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Nov 18. 2022

01. 태교는 단단해지는 과정

자아상에 엄마 역할 더하기

01. 태교는 단단해지는 과정     


     선명하게 한 줄, 흐릿하게 한 줄. 두 줄이었다. 엄마가 된다니! 

     순간적으로 기쁨이 벅차오르다가 갑자기 암담해졌다. 해내고 싶은 일과 해내야만 하는 일의 목록이 머릿속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기를 안아 드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따듯해지다가도, 방 안에서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남편을 바라보니 피가 차갑게 식었다. 한 가지 명확한 감정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테스트기를 처음 확인한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즐거움의 혼돈 그 자체였다. 기억을 더듬어 앱을 내려받아 마지막 생리일을 입력했다. 임신 4주 4일 추정이었다. 


     계획하고 준비한 임신이 아니었다. 아기를 고대하고 있던 것도 딱히 아니었다. 결혼식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마무리 지었으니, 딱히 막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아기의 탄생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인데. 안일하고 무책임하며 멍청했다. 생기면 좋지. 무신경하게 툭 내뱉은 말에 인생 선배들이 뭐라고 조언했더라. 잘 생각해보라는 둥, 낳을 계획이면 엽산은 미리 챙겨 먹으라는 둥. 응, 알겠어. 감사한 척 대답했지만, 조언은 한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나갔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엽산은 아직도 결제창으로 향하니 못한 채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심란한 마음에 목적지도 모른 채 인터넷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아기의 뇌세포 생성에는 엽산이 필수라고 한다. 현실의 지인들도 그토록 강조하더니, 인터넷의 모든 전문가도 떠들어댔다. 뇌세포라는데? 불안과 자책감이 솟구쳤다. 그러다가 편의점 테스트기는 고작 40% 정확도를 보장할 뿐이라는 글을 만났다. 그래, 임신이 아닐 수도 있지. 안도하는 척 숨을 내쉬었지만, 마음에 헛헛함이 퍼져나갔다. 그래, 아닐 거야. 머릿속 음성의 볼륨을 키웠다. 뇌세포라는데, 맞으면 어떻게? 메아리가 마음을 얼얼하게 울렸다. 더 깊고 은밀한 곳에서는 우리의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역시 마음은 모순덩어리다. 


     신랑에게 테스트기를 사다 달라고 가볍게 여러 차례 부탁했다. 생리주기는 불규칙했어도 증상은 언제나 같았는데, 이번 달에는 착상혈로 의심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출산의 시작부터 함께하고 싶어 부탁은 했지만,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았기에 가볍게 말을 했었다. 너무 큰 욕심이었나? 남편은 번번이 잊었다. 이유는 주로 퇴근 후 곧장 이어진 회식이었다. 회식도 일이고 일이 바쁘면 그럴 수 있지. 합리적인 생각을 앞세우려 애를 써봤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금세 몸집을 불렸다. 본인 아이잖아. 궁금하지 않은가? 섭섭함이 휘몰아쳤다. 어쩌면 자책감을 잊기 위해서 남편을 집중적으로 탓했는지도 모른다. 휘몰아치는 감정 앞에서 논리적인 생각은 아무런 힘이 없고, 할 수 있는 건 떠오르는 감정을 그저 지켜보는 일뿐이니까. 


     “지인짜아?!! 최고네에?!!”


