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빛의 향연과 좌탈입망

경계 없이 가벼워지는 삶

by 명리하는 영화

나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삶을 살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종교적 삶에 몰두했던 이유도 결국 그것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처음 그 완전변론의 교리를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답을 얻었다고 믿었다.

의심할 틈조차 없는 완벽한 논리가 내 지성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는 늘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이 말씀에 감동했고,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견고하던 논리가 무너졌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지독한 허상과 황망함이었다.

죽음을 이겼다고 믿었던 세계는 결국 내 두려움이 만들어낸 구조에 불과했다.


그 거대한 상실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깨어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다.

기도도 아니고, 명상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그냥, 멈춰 있었다.


그때 문득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나를 보고 있던 시선이

조용히 사라졌다.


밖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밖과 안의 구분이 흐려졌다.

‘내가 여기 있고, 세상이 저기에 있다’는 감각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그저 하나의 흐름만이 남아 있었다.


마치 거대한 홀로그램 영사기의 전원이 탁, 하고 꺼진 것 같았다.

아, 이 모든 것이 그저 텅 빈 허공에 쏘아 올린 한바탕 '빛의 향연'이었구나.

죽고 사는 문제에 그토록 짓눌려 있었는데, 애초에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한바탕 꿈이었구나.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찾던 자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야 할 곳도, 도달해야 할 상태도 없었다.


이미, 여기였다.

그동안 나는 끝없이 다른 곳을 향해 달려왔다.


더 높은 곳,

더 완전한 자리,

끝내 죽지 않는다는 영생의 자리.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은

지금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 위에 서 있었다.


그 생각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나와 타인을 나누던 선이 흐려지고,

삶과 죽음을 가르던 경계도 힘을 잃었다.

붙잡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손에서 풀려나갔다.


그제야 보였다.

사라질 ‘나’라는 것도,

끝내 붙들어야 할 어떤 실체도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그저 일어나고 사라지는 빛의 흐름만이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둘이 아니었다.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따라오던 긴장과 두려움이

그때부터 조용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준비해야 할 것도,
대비해야 할 것도
크게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한 흐름 안에 있다면
어디로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이 한바탕 빛의 향연이라면, 심각하게 짓눌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또렷하게 살아내는 일,

그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좌탈입망(坐脫立亡).

그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잘 죽기 위한 방법도 아니었다.

경계를 나누던 생각이 사라졌을 때

저절로 따라오는 하나의 태도였다.


억지로 붙잡지 않고,

애써 밀어내지 않는 것.

그저 빛의 흐름 속에 고요히 머무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는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여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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