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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현 May 30. 2020

미얀마로 출장가는 연구원입니다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는 해보겠습니다

나는 현재 한 외교안보 싱크탱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미얀마 시민사회역량강화'라는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미국 기관에서 펀딩을 받아 한국에서 미얀마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이 묘한 업무를 유럽정치 외길이었던 내가 담당이 되었을 땐, 철딱서니 없게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보단 '이때 아니면 언제 미얀마를 가겠어~'하며 해맑게 신나 했었다. 무엇이 닥칠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프로그램은 매년 약 3-4번의 미얀마 출장을 요구하며, 한 번 가면 최소 일주일 정도는 머물어야 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미얀마를 오가고 그들과 소통하며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 싶다.

막히는 쪽은 꽉, 아닌 곳은 뻥~ 뚫린 극단적인 교통 상황. 사진을 찍고 얼마 안 있어 양쪽 도로의 사정이 뒤바뀌었었다.

1. 일단 덥다! 아무리 동남아라지만 너무 덥다!! 여름에 가면 햇빛이 너무 세서 밖에 좀 만 있으면 눈이 따갑고 아프다. Oh my eyes... 그랩(Grab, 우버와 같은 택시 어플) 택시들은 그나마 에어컨이 있지만 아닌 택시들은 에어컨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낫다. 


그러면 후딱 실내로 들어가면 될 텐데 불행하게도 미얀마의 교통체증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미얀마 교통법은 한국과 같이 왼쪽에 운전자가 앉지만, 대부분의 차들이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들이다 보니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즉, 차에서 내릴 때 도로 한복판에 내리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2. 전기가 자주 끊긴다. 전력 소모가 많은 여름에는 2-3시간에 한 번씩 사무실 전기가 나간다고 보면 된다. 한 번은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데 전기가 끊겼다.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어두컴컴한 엘리베이터... 나혼자 덜덜덜, 같이 탄 승객은 한 없이 쿨하다. 


3. 출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음식이다. 미얀마 식문화는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밥/국/그리고 반찬 3-4가지로 한 끼를 먹는 방식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종종 장조림이나 제육볶음, 콩나물국과 같은 한식스러운 메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고기는 본연의 향이 매우 세고 그 향을 덮기 위해 더 강력한 향신료를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자연의 향과 인위적인 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본격 올인원, 일석이조 메뉴.


4. 이렇게 말하면 흔히 오는 반응은 "물가가 싸니까 쇼핑이라도 많이 하고 와"라며, 종종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는 친구들이 있다. 미얀마는 아직 그렇게 큰 해외자본이 들어온 나라가 아니어서 양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가장 크고 최신의 백화점에 가도 코치(Coach) 정도밖에 입점해있지 않다. 아 물론 더 높은 브랜드가 들어왔다고 해도 내가 사러 가진 않겠지만, 가끔 아이쇼핑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점만 늘어놓았는데, 만약 이게 미얀마 프로젝트의 전부고 내가 위의 가치들을 중요시 여겼다면 아마 난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물질적이고 보이는 가치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들이 미얀마엔 있었다.


1. 미얀마 양곤에는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라는 세계 어느 문화유적지에 갖다 놓아도 뒤지지 않는 너무 아름다운 유적지가 있다. 해지기 조금 전에 도착하면 그 큰 사원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쉐다곤 파고다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선셋인데, 해가 지고 나면 느낄 수 있는 평온함과 경건함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다. 


나의 관광활동이 혹시 여기에서 진심으로 종교적 행위를 하고 있는 스님 및 종교인들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또한, 반바지나 미니스커트 입고 입장이 불가하다. 파고다 정문에서 미얀마 전통의상인 '론지'를 대여할 수도 있고, '론지'가 워낙 예쁘기도 하고 값도 나쁘지 않아 대여 대신 미얀마 여행 온 김에 한 벌 사는 관광객도 많다. 그렇다 보니 사원 내에 들어가면 형형색색의 론지들로 미얀마 바이브는 배가 된다.

2. 영어 잘하는 미얀마. 미얀마 택시기사들도 기본적인 영어를 꽤 잘 구사한다.  과거 영국 식민지를 겪은 아픈 경험 때문일지는 몰라도, 길거리 곧곧에 종종 식민지배가 남긴 흔적들이 보이기도 한다. 관광객으로서 의사소통에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못하는 곳이다.


3. "빨리빨리"의 답변은 "This is Myanmar". 사실 세상 어디에도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맞춰줄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미얀마에서도 종종 그들의 엄청난 느긋함에 답답해 표정이 안 좋아지거나 조금이라도 재촉하면, 짜증을 내는 대신 웃으며 "Slow down, this is Myanmar"라고 이야기해준다. 그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같이 나도 씩 웃으며 "미얀 내가 또 급하게 했지"라고 말하게 된다.


4. 미얀마의 맥주는 세계 최고입니다. 미얀마 맥주 사랑해요.

미얀마 맥주가 세계 3대 맥주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출처가 무엇인진 모른다. 하지만 3 대맥 주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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