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현 Sep 05. 2020

월화원

여행하며 그리는 삶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2점을 내기 위해 총 6장을 그렸다.
밑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완성 후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액자를 사 왔는데 그림 사이즈가 작아서 등의 이유로 말이다.

   



6월에 열릴 어반 스케쳐스 수원 단체전 '수원을 그리다'에 참여하기 위해 벼락치기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단체전에 그림을 2점 내는 것뿐인데도 생각처럼 뚝딱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재를 고르는 것도 일이요. 막상 골라도 손이 가질 않고 그림 모임에 나가서 슥슥 그려볼 요량으로 참여해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남기고서야 드디어 전시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답사를 떠났고, 첫 번째 포인트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한눈에 보이는 벤치였다. 첫 스케치를 시작할 때는 햇빛이 쨍쨍하더니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마음에 안 들어 다시 그리려 새 종이를 꺼내는 순간,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근처에 카페로 대피해 자리를 잡았지만 내가 원하는 구도는 이미 벗어난 상태였다.


며칠 뒤 방문한 두 번째 포인트는 월화원이었다. 아파트 숲에 둘러 쌓여있는 묘한 느낌의 중국식 정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눈앞에서는 웨딩촬영을 하고 있고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처마가 있어서 비를 피하며 그리긴 했지만 채색까진 힘들 것 같았다. 빠르게 스케치만 마치고 발걸음을 돌렸다. 전시회까지 일정이 빠듯해서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미리 액자를 구해야 했고. 이케아에서 열심히 사이즈를 재서 사온 액자는 그림에 비해서 너무 컸다.


전시장에 설치하는 날 아침까지 붙잡고서야 완성된 그림들은 영통구청 일층에 걸리게 되었고, 나름 열심히 그렸지만 코로나로 인해 관람객들의 방문이 금지가 되면서 쓸쓸한 그림이 되었다.

팔리길 기대하며 열심히 그렸던 그림은 판매는커녕 봐주는 이 없이 한 달 후에 아픈 손가락이 되어 돌아왔고, 그림이 커서 한 번에 스캔이 떠지지 않는 바람에 SNS에 업로드하는 데에만 두 달이 걸렸다.


그래도 뿌듯했던 기억을 하나 꼽자면, 한 번도 내 그림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던 이십 년 지기 베프가 이 그림에는 좋아요를 한 개 눌러주었다. 그래서 왜 눌렀냐고 물어봤더니 지적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너가 그린 거중에 제일 나은 거 같아서. 물 빼고



월화원. 2020.06




매거진의 이전글 울산동헌 및 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