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둥이
안녕?
나는 천국에 잘 도착했어.
네가 마지막으로 읽고 있던 책의 그 까끌까끌한 질감이 떠올라. 시나리오집을 읽는 건 처음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표지를 이리 저리 만져보던 네 모습도 아직 생생해. '윤희에게'에서 네가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 중 하나가 #48번 씬이었잖아. 마사코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후, 영정사진을 보며 "천국에 잘 도착했니?"라고 묻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그 파트(물론 그 직후에 나보다 약간 못생긴 고양이 한마리가 은근슬쩍 등장하는 것 때문에 네가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라. 그날은, 날 잠시 데리고 있었던 그 '집사' 말마따나 내겐 굉장히 힘든 날이었어. 며칠 전에 들렀던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내 새끼들을 내 품에서 뺏어간 지 얼마 안 된 때였거든. 언젠가는 헤어질 운명이긴 하지만, 부모 마음이란 게 다 똑같잖아.
마지막 하나 남은 그 딸 아이는, 이상하게 인기가 별로 없었어. 집에 찾아오는 인간들마다 다른 아이들에게 전부 관심을 집중할 뿐, 그 아이에겐 처음에 딱 한 번만 시선이 머물렀지. 수줍음도 많이 타고 얼굴에 큰 점도 있지만 너무나 착하고 귀여운 아이인데 말야.
그런데 너는 좀 달랐어. 역시 유기동물보호소 봉사활동 경력이 그냥 생긴 건 아닌 건가 싶었지. 고양이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는 느낌이었달까. 그날 몸도 마음도 피곤했던 나는, 그래서 네 무릎 위로 서슴없이 올라갔던 거야. 내가 '무릎냥'이 되자마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던 그 집사의 표정이란. 하긴 내가 그동안 좀 도도하게 굴긴 했지.
여튼, 네가 생각했던(혹은 오해했던) 것처럼 내가 특별히 신호를 보낸 건 아니었어. 물론, 하나 남은 딸과 함께 입양될 수 있다면 당연히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으니까 내심 기대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우린 한 집을 공유하는 가족이 됐었지.
그 이후 7년. 이 시간은 내겐 묘생에서 가장 평온했던 시기였어. 딱히 재밌는 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도 전연 없었으니까. 다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전에 동거하던 인간에게 버려지면서 한동안 길냥이 생활을 했을 때 아마도 그때 뭔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지.
나는 너 만큼이나 병원을 싫어했어. 예방 접종을 받으러 갈 때마다 수의사 혼자로는 안돼서 네가 항상 나를 잡고 있었잖아. 그날 너를 콱 깨문건, 뭐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해. 인간의 피부가 그렇게 약할 줄은 몰랐지 뭐야.
너와 영영 이별하게 됐던 날, 그 마지막 금요일 오전의 상황을 더는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 답지 않게 출근하는 너를 배웅하며 냐아 하고 울었던 건, 물론 마지막임을 살짝 직감했던 거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달란 뜻은 아니었거든. 오히려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해서 내가 미안해. 네가 그렇게 슬퍼할 줄 알았다면, 눈물도 없었던 네가 그렇게 안쓰럽게 울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견뎌냈어야 하는 건데 말이지.
나는, 천국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어. 그렇다고 너무 일찍 올 필요는 없어.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항상 달랐잖아. 여긴 더 그래.
언젠가 네가 읽었던 그책 말야.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라는 제목의 책이었지? 너 역시 늘 그걸 궁금해 하며 후회하곤 하길래 마음이 아팠어. 당연히 그건 비교할 수가 없지! 길냥이들의 평균 수명은 3~5년밖에 안된단 말야. 난 열 살이니까 그 두 배를 살았는 걸. 그리고 너와 함께 한 시간, 나 역시 좋았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은데 우린 마음으로만 대화할 수 있잖아. 내 마음이 이제는 너에게 모두 전해지길 바라.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