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없어지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이터널 선샤인'이란 영화가 있다.
남녀가 이별 후에 서로를 잊기 위해 기억을 삭제해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서는 이 삭제하는 과정을 공상과학을 이용해 표현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남녀가 이별하면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을 하게 되면 그 사람과 함께했던 그 순간과 그때의 감정들이 결국에는 삭제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별하기 전에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그 사람과 추억을 공유하며 행복을 공유할 수 있지만,
헤어지게 되면 결국 그 기억들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야 한다.
영화처럼 기억이 삭제되는 건 아니지만 삭제되는 것과 같이 그 기억을 다시 꺼내어 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특히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면 그 기억은 더욱 깊숙이 숨어들게 될 수밖에 없다.
집구석 한쪽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아무도 찾지 않는 책처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추억들을 한 번씩 꺼내어 보며 생생한 기억에 괴로워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기억은 가슴 깊숙한 곳에 묻혀있게 되어 무감각해진다.
가끔 꺼내어 보면서 '아 걔랑 그때 그랬었지.' 혹은 '여기에 걔랑 왔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겉으로 꺼내놓고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을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삭제된 기억과 다른 건 그냥 한 번씩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뿐.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고, 그 순간의 행복을 공유할 수 없는 기억.
그렇게 이별하는 순간, 모든 추억들은 삭제한 것처럼 사라진다.
기억을 삭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