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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Nov 27. 2019

여행지에서 글쓰기

나는 계속 변한다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그래 봤자 1~2년에 한 번 길게 여행을 갔었고, 가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술 한잔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있었기 때문에 사색의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밤에 술을 마시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여행은 좀 달랐다.

아직 여행 중이긴 하지만 낮에는 투어를 진행하고 밤에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면 호텔방에 들어와 피곤함에 그냥 잠들어 버렸다. - 와인과 샹그리아가 너무 맛있다.

또한, 예전에는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꼈으나 일을 하고 8년 정도 지나니 혼자 있는 시간에 사색을 하는 등의 사고 과정을 거치는 게 싫어졌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창밖을 보거나,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보았다.


여행 5일 차 만에 시간이 났다. 사실 오늘은 일부러 여유를 즐기려고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잠시 쇼핑을 하긴 했지만 밤에 약속 하나만 있는 것을 빼면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아무런 계획도 없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세상이 변해서 그런 건지, 그냥 내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모은 돈으로 처음 유럽에 여행 왔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탈리아에 호기심이 가득 차 있던 시절이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여행하기로 했다.

사실 인도를 갈까 이탈리아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벌레를 싫어하는 나를 아는 어머니가 인도를 가지 말고 이탈리아를 가라고 추천을 하여, 생각해보니 내가 바퀴벌레나 더러운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 그때 당시에 호텔에서 잘 돈은 없었다. 하물며 인도 여행인데, 호텔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대체로 외로움을 쉽게 느끼는 편이다. 다른 내 친구들이랑 비교했을 때에는 확연히 느껴진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걸 그렇게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늦은 휴가를 가는 나와 일정을 맞춰 여행을 갈 수 있는 주변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자 여행을 갔다. 대학생 때엔 이미 졸업하고 돈을 벌고 있던 친구들과 장기로 여행을 맞춰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갔었다.


외로움을 쉽게 느끼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25살의 나는, 그냥 지나가면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뜬금없이 그냥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20대 중반의 동양인 남자. 그게 바로 나였다. 여행을 온 즐거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또 그 즐거운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인사를 건네면 모두들 즐겁게 받아주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냥 내가 느끼기에는 - 물론 틀릴 수도 있다. - 그때 당시 사람들이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금 황당해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유일하게 나의 인사를 가볍게 지나친 사람들이 있었으니 한국인 패키지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 모습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로는 한국인 패키지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인사하지 않았다.


인사를 하던 버릇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사를 하면서 길도 물어보고, 사진을 서로 찍어주기도 하며, 갑작스레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같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도 갔었다. 사진을 찍어주다 같이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과 인사도 웬만하면 하지 않고, 말을 거는 것도 대체로 삼가는 편이다. 길은 구글이 알아서 찾아주고, 맛집도 인터넷에 정보가 널렸다.

예전과 다르게 외국에 나와서도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쉽게 연락을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폰으로 즐길 거리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 그냥 힘들어서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기술의 발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길을 걷는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지 않아도 정보를 얻을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괜히 말 걸어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서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며, 내가 말을 거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므로 그냥 말을 걸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 그런 이유로 사진일 찍어달라는 부탁도 가능하면 외국인들에게 했는데, 사진 결과물을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건 다시 한국 사람들에게만 부탁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냥 내가 전보다 폐쇄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위의 어떤 이유로 인한 결과일 수도 있으나, 결과론 적으로는 폐쇄적으로 변하여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배척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위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그때가 더 좋고, 지금이 싫은 건 아니다. 각자 나름의 장단점이 있으니까. 변화가 싫은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사람은 계속 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변했다.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지금의 내 마음도, 내 생각도, 내 사랑도 그리고 그리움도 모두 변할 때가 올 것이다.

얼른 그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그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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