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그리는 삶
"어? 이 사람이 어떻게 좋아요를 눌렀지?"
1박 2일간의 경주 어반 스케치 페스타를 마친 다음날, 서울에서는 싱가포르 스케쳐인 폴 왕 작가와의 어반 스케치 번개가 있었다. 가이드 임무를 맡은 난 하루 종일 드로잉 포인트와 식사 장소 추천을 해야 했고, 처음 야외 스케치를 나온 분들도 한 명 한 명 인사를 건네며 챙겼다. 폴 왕 작가 및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것 같은 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당연히 잊지 않았고, 그 와중에 내 그림도 짬짬이 그렸다.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건 당연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진 않았지만 완벽한 가이딩을 제공하고 싶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꽤 괜찮은 일정으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소인 백인제 가옥에 도착해서야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처음에 모였던 서른여 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열명 남짓으로 줄어 있었고 여러 갈래로 나뉜 드로잉 포인트 덕에 사람들 무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한적하게 가을바람을 느끼며 그림을 그린 지 십 분쯤 지났을까? 내 오른편에는 낯선 여자분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일정을 소화했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분이 계시는구나' 마지막 인싸력을 짜내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이름은 '인홍'이었고, 좋아요가 스무 개밖에 없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내가 최근에 꽂혀있는 유명 작가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 이 분이요? 잘 알죠"
"정말요? 저 진짜 팬이거든요. 이번에 하노이 행사에 가서 꼭 만날 거예요"
"팬이라고 전달해 드릴까요?"
"개인적으로 연락도 가능해요?"
"그럼요"
그녀는 중국 메신저로 한국에 너를 좋아하는 팬이 있다며 binbin에게 날 소개해줬고, 다음날부터 진행될 '하노이 아시아링크 스케치 워크'에 행복한 기대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만약 그 날 오른편에 앉아있던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 '인사만 나누고 인스타그램을 바로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노이 얘기를 덧붙이자면 그녀의 소개로 인해 binbin을 덜컥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내 다이렉트 메시지를 3번이나 읽씹 했고, 마지막으로 포기하는 심정으로 보낸 다이렉트 메시지에 답변을 주었다. 3박 4일간의 스케치 워크 일정 마지막 날에 만나서 같이 그림을 그렸는데, 광저우 스케쳐 7명 사이에 끼어서 그림 그리던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챙겨주었고 밥도 사줬다. 그 이후로 코로나 때문에 다시 보기는 어려워졌지만 꾸준히 '좋아요' 안부는 나누고 있다.
백인제 가옥에서 우연한 만남이 다른 사람과의 인연으로 이어진 것처럼 그림을 그리다 보면 다양하고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돌이켜보면 움직일 때마다 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그런 일들은 올해에도 이어져왔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매번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가을바람이 여행을 부추기는 요즘,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으로 추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