     신랑은 생각보다 격하게 반겼다. 테스트기 하나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정확도가 40%밖에 되지 않는다는 글을 봤다고, 나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러나 두 눈 가득 넘실거리는 기쁨의 물결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회의와 미팅 일정이 가득해서 당장 병원에 동행할 수는 없다고, 며칠 뒤로 예약을 잡자고 신랑은 말했다. 하지만 번들거리는 눈빛 때문인지 나는 이상한 죄책감이 더 커져서 그 며칠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께 말했고, 병원 동행을 요청했다.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는 말에도 엄마는 일단 생리는 안 하는 게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축하해주셨다. 아빠는 고장 난 사람처럼 삐걱거리다가, ‘자식보다 손주는 몇백 배로 더 예쁘다던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다들 기뻐하며 축복하니 나도 기뻤다. 다들 좋아하니까 기뻐야 했다. 그런데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축하한다는 말이 쌓일수록 세기의 사기꾼이라도 된 같은 죄책감이 치솟았다. 오묘한 감정이었다. 임신이 아닐 수도 있는데. 요즘 조기 유산이 그렇게나 빈번하다던데. 생리 주기야 원래 불규칙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온 종일 은밀하게 꼬리를 물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괜한 긴장감에 목이 멨다. 태명은 된소리가 좋다며 아빠는 ‘태양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셨는데, 나는 차마 배를 쓰다듬으며 그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찾아보고 집 근처 자연주의 출산병원을 찾아갔지만, 접수처에서는 아직 시기가 너무 이르다며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테스트기를 세 개나 더 했는데 선은 점점 더 진해졌고, 신랑과 부모님은 기쁨을 마음껏 표출했다. 그럴수록 나의 불안은 짙어져 갔다. 피검사를 하면 초음파보다 발리 임신 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을 두 차례나 더 방문했지만, 번번이 선생님의 일정과 맞지 않아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매번 동행해준 신랑에게 미안해서 나는 변명 섞인 자책을 늘어놓았다. 나도 참 이상하지, 왜 이렇게 확인하는 데 집착할까? 의외로 신랑은 담담하게 답을 툭 뱉었다. 건강하게 잘 생겼는지 궁금해서 그렇겠지. 엽산도 안 먹었고, 그랬으니까.


     맞았다. 간단했다. 이래저래 복합적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아기가 생겼을 수도 있어서 많이 설렜고, 차곡차곡 준비하고 맞이한 게 아니라서 미안했고, 임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두려웠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벌써 엄마로서 낙제인 것 같아서 ‘복합적인 마음이겠지’라고 뭉뚱그린 뒤 미루어 놓았다. 한 번씩 나는 신랑이 신기하다. 마음이나 생각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그저 현실만을 살아가는 로봇 같은데, 가끔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람을 꿰뚫어 감동을 준다. 그날 밤, 아빠가 손글씨를 써서 보내주셨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깨달았다. 가장 깊은 마음을. 나는 찾아와 준 아이를 사랑하게 될까 두려웠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려고 애썼지만 은밀한 기대감이 너무나도 거대해져서, 아이가 생긴 게 아닐 때의 실망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만일 배 속의 아이가 내 생각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면, 부정하는 이 생각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 않을까? 


     생각보다 쉽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감정이 소용돌이칠 땐 잠잠해질 때까지 그저 바라보는 게 최선이다. 진정하라고 날뛰어봐야 먼지만 더 날 테니까. 하지만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잠잠해지겠지 믿고 내버려 두면 은밀한 곳으로 뿌리를 내린다. 미지의 어둠을 크게 부풀려 비밀스러운 망상을 그려낸다.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 하지만 담백하게 털어놓고 직시하니, 어둠을 피워낸 정체는 아주 작고 하찮은 씨앗이었음이 나타났다. 


     아기는 열 달 동안 엄마 배 속에서 자란다. 어쩌면 이건 아기의 육체적 성장을 위한 과정이 아닌, 엄마가 되는 데 필요한 정신적 성장을 위한 기간일지도 모르겠다. 열 달 동안 열심히 태교를 하리라고 결심했다. 스스로 비밀이었던 여러 가지 마음을 하나씩 열어보고 더욱 단단해지겠다고, 그런 태교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기가 배 속에서 자라는 동안 더 크고 단단한 사람이 되자고, 신랑과도 서로를 위해서 약속했다.

    

그리고 우리는 말했다. 

벅찬 기대와 고대하는 마음을 가장 크게 품고 기다리자고. 

이번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