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강렬한 슬픔이 밀려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찰나에 미화(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참아볼 사이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설움을 뱉어낸다.
"사춘기 아이잖아. 때론 그냥 지켜봐 주는 건 어떨까? 재미있는 책을 읽어보던가, 맛있는 걸 먹어봐. 엄마가 햄버거 배달을 시켜줄까?" 어릴 때처럼 미화는 마흔 살이 넘어버린 딸을 살살 달래준다.
이럴 때마다 참 신기한 것을 느끼곤 하는데 우리는 물리적 거리로 치자면 족히 285km는 될 정도로 가깝지 않게 떨어져 살고 있다.
그런데 미화는 이따금 내가 좋지 않은 상황일 때면 신기할 정도로 먼저 연락을 해온다.
그래서 아주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나와 관련된 많은 일에 기가 막히게 감이 잘 맞는 건지 ,
그러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대답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엄마니까 느낄 수 있어." (과연 나도 그런가에는 의문이다)
이 말을 가만 생각해 보면 조금 소름이 돋을 법도 하지만, 우리 미화는 지극히 평범한 65세의 전업주부 여자임에 틀림없다.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한참 쏟아낸다. 끝내는 어쩐지 그렇다 할 웃음코드 없는 미화의 근황을 듣고 언제 그랬냐는 듯 껄껄거리며 웃고야 말았다.
어느덧 거실 안 깊은 곳으로 까지 저물어 가는 해가 길게 비춘다.
그러면서 깊은 슬픔은 조금 물러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슬슬 배가 고파진다.
때마침 퇴근 후 돌아온 용(남편)을 재촉해 아이들과 함께 떡볶이 집으로 간다.
이내 맛있는 음식 냄새에 홀린 듯 이끌렸다. 그러니 식당 출입문을 열자마자 맨 뒷줄의 비어있는 테이블을 발견하여 나풀나풀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막 깊은 슬픔을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극복한 참이었다.
그런데 이쪽을 보며 누군가 자꾸 손짓을 하며 알은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뒤에 바로 들어온 다른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의 일행인가 보다 하고 가볍게 지나친다.
한데 좀 전의 그분이 내쪽을 보며 가만히 웃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가까이 보니 첫째 석이의 같은 반 친구 엄마이자 둘째 승이의 같은 반 친구 엄마였다. 이내 미안함과 뒤따라오는 어색함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 싱거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나는 시력이 썩 좋지 않다.
20대 후반쯤부터 현재까지 0.3 정도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왠지 거추장스러운 안경을 쓰는 것이 못마땅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쓰지 않은 채로 생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름 준비된 안경은 무려 두 개씩이나 된다.
더러는 이렇게 간혹 사람을 쉽게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왜 늘 안경을 쓰고 다니지 않는 것이냐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손이 가지를 않으니 어쩌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볼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그렇게 또렷하게 보일 수가 없다. 이를테면 유리창에 묻어있는 손자국을 비롯한 얼룩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그렇게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가당치 않는 이야기로 들리실지 모르겠으나 , 어쩜 나는 그것이 내심 내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봐야 하는 것들 정도쯤을 또렷이 볼 수 있는 삶이 노련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어제의 강렬했던 슬픈 위기에도 조금만 못 본 척 눈감아 주면 관계가 편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다. 저녁으로 먹었던 떡볶이와 맥주가 잠들기 전까지도 소화되지 않아 분명 몹시 곤란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런 다음날에 어느 때보다 더 뱃속이 허전한 건 대체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