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까지 눕지 않고 앉아 있으려는 이유
내 왼쪽 어깨에 조그맣고 하얀 새 한 마리가 사뿐히 날아와 앉았다.
녀석은 나와 늘 함께하며 나를 지켜주는 존재라고 했다.
가만히 어깨를 내어주며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시조새’라고 대답했다.
(잠에서 깬 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서야 그것이 아주 먼 옛날,
멸종된 전설 속 새들의 조상이라는 걸 알았다.
작은 녀석이 이름 한번 참 거창하기도 하지.)
꿈속에서 나는 내 어깨에 내려앉은 그 작고 하얀 새가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내 어깨를 가리키며 녀석을 소개했다.
나를 지켜주는 새라고. 늘 나와 함께하는 든든한 동무라고.
그런데 문득, 아주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걱정 하나가 밀려왔다.
‘잠을 잘 땐 어떡하지?
내가 자리에 무심코 누워 뒤척이다가,
이 작은 새가 내 몸에 깔려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혹여나 새가 짓눌릴까 봐 옴짝달싹 못 하고 노심초사하던 나는,
그 서늘한 걱정에 번쩍 눈을 떴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나는 제일 먼저 왼쪽 어깨부터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신앙에 깊이 빠져 있던 시절,
나는 그 새가 신이 나를 보호하라고 보내준 ‘수호천사’ 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기나긴 미망(迷妄)의 시간을 지나, 종교라는 논리의 성을 나와 온전한 자유인이 된 지금은 안다.
내 왼쪽 어깨에 앉아 있던 그 하얀 시조새의 진짜 정체를.
그것은 외부의 어떤 신이 보낸 천사가 아니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이리저리 흔들리고 상처받으면서도,
존재의 가장 첫 시작점을 의미하는 시조(始祖).
그것은 진짜 내 영혼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꿈은,
가장 아름답고 명쾌한 해답이 되었다.
나는 누워서 죽고 싶지 않다.
병상에 무기력하게 등을 대고 누워,
타인의 손에 내 배설과 생명을 온전히 맡겨버리는 쇠락한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리에 무너지듯 누워버리는 순간,
내 왼쪽 어깨 위에서 나를 지켜주던 그 하얗고 작은 새 역시,
내 몸의 무게에 짓눌려 다치거나 영영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영혼의 새를 깔아뭉개고 싶지 않다.
가부좌를 틀고 단단하게 앉아,
내 어깨 위의 시조새와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미소 지을 것이다.
다치지 않게 지켜주었으니, 이제 함께 춤추며 숲으로 가자고.
오늘도 나는 길을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손을 뻗어 왼쪽 어깨를 가만히 토닥인다.
내 어깨 위에는 여전히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