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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23. 2021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꿈을

셋, 책일기

안녕하세요, 친구들. 정말 오래 걸렸죠? 저는 수필이 여전히 어렵네요.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 되는,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일인데 말이죠.      


믿어주실지 모르겠지만,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삼일이나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고 움찔움찔했답니다. 여러분들은 쉽게만 쓰시는 것 같은데, 제게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이유를 찾고 싶어서 요즘 여러 수필집을 들척이고 있어요. 

  


매일 뭔가를 하고 있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나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허공에서 발버둥 치는 기분이다. 이 글은 두 발로 딱 버티고 살고 싶어서 쓴 결과물이다.
11p

글을 쓰는 일이 마치 망망대해 속에서 잡을 것 하나 없이 허우적대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미화 작가님의 <<삶은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를 읽게 된 거예요. 보세요. 작가님은 마치, 단단한 땅을 밟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신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흙먼지가 흩날리고 태풍이 쏟아져도 굳게 서있을 것처럼 느껴져요.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책은 영화를 통한 자아 성찰의 메시지를 담은 수필집이에요. 우리가 지금 쓰는 ‘책 읽고 책일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하지만 어찌나 솔직하고 명료하고 담백한지. 이 책을 읽던 도중, 제가 글쓰기를 주저했던 이유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거짓말쟁이에게도 해피엔딩이 올까. 정말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147p
 

사실 요즘 제가 적어놓은 것을 다시 읽어보면서, 다중인격인가? 생각을 했어요. 상항이 달라져서 그런 것뿐인데, 모아놓고 읽어보니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들을 주장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두려웠어요. 과연, 지금의 내가 영원히 박제되어도 괜찮은 걸까, 하고 말이에요.      


수필은 때때의 감정과 생각의 기록이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니, 어쩌면, 아직 자아확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요.


글을 쓰는 일은 나 자신을 꽤 그럴듯한 인간으로 윤색하는 일이기도 해서, 에세이에 등장하는 ‘이미화’는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미화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145p



친구들. 친구들이 글을 통해 바라보는 제 모습은 어떤가요? 제 실제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나요? 아니면 더 음침하고 어두워 보이나요? 사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게 아니에요. 그냥 제 글을 통해 제가 보이지 않을까 봐 제일 두려워요. 그럴듯해 보이는 글의 스타일을 따라가다가, 저답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그런 거짓말쟁이가 되면 어쩌나, 걱정되어요.      


내로라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들이 ‘역자 차영지’를 달고 세상에 나가는 것을, 제가 얼마나 뿌듯하게 여기는지 여러분은 아시죠. 하지만 매번 단편 소설 뒤에 붙은 해설에는 ‘번역가의 해석’ 혹은 ‘편집장의 말’들로 포장하는 것 역시 여러분 아실 거예요. 저는 제가 오늘날 품은 생각이 제 이름을 달고 세상에 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봐요. 

      


내게 치트키가 있다면 그건 아마 계속 쓰는 일일 것이다. 신이 주신 가장 큰 벌은 작은 재능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나는, 고작 이만큼만 쓸 줄 알아서 딱 이만큼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괴롭다. (...) 완성하지 못한 원고가 쌓여가더라도 책상에 앉아서 뭐라도 쓰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그저 보통의 인간일 뿐인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치트키일 것이다.
102p


언젠가 이 두려움이 사라질까요? 걱정이 그치게 될까요? 아니면 그저,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글을 쓰고 내보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 그거 하나를 알게 되었으니, 이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바라보기로 했어요.


오늘의 저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해요. 어쩌면 미래의 저에게 누가 될 글을 발행해대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글쓰기를 멈춘다면, 지금의 나로 그치고 말 테니까. 그냥 계속 열심히 궁둥이 붙이고 써보기로 했어요.

안다훈에게 꿈이란 눈을 감고 나무가 빼곡한 숲 속을 걷는 일이다. 누군가는 나무에 부딪히면서도 앞으로 걸어갈 거고, 누군가는 한 방에 고꾸라져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적은 확률이지만 나무에 한 번도 안 부딪히고 숲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게 영화감독이 되는 길인 것 같다고. 안다훈은 말했다.
195p


갑자기 파파 할머니가 된 우리가 공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상상돼요. 그때도 우린 글이 잘 안 써진다며, 무언가가 두렵고 무언가가 귀찮고 무언가가 힘들다며, 서로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늘어놓지 않을까요?


어쩌면 숲을 영영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노하우가 붙겠죠? 지형지물을 다 알게 되어서 눈을 감고도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사고와 상처에 빠르게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이성적이고 빠른 대처는 리밍 님이 하실 것 같고, 미지의 땅 모험을 제안하는 것은 팅팅 님이실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네요. 


할머니가 되어도 꿈꾸기를 그치지 말아요, 우리. 

계속 쓰고, 세상에 내보내요, 우리.   

   

김미화 작가님의 10년 연인, 안다훈님이 너무 부러워졌던 이 책의 마지막 구절로 저도 마무리할게요. 제가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안다훈이 영화감독이 되든 되지 않든, 숲을 빠져나오든 중간에 되돌아오든 상관이 없지만, 그가 나무에 부딪힐 때마다 귀신처럼 들러붙어 그를 귀찮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음흉한 웃음을 삼켰다.
196p

우리들의 서툰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하며,

영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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