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금붕어의 등에서 뛰어내린 날
수많은 사람이 거대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물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고래만큼이나 거대한 ‘빨간 금붕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고개를 쑥 내밀더니, 곧장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홀린 듯 그 거대한 금붕어의 등에 올라탔다.
물고기는 거친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귓가를 때리는 바람, 튀어 오르는 물보라, 전신을 감싸는 속도감.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짜릿했다.
그 누구도 타보지 못한 거대한 존재의 등에 올라타 끝없이 달리는 황홀경.
내 청춘은 진리를 찾아 헤매는 굶주린 여정이었다.
갈망을 채우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고, 종교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였다.
그러나 언제나 어딘가 비어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도달한 곳이 ‘시온’이라 불리는 세계였다.
그곳에는 완벽한 구조가 있었다.
창세부터 종말까지, 성경의 모든 구절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치밀한 설계도.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었다.
나는 100%의 순도로 믿었다.
그리고 스스로 성문 안으로 들어가, 내 손으로 빗장을 걸어 잠갔다.
나는 ‘선택받은 신부’라는 배역에 취해 있었다.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할 거대한 서사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는 확신.
그 세계는 강력했고, 치밀했고, 무엇보다 안전해 보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질주는 어느 순간 서늘한 공포로 바뀌었다.
꿈속에서 달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딘가에 거세게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말 것 같다.’
속도가 쾌감에서 위협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미련 없이 그 등에서 뛰어내렸다.
현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완벽해 보이던 교리의 성벽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논리는 정교했지만, 그 안에는 ‘체온’이 없었다.
하나님의 근본은 사랑이 아니라 심판이며,
사랑은 심판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논리.
그 차가운 결론 앞에서, 인간의 온기는 점점 밀려났다.
생사가 오가는 가족의 병상 앞에서도
교리의 정합성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완벽한 논리라고 해서, 그 논리가 진리는 아니다.
나는 거대한 환상특급 열차의 비상브레이크를 당겼다.
그 대가는 ‘파문’이었다.
30년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오는 일은
죽음과 다름없었다.
꿈속에서 금붕어의 등에서 뛰어내린 뒤, 나는 강가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계속 타고 있었어야 했나.’
다시 태워 주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것은 거대한 세계관을 상실한 자가 겪는 금단현상이었다.
세상을 구원할 사명이 사라진 뒤 찾아온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공허함은 생각보다 쓰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때 두려움을 핑계로 의심을 덮어두었다면,
나는 안전한 껍데기 안에서 서서히 부패했을 것이다.
나는 떨어졌지만, 부딪히지 않았다.
상처는 있었지만, 산산조각 나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강가에 서서
빨간 금붕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신발을 벗고 남한강 변의 흙길을 맨발로 걷는다.
누군가의 계시에 올라타 달리는 대신,
비틀거려도 내 두 다리로 대지를 딛는다.
30년의 감옥, 그 견고했던 논리의 성은 무너졌다.
그러나 폐허 위에 남은 것은 공허가 아니라 생명이었다.
비로소 나는 이해한다.
누군가가 정해준 천상의 시나리오를 완수한 뒤 신화처럼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환상의 등에 올라탄 채 달리다 죽는 대신,
스스로 뛰어내려 맨몸으로 땅을 딛고 서는 결단이다.
나는 이제 누워서 죽지 않기로 했다.
논리에 기대어 잠들지 않고,
두 발로 서서 깨어 있는 채
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날 이후,
내 진짜 삶은 비로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