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丙午)의 불꽃은 누워서 꺼지지 않는다
그 세계를 빠져나온 뒤,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몰입했을까?’
‘왜 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서사에 나를 던져야만 했을까?’
자책은 쉬웠다.
어리석어서, 순진해서, 판단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면 간단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실마리는 내가 평생 미신이라며 밀어두었던 곳에서 나왔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내 사주를 보시고 “공부 잘해 유명해질 팔자”라고 웃으며 말하셨다.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던 나는, 고3 때 “큰 그릇”이라는 종교적 예언을 듣고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섰다.
명리에 대한 작은 호기심은 독실한 신앙 아래 오랫동안 눌려 있었다.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에야 나는 그 봉인을 풀었다
그리고 내 사주의 여덟 글자(명식)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조그만 표상 안에 ‘지난 30년 동안 몰입했던 나’의 정체가 고스란히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난 날의 기운을 뜻하는 일주(日柱)가 ‘병오(丙午)’였다.
한낮에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한 번 꽂히면 불같이 달려들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맹렬한 불의 기운이었다.
게다가 나를 감싸고 있는 글자는 ‘인(寅, 호랑이)’이었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편인(偏印)’이라 부른다.
보이지 않는 세계, 철학, 사유에 깊이 빠져드는 별.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내가 평범한 안정보다 ‘의미’를 좇아 달려왔던 이유를.
한 번 꽂히면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렸던 기질을.
나는 단순히 속았던 사람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대로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더 흥미로웠던 것은 타이밍이었다.
내가 종교를 떠난 해는 54세, 대운이 갑신으로 바뀌던 시기였다.
신(申)은 인(寅)과 충을 이룬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구조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흐름.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실제로 삶이 뒤집히던 시간이었다.
그때는 우연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하나의 맥락처럼 읽힌다.
이 깨달음이 내게 준 것은 예언적 확신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나는 바보라서 빠진 게 아니구나.”
“나는 내 기질대로 가장 뜨겁게 살았을 뿐이구나.”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명리의 깨달음은,
내가 왜 그토록 ‘좌탈입망(坐脫立亡)’을 꿈꾸는지에 대한
가장 명쾌한 대답이 되기도 했다.
나는 병오(丙午)다.
한 번 타오르면 끝까지 가는 기질.
그래서 삶의 마지막도 가능하다면 나답게 맞이하고 싶다. 억지로 연명하기보다, 마지막까지 또렷한 자세로.
내 기질이 바라는 한 가지 장면일 뿐이다.
이제 나는 운명을 맹신하지 않는다.
다만 내 성향을 이해한다.
내 사주 속 태양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혼자 맹렬히 타오르지 말고,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라고.
명리는 나를 운명의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게 해 주었다.
그 이해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