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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un 09. 2021

나를 떠난 말과 행동은 세상에 박제되니까

셋, 책읽기

안녕하세요, 친구들.


오늘은 오랜만에 마음이 평안한 상태로 편지를 써요. 그런데 신기하죠? 마음이 평안하니 글감이 굳어버렸어요? 크크크. 그래서 오늘은 ‘잘 사는 법’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리밍 님의 편지를 읽고 어쩐지 조금 더 잘살아 보고 싶어 졌거든요.      



살던 대로 살기 싫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처음엔 더 민감한 사람들부터 기존의 방식을 거역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제와 같이 살기 싫어지면 그때부터는 도저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이 뒤집힌다. -185     


그래서 꺼내 든 책은 권석천 님의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친구들은 살던 대로 살기 싫어지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인생의 결단을 스스로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저는 무너져 내렸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이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계속 떠밀려 살아왔기 때문이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한 발 한 발이 두렵고 떨린다. 그러나 어른이 되지 않으면 영원히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남의 인생에 전세 사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 107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 모든 결단도 후회도 제가 짊어지겠다고 다짐했지요. 하지만 그때부터 또 다른 병이 시작된 거예요.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병이요. ‘더 나은 사람 되기’ 병이요. 그게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빈말을 일삼았고 진심을 살피지 않았으며 그저 바쁘게 흔들흔들 살아왔던 거 같아요.      


굳이 논리적으로 살려고 애쓰지 마. 인생 자체가 문법에 맞지 않아. 비문이야, 비문. 그 부조화와 오류가 바로 인생인 거라고. -284     


혼란은 금방 찾아왔어요.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내던진 빈말과 위로가 이기적인 세상을 만드는데 기인하고 있었더라고요. 그저 감정적으로 위로하기 위해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준 것뿐이었는데, 그 사람은 제 위로를 자기중심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합리화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저처럼 생각 없이 내던진 빈말과 위로가 모여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진상을 증식시키고 있었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모여 제가 종사하는 업계의 노동력 착취의 계보를 만들고 있었어요.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해달라는 추가 작업을 무상으로 해주고, 싫은 소리 하기 싫어서 모든 편의를 봐주었어요. 한 번만 해주고 끊어버려야지 생각했던 것뿐이었는데, 그 사람은 저와의 작업을 다른 누군가의 인력을 착취하는 합리화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무상 작업을 요구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요율을 깎으려는 진상들도 늘어났죠.      


이렇듯 작은 사회에서 아웅다웅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직역이기주의의 늪에 빠져든다. (...) 집단적으로 자기 연민에 빠진다. (...)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는 것들이 주변의 영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사무실에,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크고 작은 편견의 미세먼지들이 뭉치고 뭉쳐서 내 가치관이 되고, 신념이 된 것은 아닐까. 그 가치관과 신념이 얼마나 균형감각 있고, 상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142     


불특정 다수의 편협한 신념 강화에 일조한 제가,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요? 그저 무책임한 겁쟁이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조금 더 명확하게 알아야 하겠더라고요.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요.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게 뭔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잖아요. 좋은 사람은 뭔지, 세상에 이로운 사람은 뭔지. 인간은 전지 하지 않으니까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정확히 어떤 성격과 성향과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섬세하게 그려봐야 하는 거였어요.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대한 빚이 쌓인다. - 136     


얼마 전 자경 님께 그런 이야기를 해드렸죠.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니까 담아두지 말고 훌훌 털어버리시라고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러려니 넘기고 사소한 것들은 타협하며 살아가자고요. 그 말을 하고도 조금은 후회했어요. 리밍 님 말처럼 조금 더 민주적이고 조금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저처럼 수용하고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찡그리고 대드는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를 떠난 말과 행동은 우리만의 것이 아닌 거죠. 우리와 얽혀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영원히 박제되고 마는 거예요. 


불편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원칙이 없으면 여러분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도 편하게 느끼겠지요. 원칙을 지키다 보면 여러분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해고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200   

  

빈말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만의 원칙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생각을 툭툭 내뱉으며 여기저기 상처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진심을 조금 더 지혜롭게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일단은 충고에 신중하고 칭찬에 정성을 들이기로 했어요


저는 사실 소심하고 포부도 작아서, 제 마음을 가득 채운 바람들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이에요. 하지만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니까.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니까. 용기를 내어 보려고요.     


조금은 이상해도 괜찮을 거 같은 작가들마저 너무 정상적이어서 실망일 때가 있다. 반듯한 용모에 단정한 머리를 하고, 말쑥하게 차려입고, 원고 마감 잘 맞추고, 살면서 신호 위반이나 무단 횡단 같은 건 한 번도 안해봤을 것 같은 작가들이 많다. (...) 그래도 문학 하고 예술 하는 분들은 호기도 부려보고 기행도 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나 같은 사람들도 대리만족이라도 해볼 거 아닌가. 뻐끔거리는 입술로 숨 쉬는 시늉을 하면서. -227     


그래도 당분간은 조금 더 침묵하고 조금 더 열렬히 경청하는 사람이 되려고요. 아직은 지혜보다 자격지심이 조금 더 커서, 조언인 양 칭찬인 양 교묘하게 비집고 나오곤 하거든요.     


언젠간 순진무구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상대방에게 꼭 맞는 예쁜 포장으로 진실을 건네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눈치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이들이 많아야 하오. 거짓을 말할 수 없어서, 그런 사람이라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곳곳에 있어야 하오. 순진무구한 과학자 같은 사람. 진실 탐색에 온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진실이 드러나길 원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는 걸 미처 생각 못하는 사람. -136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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