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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Apr 04. 2022

코로나 인후통 보다 무서운 후유증

그리고 뜻밖의 위로

딱밤 맞으려고 손가락 이마 앞에 대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 기분이라고

누가 처음 말한 건지 찰떡같은 비유다.


 오미크론의 전염력은 강했고 3월 둘째 주 30만 명의 신규 확진자 수에 나와 가족도 합류했다.

백신 맞은 효과도 못 누리고 오한과 함께 두통, 근육통으로 시작해 인후통으로 절정을 맞았다. 침을 삼킬 때마다 염증이 생긴 목구멍을 날카로운 칼날이 긁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침이 고였다가 삼켜야 할 때가 오면 목구멍의 긴장감은 극에 달해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다행히 아이와 남편은 비교적 가벼운 증상으로 지나갔다.


 자가 격리기간 동안 남편은 평소처럼 서재에서 재택근무를 했고, 아이는 학교는 안 가지만 말끔하게 씻고 예쁜 옷을 입고 부엌 원탁에서 EBS를 보며 숙제를 하고 영어학원 수업도 온라인으로 했다. 나도 오전에는 아이를 챙기고 오후가 되면 평소처럼 거실에 마련한 책상에서 일을 했다. 두통과 컨디션 난조로 집중도가 떨어졌지만 어차피 해야 할 몫이 있어 미루면 쌓일 일이 두렵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일상의 루틴을 지키고 싶었다. 증상이 심해지는 저녁부터는 매가리 없이 침대에 널브러졌다.


격리 중 하루하루는 본능적이고 습관처럼 하던 것들만 남아 있었다.


생존을 위해 삼시세끼 밥 먹는 것,

청결을 위해 씻는 것,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

아이를 돌보는 일,

자고 난 이부자리 정리하는 것,

책을 읽 것.


그리고 위에 나열한 것과 구별되는

내게 의미가 있고 하고 싶어서 의무감을 얹은 온라인 모임도 있었다.


건강 앞에서 계획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목은 조금씩 나이질 기미가 보였지만 피로감, 무기력증, 두통, 의욕 저하는 오래 이어졌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출도 할 수 없으니 몸도 마음도 갑갑했다.


 PC 앞에 일하고 있을 때도 아이는 한 번씩 내 무릎 위에 앉아 한참 안겨 있다가 가기도 했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몸 위에 올라와 안겨 있다가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프니 네가 엄마한테 책 읽어 달라고 역으로 요청했다.

 몸 마디마디가 아팠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치대면 힘들어서 짜증을 내기도 했다. 엄마도 아프면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도대체 엄마는 아프지도 말아야 할 존재인 건가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책장에서 책을 고르는데 눈에 들어오는 책이 하나 있었다.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는 누구보다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던 37살의 여성이 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암 투병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적어간 글에는 아직 어린 두 딸과 남편을 걱정하는 엄마, 아내로서의 애타는 마음과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기의 삶을 계속 들여다보며 삶을 정리해 간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통제할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만나지만 기록을 계속해 나간다.


삶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기분은 어떤 걸까?

막상 코로나에 감염되고 나니 오미크론 증상 중 가장 아팠던 인후통보다도 오래 지속되는 피로감, 무기력증과 격리로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경험이 더 힘들었다.

암환자의 상황과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목표를 잊어버린 듯한 기분에 두려움을 느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조바심을 냈다.

격리 해제 전 날 집안 창이란 창은 다 열어 집안 환기를 시키고 옷방, 욕실, 침구를 갈고 대청소를 했다.

정화를 위한 나름의 의식이었다.


격리 해제 날 처음으로 한 일은 새벽 산책이었다.

하지만 격리 해제가 되었다고 몸이 다 나은 건 아니었다.

아이가 등교하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빨리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작업실 문을 새로 칠할 페인트를 사러 가기도 하고, 날이 유난히 따뜻했던 날 지인과 미술관에도 갔다.

몸을 움직 마음의 기운도 내려던 의도도 피로감 앞에서는 소용 집에 돌아오면 눕고만 싶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은 기침과 기운이 달리고 내적으로 의욕 저하가 이어졌다. 주말에는 낮잠에서 밤잠까지 이어 자는 경험까지 했다.


작업실을 책방으로 만들기 위한 명확한 방향성과 기획이 필요하고, 파트타임 프리랜서 일이 4월에 끝나면 내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을 벌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는 앞이 흐려도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릴 수 있었는데 이때는 잠시 전기가 나가 있는 것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계획이 없는 것보다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도록 하고 싶은 게 뭔지 잃어버리는 상태가  더 무섭다는 걸 알았어요."

온라인 커뮤니티 소모임이 있던 밤 멤버들과 대화에서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답답함에 새벽에 작업실에 가서 이젤을 뚫어져라 보다가 나의 창조성이 완전히 막혔음을 또 한 번 느꼈다.

억지로 끌어올리려 하기보다 침잠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윈 올라프 : 완전한 순간- 불완전한 세계> 전시회에서 봤던 작품 중에 만우절이란 주제로 연작한 작품은 펜데믹 이후 비현실적 상황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영화의 엑스트라 같이 느껴진 작가의 감정을 표현했다. 

원탁이 있는 방 안에 갇힌 듯한 남자가 뭘 할지 몰라 원탁 주위를 빙빙 돌거나 앉아 있는 영상이 있었다. 창도 있고 문도 있지만 방 안에서 나가지 않는다.

 격리 중에 우리 집 원형 식탁 약이 쌓인 것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앉아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아이가 숙제하던 모습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는데 나는 그 순간이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원탁이 나오는 영상에서 우리 집 원탁을 바라볼 때 느꼈던 낯섦이 다가왔고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같은 전시회를 한 번 더 보려고 혼자 미술관으로 향했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천천히 작품을 보고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내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고 흘러 보내는 시간을 보냈다.


억지로 조급하게 이 기분을 밀어내려 하지 않고 나를 돌보며 몸과 마음의 회복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우리가 삶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엉터리 같은 착각이자 잔인한 환상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제어하지 못한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할지 정도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대할지, 삶에 어느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을지, 불가능한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지도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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