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채워져 갈 마음의 공간
빵 냄새를 따라갔다.
잠을 잤는지, 깨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정신이 맑아졌다. 시차 적응이 덜 된 탓에 베를린 도착 일주일이 지나도록 이 시간이면 일어났다. 05시 30분. 아직 한밤중인 아내와 딸이 깨지 않게 슬며시 일어나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초여름 아침 기온 치곤 제법 쌀쌀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후각을 유혹하는 빵 냄새를 따라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빵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갓구운 부터 크로와상(Butter croissant)이 오븐에서 나왔다. 바깥의 찬 공기를 만난 크로와상은 모락모락 김을 뿜어댔다. 녹은 버터를 뒤집어쓴 크로와상의 달콤한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배가 고파왔다. 줄의 맨 뒤로 갔다. 앞에 사람들이 하나, 둘 계산을 마치고 나의 시야 밖으로 퇴장했다. 그럴수록 크로와상을 먹는다는 설렘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뭐라고 주문을 해야 한담?” 계산대 앞에서 주저하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상상됐다. “안 되겠다!” 짧은 외마디를 툭 내뱉고는 돌아섰다. 빵 맛이 떨어졌다. “이거 큰일이다. 빵도 주문 못 하는 독일어 실력으로 유학을 하겠다고?”
저희 유학 가요
일주일 전,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들어섰다. 가족, 친구만 십여 명. ‘출정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항까지 동행하지 못한 지인들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고, 그것도 모자라 유학길 여비에 보태라고 찔러준 외환은행 봉투는 바지 뒷주머니에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취해 있었다. ‘유학’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에 함몰되어 나의 실체를 못 보고 있었다. “저희 유학 가요” 라고 사기(?)치며 거둬들인 유로(Euro)만 얼마였던가. 그래서 더 부담됐고, 부끄러웠다. 기분 좋게 시작한 아침 산책길, 크로와상 앞에서 나의 민낯을 보고야 말았다.
순딩순딩하던 딸이 변하기 시작했다
빵집 앞에서의 사건(?)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독일어 수업에 모든 전투력을 집중하고 있는 아내에게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아내의 눈빛은 비장했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독일어 수업을 앞두고 우리는 전략을 세웠다. 시간을 나눠 4개월 된 딸을 전담하기로 했다. 부지런한 아내가 오전반 수업에 참여하고, 아침잠이 많은 내가 오후반을 선택했다.(시차 적응이 된 후로는 05시 30분은 나에게 한밤이었다. 심지어 새벽에 젖 달라고 우는 딸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당연히 아내의 심기는 불편했으리라.) 처음 며칠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아내가 어학원에 가고 나면, 딸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아내가 준비한 젖병을 데워서 먹이면 끝. 오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유모차에 딸을 태워서 동네 한 바퀴 돌고, 지하철역 앞에서 아내에게 딸을 넘겨준 뒤 나는 오후수업을 들으러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딩순딩하던 딸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가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울었다. 소리내어 울었다. 목놓아 울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울고 있는 딸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수업 중인 아내를 조기(早期) 호출하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화가 나 있었다. 나의 서툰 육아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심정을 이해했지만, 나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그래서 싸웠다. 그리고 화해했다. 다음엔 내가 더 잘하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갈수록 큰일이다” 아내가 독일어 수업에 재미를 붙였다. 이제 딸이 울어도 절대 아내를 조기 호출할 수 없다. 크로와상 앞에서 드러난 나의 저급한 독일어 실력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아내가 없는 동안 딸을 울리지 말아야 한다. 후...
심 봤다!!!
아내가 집을 나가기 전부터 딸이 울기 시작했다. “오늘 수업을 가지 말까?” 고민하는 아내의 등을 떠밀어 어학원에 보냈다. 딸과의 사투(死鬪)가 시작됐다.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동물 소리를 냈다가, 죽은 척도 했다가,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는 다 냈다. 그래도 딸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저항은 점차 거세졌다. 너무 울어서 목소리도 쉬었다. 그때 처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딸의 얼굴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한참을 들여다봤다. 미안했다. 대화만 가능하다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콧물 때문에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아서 몸을 돌려 대충 손에 잡히는 것으로 딸의 코를 닦아주었다. 그런데 코 닦은 그것을 꽉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이내 그것에 코를 박고는 울음을 그쳤다. 잠시 그것을 음미하더니 잠이 들었다. “이거 뭐지? 하하! 참!” 그것은 아내가 벗어둔 잠옷이었다. 나는 소리쳐... 아니, 속으로 외쳤다. “심 봤다!!”
딸은 엄마의 냄새를 찾고 있었다. 엄마의 냄새를 뱃속부터 각인했기 때문에 엄마 냄새를 맡으며 정서적 안전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의 냄새는 아이의 정서 발달과 인성 발달에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익숙한 엄마의 냄새를 맡게 되면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어 안정감을 찾게 된다. 심리학의 기본 전제,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수십 번의 헛발질 끝에, 나는 울음의 이유를 알아냈다. 그렇게 딸과의 첫 교감을 이루어냈다. (“멋진 아빠시구나”라고 말하지 마시라. 하고 싶어도 참으시라.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헛발질을 하게 되니까.)
여보, 옷은 벗어두고 가
아내가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실에 갈 채비를 한다. 나는 다급해진다. “여보! 잠깐만!, 옷은 벗어두고 가!!”
첫날은 그렇게 돌아섰지만, 그 빵집 크로와상은 3년 2개월 동안, 우리 아침 식사(Frühstück)의 주메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