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매일 천장만 바라보던 여덟 살 소녀

깨진 그릇에 핀 촛불, 수정이가 가르쳐준 '몸의 주권'

by 명리하는 영화

나는 십오 년 전쯤 장애인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고 현장에 나갔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만난 대상자가 수정이(가명)였다.


수정이, 여덟 살.

네 살에 뇌수막염을 앓았으나, 불행은 예고 없이 닥쳤다.

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라고 했다. 오진이었다.

뒤늦게 손을 썼지만, 치료 시기를 놓친 대가는 혹독했다.


그때 아이의 시간은 멈추었다.

몸은 굳었고,

세상은 아이를 침대에 눕혀둔 채 무심하게 앞으로만 흘러갔다.


또래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 운동장을 달릴 때,

수정이는 네모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피해 천장만 바라보았다.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씻기고 관절을 펴 주었다.

콧줄을 통해 유동식을 흘려 넣었다.

아이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 시선은 나를 보는 것인지 허공을 떠도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좋다, 싫다.

아프다, 괜찮다.

단 한마디도 뱉을 수 없는 삶.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때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은 '배설'이었다.

뇌가 멈추니 장기도 게을러졌다. 스스로 밀어낼 힘이 없는 몸.

나는 주기적으로 관장약을 넣고, 아이의 항문에서 변을 파내야 했다.


그 따뜻하고도 비릿한 냄새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 발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

스스로 괄약근을 조이고,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 일.

그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거대한 존엄인지,

나는 그 작은 항문을 닦아줄 때마다 뼈저리게 배웠다.


몸은 그저 영혼을 담는 껍데기가 아니었다.

몸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첫 번째 주권이었다.




수정이의 집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쓰러진 지 1년 만에 밭에서 일하다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술과 담배에 의지하다 폐병을 얻어 숨소리마저 거칠었다.


방문 밖에서는 늘 고성이 오갔다.

집 안은 어둡고, 공기는 무거웠으며, 가난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아비규환의 한가운데, 수정이는 아무 말 없이,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듯 천장만 보고 누워 있었다.


몸 상태가 더 나빠져 요양병원으로 가기까지

나는 5년 정도 수정이와 함께 했다.


나는 자주 분노했다.

도대체 신은 왜 이 작은 아이에게 이토록 가혹한가.




몇 해 전,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수정이의 사주(四柱)를 꺼내 들었다.


2004년 1월. 계미년 을축월 정유일.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땅(동토, 凍土) 위에 켜진 작은 촛불 하나(정화, 丁火).


나는 그 명식(命式)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육체를 뜻하는 토(土)는 서로 충돌해(축미충) 이미 금이 가 있었고, 불은 위태로웠다.

깨진 그릇에 담긴 촛불. 그것이 수정이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약한 불에서 꺼지지 않는 눈빛을 보았다.

수정이는 늘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말하지 못해도, 움직이지 못해도, 눈동자만은 또렷하게 깨어 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몸이 감옥일 수는 있어도, 의식까지 감옥은 아니라는 것을.


남들이 평생에 걸쳐 겪을 고통을,

그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압축해서 치러내고 있었다.

아이는 갇힌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수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요양병원에서 20살 수정이는 떠났다.

수정이 아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긴 소풍을 마치듯, 조용히 갔다고 했다.

장례식장도 없는 초라한 이별.


나는 한동안 아이가 누워있던 침대를 생각했다.

굳어있던 작은 손, 늘 차갑던 발.

이제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몸.


슬픔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제는, 자유겠구나. 깨진 그릇을 버리고 날아갔구나.”


나는 한때 안락사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극심한 고통이 오면, 내가 누군가의 짐이 되면,

차라리 내가 먼저 끝내는 것이 존엄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수정이를 떠올리면 그 생각이 멈춘다.

수정이는 선택할 수 없었다.

평생을 누워있는 형벌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몸의 주권을 잃은 아이가, 의식의 주권만은 놓지 않고 버텨냈다.




나는 그 아이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배웠다.


내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일,

내 손으로 밥숟가락을 드는 일,

내 힘으로 화장실에 가는 일.


그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매일 아침 허락받는 기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나는 내 발로 서서 죽겠다고.


고통이 오더라도, 늙음이 나를 파고들더라도

타인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 않고

내 몸의 마지막 기능까지 내가 감당하겠다고.


좌탈입망(坐脫立亡)은 전설이 아니라 태도였다.
몸을 가진 자가 그 몸의 주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
수정이는 누워서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서 있어야 하는 이유를


"수정아, 먼저 가 있어.

나는 내발로, 끝까지 걸어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