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예고 없이 문을 연다
[작가의 말: 병오년 새해 아침에]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떡국은 맛있게 드셨는지요.
희망찬 새해 첫날 아침에, 조금 무겁고 아픈 이야기를 꺼내려합니다.
누군가는 "새해부터 웬 죽음 이야기냐" 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이 글을 발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지금 내 곁에 살아있는 가족'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오늘 우리가 맞이한 이 새해 아침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돌아와,
오늘 저와 함께 떡국을 먹고 있는 제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새해가 생(生)의 감사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그날은 석가탄신일이었다.
연등이 환하게 켜진 거리와 달리,
우리 집의 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유독 남편이 다정했던 것만 빼면.
“당신이 옆에 있어서 참 행복하다.”
그는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나는 쑥스러워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괜한 소리 말라고, 잠이나 자라고.
그 말이 마지막 예고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벽 12시 반쯤,
어둠 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또르륵.’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상한 예감에 남편을 흔들었다.
그의 머리가 힘없이 베개 아래로 툭 떨어졌다.
숨이 없었다.
의식도 없었다.
그 순간,
세상의 전원이 툭 하고 꺼져버린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119 버튼을 눌렀다.
“주소가 어디입니까?”
십 년을 살던 집이다.
매일 택배를 받고, 친구들을 초대하던 우리 집.
그런데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져 주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목이 메어 소리가 안 나오고 혀가 꼬였다.
죽음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의 모든 이성은 마비되었다.
스피커폰 너머로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 중앙을 누르세요! 강하게! 빠르게!”
나는 무작정 두 손을 포개어 눌렀다.
하나, 둘, 셋.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물컹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가슴이 아니라 배를 누르고 있었다.
공포가 극에 달해 위치조차 찾지 못한 것이다.
더 당황되었다.
‘큰일 났다. 정신 차려야 해..’
다시 위치를 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남편의 갈비뼈가 단단하게 느껴졌다.
우두둑.
압박을 할 때마다 뼈가 눌리는 그 생생한 감촉.
그것은 생명을 살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자,
죽음과 맞서 싸우는 나의 첫 번째 전쟁이었다.
구급차 안에서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응급실의 조명은 잔인할 만큼 밝았고,
기계음은 쉼 없이 울려 댔다.
“심정지입니다. 일단 지켜봐야 합니다.”
의사의 건조한 한마디가 시간을 멈추게 했다.
의식을 회복하기 위해 ‘저체온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돌아올 확률은 문헌상 3퍼센트.
하지만 실제로는 1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패하면 사망,
혹은 영구적 뇌 손상.
나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볼펜을 쥔 손이 제멋대로 떨렸다.
차가운 응급실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비로소 알았다.
죽음은 철학이 아니었다.
속도였다.
우리가 인생을 논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사이,
죽음은 빛의 속도로 달려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사흘은 끝없는 터널 같았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은
온갖 튜브와 기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늘 든든하던 그 어깨가
하얀 시트 아래 종이인형처럼 가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 하던 기도도,
평생 쌓아온 논리도,
굳건하던 신념도.
기계음 앞에서는 철저히 무력했다.
운명의 셋째 날 아침.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주치의가 나왔다.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끊어졌던 세상이 다시 이어졌다.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눈몰이 핑 돌았다.
남편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나를 알아보는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나는 멈췄던 숨을 비로소 토해냈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초동 대처, 그 어설펐던 심폐소생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살려냈다’는 기적의 안도감이 아니었다.
뼛속 깊이 새겨진 ‘공포’와 ‘깨달음’이었다.
죽음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순식간에 존엄을 잃고 무력해진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내일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날 이후,
나는 죽음을 유예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그날 남편이 깨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준비되지 못한 자’의 후회 속에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죽음만큼은
이토록 당황 속에서 맞이하지 않겠다고.
의식이 흐려진 채,
공포에 질려 끌려가듯 떠나지 않겠다고.
그리고 비로소
서서 죽는다는 것은
단순한 자세의 문제가 아니었다.
"앉은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脫),
선 그 자리에서 생사를 잊는다(亡)"는
내면적 해탈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준비’의 문제였고,
‘정신’의 문제였다.
나의 가장 소중한 당신.
그날, 그 먼 길을 돌아 다시 내 곁으로 와 주어서 고맙다.
당신 덕분에
나는 이제
진짜 준비된 삶을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