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떠날 채비를 시작하자, 비로소 삶이 소중해진다

좌탈입망, 죽음의 자세가 아닌 살아있는 동안의 태도

by 명리하는 영화

"성찬 씨, 벌써 한 주가 다 갔네?”


주말 저녁,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약속이나 한 듯 이 말이 튀어나온다.

한 달이 바뀔 때는 "벌써 새 달이야?” 하고 놀라다가,


어느새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아니, 벌써 한 해가 다 간 거야?”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와 똑같은 속도로 세월이 흘러간다는 옛말을

젊은 시절엔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겼는데,


예순의 언덕을 넘고 보니 내 시간은 정말

시속 60km로 매섭게 질주하고 있다.

머리로 가 아니라, 온몸의 피부로 현실이 와닿는 요즘이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대개 두려움에 떤다.

어떻게든 그 끝을 미루고 싶어 안달을 낸다.


오래전 대학병원에서 잠시 간병인으로 일하던 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죽음의 문턱도 그러했다.

의식도 없는 몸에 억지로 콧줄을 꽂고,

입 안 가득 인공호흡기 마스크를 씌우고,

들썩이는 가슴은 기계가 대신 밀어 올리던 병실들.

그곳에 ‘삶’은 없고, 오직 ‘연명’만 있었다.

“언제쯤 좋아질까요?”

보호자의 떨리는 질문에

의사는 난감한 눈빛으로 말을 아꼈다.


침대 위의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의 언어를 떠난 지 오래인데,

남은 가족들은 도무지 ‘놓아주기’를 결심하지 못한 채

기계와 서류와 동의서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나는 내 마지막이 그런 억지스러운 연장이기를 원치 않았다.

누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남이 대신 쓰는 서명에 의해 내 몸이 기계에 묶여 있는 상태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하고,

허례허식 없는 무빈소 장례를 약속해 두었다.

병원 한쪽 상담실에서

여러 장의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서명을 하던 그날,

나는 내 몸의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의료기계에 맡기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을 했다.

누군가는 묻는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게… 너무 우울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 대답은 분명하다.

천만의 말씀.

오히려 완벽히 그 반대였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대략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 두었다는 사실이

내 삶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언제든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

그 확신이 생기자,

역설적이게도 지금 내 앞의 삶이

눈이 시리도록 선명해졌다.


끝이 언제인지 모른 채 막연히 살 때는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일상이었다.


그냥 또 하루가 가고,

또 한 달이 지나고,

그렇게 ‘대충’ 삼켜버린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시간에 분명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숨기지 않고 바라보자,

나는 덜컥 겁을 먹는 대신

내 앞의 하루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마시는 차 한 잔,

무릎은 조금 시큰거려도

내 두 발로 흙을 밟으며 걷는 동네 산책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이안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집 안을 울릴 때,

나는 생각했다.

‘아, 이게 다 기적이었구나.’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 것 같아서,
당연하게 여겼던 순간들이,
사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한한 선물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오늘이라는 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 소중해졌다.


흔히 좌탈입망(坐脫立亡)

“앉거나 선 채로 숨을 거두는 특별한 수행자의 최후”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진짜 좌탈입망은

죽는 순간의 ‘자세’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태도’에 가깝다.


마지막 순간에

미련 없이 털고 일어날 수 있으려면,

오늘 내게 주어진 인연과 일상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묵은 감정이나

내일을 향한 헛된 집착은

매일매일 조금씩 가볍게 비워내되,

오늘 내 앞에 놓인 기쁨과 평화는

미루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것.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의 행복은 없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말할 수 있을 때 말하고,
“나중에”가 아니라 “오늘” 고마움을 표현하고,
“죽기 전에 한 번”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여러 번”
사랑하고 웃는 것.

나는 이것이

좌탈입망(坐脫立亡)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특권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더 빛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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