데 최적화된 신제품이었다. 또 스무 살 때까지 사용했던 Line 6 Toneport UX2였다.


가운데에 오로지 미학만을 위해 존재하는 아날로그 미터기가 너무 예뻤다. 샛노란 불빛도 들어온다.


같이 오는 소프트웨어는 GearBox. Line 6의 주력 제품인 POD의 이펙터가 거의 그대로 들어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성비가 꽤 좋았다. 일렉트릭 기타에 한정해서는 성능이 정말 좋았다. 약 20만 원 대의 사운드카드가 당시 엄청 비쌌던 Line 6의 POD 이펙터와 거의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뭔가를 만들 모든 준비를 끝냈다.


처음에 '앨범'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도 갖고 있는 2008년의 디지털 앨범의 표지는 이렇다.


포토샵으로 만들었...나?

LJK 1st Single Album. 이게 내가 만들었던 첫 앨범이다. LJK는 내 본명의 이니셜로, 사실은 LJI가 되어야 하는데 K가 강해 보여서 저렇게 했던 것 같다. 트랙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Intro : Something is coming

2. (중학교 때 친구를 놀리는 별명의 제목이라서 뺐다.)

3. 낮은 자의 하느님 : Rock ver.

4. Noise

5. 새로운 건 없다

6. Live Wire : SNES ver.


내가 부클릿도 만들었...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솔직히 어떤 결과물이었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별로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중학교 2학년이 만들법한 결과물들이니까. 큐베이스로 처음 뚝딱뚝딱 만든 노래를 인트로로 하고, 두 번째로 만든 노래는 순전히 등교해서 그 친구에게 '좋은 노래 하나 들려줄게' 하고 들려준 다음 놀리려고 만들었다. 놀랍게도 타이틀 곡이 있었는데, 5번 트랙 '새로운 건 없다'였다. 처음에 얘기했던 서태지 6집의 노래와 사운드와 구성이 비슷하다. 당시에 나는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24년, 나는 영혼도심이라는 이름으로 총 8개의 앨범을 직접 발매했다. 내 개인 앨범도 있고,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발매한 앨범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앨범을 낼 수 있다.


   누구나 앨범을 낼 수 있다.


영혼도심의 인스타그램 피드.


내가 중학생 때 가장 궁금했던 건 'MP3에 있는 가수들의 노래와 내 자작곡이 왜 다르게 들리는가'였다. 나는 그 궁금증을 성인이 되어서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에 건너가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다. 그때에 많은 궁금증이 해소됐고, 이제 아티스트로서도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에 이른다.


영혼도심은 레이블 아닌 레이블이다. 하나의 이름으로 앨범들을 꾸준히 발매하니까 레이블이지만, 소속된 아티스트가 있거나 이런 느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작업한 포트폴리오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단위라고 보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영혼도심을 만든 이유는 이렇게 공식적으로 발매를 하고 신경 쓴 작업물이 쌓여나가는 것이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앨범들을 발매하고 느끼는 건, 중학교 때 내가 만들었던 첫 앨범을 만든 작업 방식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은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앨범을 기획하고, 작곡을 하고, 녹음하고, 믹스하고, 최종적으로 앨범 커버를 만든 뒤 크레딧을 적는다. 단지 더 많은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늘어났을 뿐이다.


내게는 멘토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음원 만드는 법을 배워나갔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분명히 부족하게 들리는데 무엇이 부족한 건지 감도 안 오는 때도 있었다. 미국에 가서야 제대로 된 환경에서 공부하고 깨닫는 것도 있었고, 직접 여러 번 발매해야 감이 오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이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생각했지만, 글로 정리하는 것이 취지에 맞을 것 같았다.


과거의 나와 같은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목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다. 이 시리즈는 기술서가 되는 것을 지양한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궁금해했던 것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고 싶다. 거기에 기본적인 설명 위주로 풀어나가고, 심화 과정은 다른 시리즈로 이야기하는 것이 깔끔할 것 같다.


다음은 밑그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