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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n 28. 2024

생각보다는 쉬운데?

빨리 만들어도 좋을 수 있다. | 이레네의 혼자서 음반 내는 법 2화

노엘 갤러거의 비밀.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록 마니아였다. 나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의 록 음악을 사랑한다. 당연히 오아시스(Oasis)도 좋아한다. 솔직히 안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유튜브를 보다 보니 노엘 갤러거가 직접 자신의 장비를 보여주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 영상이 있는 것 아닌가? 조금은 긴 영상이었지만 어떻게 그 명곡들이 만들어졌는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듣고 싶었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6lMx8uxFQ


노엘 갤러거는 여기서 자신의 첫 기타인 레스폴이 좀 특이했다던지, 레코딩을 할 때 기타 페달 이펙터 없이 앰프의 소리로만 녹음했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작곡할 때 어떻게 작곡을 했는지 묻는 인터뷰의 대답에 꽂혔다.


    "Usually the quicker they come, the better they are."


<Definitely Maybe>와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들을 때 '어떻게 이런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었을까?' 같은 궁금증을 가진다. '얼마나 열심히 해야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거지?' 그런데 곡의 영감이 빨리 올수록 보통 더 괜찮았다는 것이다. 10분 만에 만든 노래도 명곡이 될 수 있다.


또 인상 깊었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주 실력이 좋은 기타리스트가 있다. 모든 코드와 스케일, 화려한 솔로를 할 줄 알지만 정작 그는 작곡을 못한다. 곡을 쓰는 것은 배우지 못한다. 좋은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과 좋은 곡을 쓸 줄 아는 것은 다르다."



좋은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과 좋은 곡을 쓸 줄 아는 것은 다르다.



이 것을 보고 내가 예전부터 생각하던 의문이 정리되었다. 내가 기타를 처음 배운 중학생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곡들의 코드를 따라 연주하며 곡 구성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슬쩍 코드 진행을 만들어서 거기 위에 멜로디를 붙이고 가사를 열심히 썼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곡이 부끄러웠다. 제대로 알고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뭇 작곡가라면 화성학을 전부 꿰고 다른 아티스트에게 영향은 하나도 받지 않은 채 완전히 처음부터 만들어낸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난 제대로 된 방식으로 곡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빨리 곡을 만들고, 멜로디도 어렵지 않고 쉬워서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나의 큰 강점이었던 셈이다. 단순하면서 좋은 곡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나는 제대로 배우고 어려운 곡이 좋은 것이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수업을 같이 듣던 흑인의 비트메이킹 방법.

전통적인 작곡과 작업방식이 다른 힙합 비트메이킹도 마찬가지다. 때는 2016년 말. 미국에서 엔지니어링을 배울 때 AKAI MPC를 들고 다니면서 매일 비트를 찍는 흑인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힙합에 관심이 정말 하나도 없었고, '신기하게 생긴 은색 장비를 들고 다니네' 정도로 생각했다.


참고로 그 친구가 쓰던 모델은 AKAI MPC STUDIO MK1이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려주는 열정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날의 수업 주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앨범을 하나 골라 Allmusic 등의 사이트에서 참여한 사람을 조사하고, 그중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지 서술하는 것이었다. 나는 Coldplay의 Mylo Xyloto 앨범을 조사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과제로 내가 처음 보는 앨범을 조사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이 앨범이 뭔데?"하고 물었다. 그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 앨범을 모른다고?"


하고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그는 나에게 힙합에 대한 정보를 꾸겨넣기 시작했다. 나는 미국에 가기 전까지 오직 록에만 관심이 있었고, 힙합은 싫어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힙합 프로듀서를 하고 있으니 세상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왜 그렇게 깜짝 놀랐는지 알겠다. 그 앨범은 Nas의 Illmatic이었다.


힙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를 수가 없다.


나는 그 이후로 힙합에 관심을 크게 갖게 되었고, 내가 직접 비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직접 배워나갔다. 나는 Native Instruments Maschine을 구매했고, 현재도 그 모델을 사용 중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격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 친구가 해준 샘플링에 관한 그 단순한 말은 아직도 내가 비트를 만들 때 중요시한다. 바로 "꽂히는 부분을 가져와라"다. 유난히 이끌리고, 유난히 맴돌고, 유난히 꽂히는 그 부분을 가져와 차핑(Chopping)하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밋밋한 부분을 따오면 비트는 밋밋해진다. 꽂히는 부분들로 채워진 비트는 꽂힌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트메이킹은 이보다 더 쉬운 작업이 없다. 내가 끌리는 것을 찾고, 그걸 가져와서 손 가는 대로 다듬으면 끝이다. 그리고 경험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된 비트가 좋은 경우가 많았다. 좋게 만들기 위해서 손이 많이 가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비트들은 지금 보면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실력은 부족해도 괜찮은 건가? 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요즘은 키보드와 마우스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음반을 내고도 남는다. 거기서 필요한 건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쳐놓는 기술에 가깝다. 또한 좋은 협업자가 있다면, 돈이 있다면 다른 이에게 맡길 수도 있다.


그러니 미리 두려워해서 시작하는 것 자체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걸 표현하는 것이고, 방법은 익혀나가면 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모든 게 쉬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감을 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생각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이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내는 게 엄청 어렵다. 막상 완성하고 나면 좋아했던 게 싫어질 수도 있다.


나는 계속해서 만들어나갈수록 나를 더 자세히 알아가는 것 같다.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었을 때도 있었고, 잘못된 마음가짐으로 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은 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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