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어른여자 라면
눈물 그리고 콧물 그리고 마무리
"어떡하긴 어떡해. 어쩔 수 없지." 응열이 말했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언덕길에 갖가지 풀과 낙엽더미 덕분에 차의 속도가 줄어들었고 결정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몹시도 큰 그루터기에 응열의 차 범퍼가 턱 걸려 버렸다.
달달 떨리지만 온전한 두 다리로 차에서 내렸다. 소나타는 지나가던 트럭의 도움을 받아 견인고리에 덜렁덜렁 묶인후에야, 비로소 비탈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도로 위에 올려놓고 보니 생각보다 소나타의 상태가 온전하다. 범퍼가 다 떨어져 나간 것 빼고,
응열은 일단 시동이 걸리니 강릉까지는 살살 움직여서 가볼 수 있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며 나에게 말한다.
그 모습은 어쩐지 스스로를 달래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영혜야, 괜찮으니까 니 , 운전 다시 해서 집까지 가자. "
"싫어. 나 안 해. 못해 이제."
"지금 바로 운전 다시 하지 않으면, 니는 앞으로도 영원히 못하게 될 수도 있어. 해야만 해. 할 수 있어. 괜찮아."
다시는 운전을 못하게 되는 건 싫었다.
멋진 어른여자라면 모름지기 드라이브를 유연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스무 살이었으니까 ,
그래서 나는 다시 고분고분히 시동을 걸었고
그 순간 어떤 무언가 응원을 해주는 거 같았다.
'얘야 힘내거라. 넌 다시 할 수 있을 거다. '
믿기 힘드시겠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어느 해엔 4월에도 눈이 내리기도 하는 강원도.
날리던 눈발이 삽시간에 거세진다.
차오르는 눈물 때문인지 미친 듯 내리는 눈발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눈물이든 눈발이든 간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발을 걷어내느라 몹시 빨리 움직이고 있는 와이퍼와 앞다투듯 , 내 눈에선 주룩주룩 눈물이 바쁘게 샘솟아 떨어진다. 닦아낼 사이도 없이 별안간 콧물까지 흘려가며 미친 사람처럼 차를 끌고 집으로 가고 있다.
아까 보다 정확히 열 배는 더 못생겨진 얼굴이다.
응열이 날 보더니 말한다. " 잘 가고 있는데 니 왜 그래 우나? 드러워서 눈 뜨고는 못 봐주겠다"
고대 스파르타에서 행하던 엄격한 훈련 같은 교육을 하는 내 아버지 응열. 그땐 야속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큰아이에게 사뭇 집착하며 욕심내고 때론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하면서 단단하게 키워보려는 그 마음을 , 인제 조금은 알겠다.
그 후로도 응열의 강도 높은 운전연수는
몇 번 반복되었고, 결혼을 하면서 그제야 멈출 수 있었다. 뒤로 잊을만하면 5년에 한 번 정도 운전을 다시 해보기는 했지만 , 이십일 년이 지난 지금도 겁이 난다.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이겠지.
그 사이에 면허증 갱신을 두번 했다.
그때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멋들어진 운전자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건 . 응열과 나의 큰 오산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 심약하고 담력이 몹시 없는 사람이라는 가장 큰 변수를 또렷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숙하게 운전을 하는 멋진 어른 여자는 될 수 없었지만, 어느덧 장성해서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날의 영혜에게 전하고 싶어 진다. 한 가지 더하자면 다음번에도 면허증갱신을 다시 해볼 작정이란 것.
어쩌면 언젠가 근사하게 드라이브를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날이 우연히라도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