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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Dec 07. 2019

개발자 엄마의 아날로그 그림 라이프

Prologue


피할 수 없는 마흔 앓이를 하며 봄을 보낸 그 해.


살면서 가장 많은 질문을 나에게 했다.

난 어린 시절 무엇을 좋아했지? 물음에 떠오른 것은 그림이었다.

일주일에 단 1시간이라도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든다면,

어릴 땐 가까웠지만 자라면서 멀어져 낯설어진 그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하다 끝날 것 같던 그림 그리는 시간은 후덥지근한 날씨와 업무에 지쳐있던 여름 우연히 찾아왔다.

산과 공원으로 둘러 쌓인 작고 아기자기한 우리 동네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아담한 그림 같은 아뜰리에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1번 퇴근 후 동네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디지털 직장 라이프에서 아날로그 취미 라이프가 추가된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주일을 지키듯 나도 그 시간만은 어떻게든 사수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그림생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거창한 전시회를 하거나

일러스트를 그려서 블로그에서 유명해 지거나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서 수입까지 얻었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없다.

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처음 4절 스케치북 앞에서 점 하나 찍기까지 머뭇거리던 나는 이제 빈 종이가 두렵지 않다.

아이 생일에 내가 가장 잘 아는 아이 미소를 그려서 생일카드를 선물하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내 느낌대로 그림으로 남긴다.

엄마가 부엌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6살 딸이 옆에 앉아 같이 그림을 그린다.

아이와 취미를 공유하고 그림으로 교감하는 매 순간 새로운 행복을 경험한다.

그리는 기술이 부족해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아이를 통해 깨닫기도 했다.

삐뚤삐뚤한 선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채운 아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한 그림은 아이와 나에게는 하나뿐인 예술 작품이었다.

서툴지만 행복한 우리 추억을 그려 아이에게 보여주면 ‘엄마, 그림이 예뻐서 계속 보고 싶어요.”란 찬사를 쏟아낸다.


넘쳐나는 멋진 그림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내 스토리로 행복한 순간의 느낌을 담아 기록하고 누군가 따뜻하게 봐주면 충분했다.

그림은 나에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했다.

나를 표현하고 아이와 공유하는 취미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찾은 힐링의 과정을 소개하며 이 글은 읽는 분 중 마음속에 그림을 품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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