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종교는 맹신이 아닌, 내 삶으로 해석하는 것

불이법(不二法), 신과 내가 결코 둘이 아니더이다

by 명리하는 영화

나는 거의 50년을 신을 ‘모시고’ 살았다.


20대까지는 기독교, 30대부터는 신흥종교.


신은 늘 저 높은 보좌에 계신 절대자였고, 나는 땅바닥에 엎드린 죄인이었다.


나는 내 안의 빛을 철저히 부정한 채 하늘만 바라보며 매달렸다.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복종했고, 그 복종을 사랑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견고한 성 밖으로 걸어 나온 뒤, 매서운 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나는 처음으로 묻기 시작했다.


'내가 찾던 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그 답은 놀랍도록 가까이에 있었다.

파랑새가 집 안에 있었듯, 내가 평생 두려워하고 사랑했던 신은 저 구름 위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불이법(不二法)을 이해했다.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니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신과 인간이 결코 둘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1. 이름표가 다른 진리


사람들은 신의 이름을 두고 싸운다.

예수냐 부처냐, 구원이냐 해탈이냐.


30년 전의 나 역시 그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내가 붙든 이름만이 진리라고 믿었고, 성벽 밖의 다른 길은 모두 틀렸다고 여겼다.


그러나 우물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보니 알게 되었다.


이름은 다르지만 그 방향은 모두 닮아 있었다.

사랑하라. 자비로워라. 깨어 있으라.


달은 하나인데,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모양이 다르다고 서로를 찌른다.


나는 그 소란스러운 아수라장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이제 나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본다.



2. 맹신을 끝내고 해석을 시작하다


과거의 나는 종교를 ‘믿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종교를 ‘해석하는 것’이라 말한다.


맹신은 사고를 멈추게 하지만, 해석은 나를 깨어 있게 한다.


나는 더 이상 특정 교리의 노예가 아니다.

인류가 남긴 지혜를 내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평생을 사용하던 무기인 방언 기도가 습관처럼 터져 나온다.

기독교 신앙의 전유물인 줄만 알았던 방언을,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인이 되어 다시 쓰게 되다니 스스로도 참 놀라운 반전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또한 불교의 전유물인 줄 알았지만,

이제 내 자유로운 영혼은 반야심경( 般若心經) 독송을, 복잡한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는 수행의 도구로 쓴다.


또 하나 좋은 도구도 있다.

어둠의 기운이 나를 엄습한다 싶을 때면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광명진언(光明眞言)이라는 무기를 꺼내 든다.


그리고 새롭게 장착한 나만의 사적인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세상의 복잡한 사연들을 깊이 이해하고 싶을 때,

나는 사주명리(四柱命理)의 지도를 꺼내어 고요히 사유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혼합이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방황이 아니다.

내 영혼을 타인에게 위탁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단이다.


신이 저 위에만 있다면 나는 영원히 구걸하는 자로 남는다.

그러나 신성이 내 안에도 흐른다면, 나는 나를 돌보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나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다. 나는 구현한다.



3. 하나의 생명으로 돌아가다


불이(不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경계가 흐려졌다.

너는 나와 완전히 분리된 타인이 아니고,

나 역시 우주와 떨어진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 흐름 안에서 서로를 통과하며 살아간다.


누군가 나를 ‘이단’이라 부를 때도 나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저 사람도 지금 자기 방식으로 간절히 붙들고 있겠지.'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연민할 뿐이다.


나는 50년 묵은 죄책감을 내려놓았다.

나는 타고난 죄인이 아니라,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였다.


죽음도 다르지 않다.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잠시 일었던 파도가 다시 고요한 바다로 돌아가는 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누워서 죽지 않기로 했다.
두려움에 떨며 복종하는 자세가 아니라,
우주의 한 생명으로서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자세,
좌탈입망(坐脫立亡)으로 내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신을 맹신하던 그 치열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신과 내가 결코 둘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 나는 누군가를 향해 엎드리지 않는다.

나는 고요히 서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미 충분히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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