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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대담 


백발의 노인이 방송국 계단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걸음걸이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스튜디오 앞에 다다르자 섭외를 담당했던 PD가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몬태그 씨,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가이 몬태그. 방화수로서는 최초로 정부에 반기를 든 인물. 책사람들과 함께 전후 폐허가 된 국가를 다시 일으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람들은 책에서 위안을 얻었고 책을 통해 삶의 이유를 되찾았다. 도시가 재건되고 과학 기술이 다시 인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도 책의 위상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한 블록 건너 하나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점과 도서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사로잡아온 고전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숨죽이며 기회만 엿보던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담아 토하듯 써내려간 새로운 저작들까지. 그야말로 책의 홍수였고 책의 시대였다. 


스튜디오 한편엔 몬태그의 자서전이 진열돼 있었다. 그 책들을 감회에 젖어 바라보던 몬태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오기로 한 친구는?”

“아, 벌써 와서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래 층 출연자 대기실에 있을 거예요.” 


생방송으로 진행될 대담 형식의 토크쇼가 곧 열릴 예정이었다. ‘책의 아버지’ 몬태그와 함께 토론을 벌일 사람은 비티 주니어. 최후의 방화서 소장을 역임했던 비티의 장남이다. 


이윽고 스튜디오는 몰려든 사람들과 각종 조명들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방송이 시작됐고, 몬태그를 소개하는 영상이 전파를 탔다. 이어 사회자가 청년대표로 참석한 비티 주니어를 소개했다. 


“사실 이번 대담은 요즘 점점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청년들의 ‘탈독서’ 움직임과 관련해 청년 운동계의 요청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비티 씨에게 먼저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몬태그 씨의 그간 노력에 대해선 경의를 표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방화서가 있던 예전에 비해, 지금 더 행복해졌습니까?”


“개인적인 질문이라면, 답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행복지수랄까요, 그런 측면을 묻는다면 섣불리 답하긴 어렵겠군요.”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죠?”


“몇 년 전 대학가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소요사태를 기억하시겠죠? 자본을 틀어쥔 세력들이 정부 고위직과 결탁해 수많은 범법행위를 해왔고, 그걸 토대로 다시 부당한 부를 축적하는 악순환에 대항한 거였죠. 물론 그들은 모조리 잡혀갔습니다. 소위 ‘메이저’ 언론에선 이 사건에 대해 늘 한결 같은 기조를 유지해왔습니다. 심지어 전문가라는 자들이 당시 사건을 다룬 책을 앞 다퉈 출판해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차기도 했죠. 책을 모조리 불태우던 시절엔 권력의 중심은 정치였고 무력으로 시민들을 통제했습니다. 당시엔 정부가 불필요하다고 규정한 행동들을 하지만 않는다면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경제적인 불평등의 편차는 크지 않았어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예전에 비해 억압과 통제는 분명 약화됐습니다. 이젠 정부에서 개인의 생활까지 간섭하려 들진 않아요. 정부가 공공기관을 활용해 개인의 책을 모조리 태웠다는 사실 자체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원시시대 일처럼 역사책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 암울한 자본의 지배가 시작됐죠. 지배층이 진화한 겁니다. 힘으로 사람을 노예화 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자발적으로 자본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편이 더 쉽고 뒷맛도 깔끔하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단 말이죠. 마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면 매서운 바람보단 따뜻한 햇볕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죠.”


“이런 말을 하면 ‘꼰대’ 소리 듣기 딱 좋겠지만(좌중 웃음), 어떤 희망도 없었고 어떤 색깔도 없이, 늘 칙칙한 회색 빛깔만 가득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분명 총천연색 빛깔이 나부끼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젊은 세대들은 자기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뽐낼 수 있어요. 앱 하나만 잘 만들어도 단번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고, 하다못해 유튜브 방송 하나만으로도 유명인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아무도, 어떤 누구도 여러분의 생각을 통제하지도 획일화 하지도 않습니다. 안 된다고 규정된 건 어떤 것도 없어요.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또한 존재하지 않죠. 이런 사회를 암울하다고 규정한다는 건, 글쎄요. 청년 여러분들의 반감을 살만한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진짜 어두컴컴했던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본권력의 독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달라진 점, 가장 무섭고 섬뜩한 점은 과거엔 국가와 사회가 일정 부분 책임져왔고 연대해왔던 부분을 거의 전부 개인에게 전가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들로 층층이 나눠진 사회에서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첫 번째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부터 모든 건 개인의 책임이 됩니다. 이로 인해 ‘합법적인 불평등’이 시작됐죠. 책이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건 언제나 멋들어진 성공스토리입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든 나처럼 될 수 있다’고 손짓하지만 실제 통계는 어떻습니까? 1%가 99%의 부를 갖게 된 지 이미 오래죠. 심지어 그 1%는 태어나는 순간 대부분 결정되는 거고요.”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선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 그리고 지금은 감옥에 있는 청년 리더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개선책을 내놓았고 관련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미 축적된 부를 보다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방안들이었지요. 하지만 언론에선 이것들을 한 번도 제대로 조명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이 책들이 소개된 홈페이지나 동영상은 검색 노출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의혹도 있어요. 무서운 사실은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것조차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는 점입니다. 지배층에선 이미 ‘인생의 패배자들, 낙오자들이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배가 아파 딴죽을 건다’는 인식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심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자본권력의 합법적인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불순분자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하기 시작할 겁니다. 역설적으로, 책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일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한평생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말처럼 말이죠. 하지만 책을 통해 이러저러한 일들을 이미 알게 됐고 그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디지털 마녀사냥 끝에 불 없는 화형을 당하더라도 맞서야 하는 겁니까, 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 끄트머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면서 자본권력이 브랜드화 해버린 ‘소확행’이나 찾으며 참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겁니까?”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아시다시피 정부는 개인을 통제하는 일에 더 이상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래서도 안 되죠. 그것 하나만큼은 저와 책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룩한 분명한 업적입니다.”


“몬태그 씨, 저와 당신이 이 주제를 갖고 서로 대립되는 위치에서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입니다. 이를 테면, 노예가 같은 노예를 감시하고 서로 싸우는 셈이에요. 뒤에 숨어 과실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이 바라마지않는 그림이죠. 당신은 이미 부와 명예를 모두 손에 쥐셨지만, 1%는 아니죠. 오히려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하고 있는 존재라고 보는 편이 맞을지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당신도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 1부 토론 잘 들었습니다. 두 분 모두 열성적으로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잠시 후 2부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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