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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부러워하신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나는 엄마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너는 좋아하는 일 하고 사니까 좋겠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다.  그리고 뒤이어 엄마의 작은 푸념이 이어졌다.  엄마가 회사에서 얼마나 의미 없는 보고서를 줄곧 쓰고 있는지. 그 일들이 얼마나 하기 싫고 지겨운지. 그 외의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맞다. 나는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다 못해,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던 와중에 엄마의 푸념이 머리에 쿵하고 부딪혔다. 그리고 그녀의 20대를 생각해보았다.








꽤나 어린 나이에 날 낳으신 엄마는 어느 학부모 모임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제일 젊고, 옷도 잘 입고, 아가씨 같은 우리 엄마는 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유독 학부모 모임이 잦았던 내 모교에서 엄마는 그다지 다른 아줌마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평일 점심에 있는 모임 시간에 엄마는 출근을 해야 했고, 간혹 주말이나 저녁에 모임이 잡히면 엄마는 밀린 집안일이나 집안 어르신들을 모셔야 할 일이 있었다.


엄마는 밤마다 회사일일 붙잡고 있을 때가 많았고 주말출근도 부지기수였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하셨는데, 엄마도 너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밤마다 일을 하나보다 싶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좋았다. 가끔 친구들이 우리 엄마를 마주치면, 왜 이렇게 젊으시냐고 놀라곤 했다. 그러면 난 으쓱했다. 그리고 뒤이어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일 때문에 얼마나 바쁘신지 자랑했다. 친구들은 내가 역시 커리어우먼의 딸이어서 나도 열심히 사는구나 라며 나도 함께 치켜세워주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의 순간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엄마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줄 알았다. 퇴근하고 이어지는 집안일에 불평 하나 없는 엄마를 보며 그녀가 정말 ‘강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렸는데, 그녀는 강했지만 그녀의 일은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저녁 업무는 내가 씩씩되며 눈물을 삼키며 하던 야근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나이 차이가 열 살은 넘게 나는 학부모들 사이에 서있는 기분은, 내가 종종 미팅을 갔을 때 내 나이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헤아리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는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금까지 사무실에 그렇게 앉아 있는 데는 “엄마”라는 책임감이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모든 것을 숨겨온 엄마는 분명히 어른이었다. 그것도 강한 어른.






내가 거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옆에 쓰윽 오셔서 잔뜩 반짝이는 눈으로 무얼 하는 것이냐고 여쭤보신다. 이러이러한 것을 또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하면 입으로는 ‘몸 상하지 않게 너무 일 벌이지 마라’라고 하시지만 목소리는 잔뜩 상기되어있다. 그리고 뒤이어 부러움과 뿌듯함이 섞인 한 마디가 이어진다.


“영지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 너무 즐겁겠다.”

그때쯤 되면 아예 의자를 끌고 앉아서 얘기하신다. 엄마한테 쫑알 쫑알이라는 표현은 참 버릇없지만, 그 외에 적절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 친구들한테 내 자랑은 재수 없을까 봐 더 이상 하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엄마도 회사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거 할까 하는 이야기까지..  이제는 대사까지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신다.


그리고 반복되는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는 작은 메시지들이 마음을 아려온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않았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산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뿌듯하고 부러운지를.


꼴에 머리는 조금 컸다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나 보다.

하지만 당장 ‘엄마 일 때려치워 내가 책임질게’라고 당당히 외칠 만큼 자리를 잡지도, 엄마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 이해해 들어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는 나에게 짜증이 난다.

괜한 짜증은 엄마에게 튀어, 바빠 죽겠는데 집중 안되니 그만 얘기하라는 이유로 대화를 끊지만, 사실은 속 안에서 무언가 울렁거려 기분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의 하고 싶은 것을 찾아줘야 될 것 같은 작은 책임의식과 이제껏 그런 엄마를 못 알아봤다는 죄책감의 뒤섞임.



이 울렁거림은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아직 한참 어른이지 못한 내게 어렵기만 하다.







그날도,  나는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연말에 파리에 갈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엄마가 스윽 오셨다.  


“뭐해?”

“나 연말에 파리 가려고. 한 달 정도 있다 올 거야.”

“파리는 왜?”

“머리도 식히고, 작업도 하고, 파리 가서 꽃 공예도 좀 배우려고.”

“꽃 공예?”


그제야 퍼뜩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작은 얘기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꽃집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현실의 많은 것들이 그녀에게 시도조차 어렵게 했다.

“꽃”얘기가 나오자마자 엄마 눈이 반짝였다.


“응. 공간 연출할 때 식물이 톡톡히 쓰이는데 조금 제대로 배우고 싶더라고. “

“그래? 나도 꽃 배우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꽃집에 대한 엄마의 젊었을 적 생각들을 얘기했다.

꽃들이 얼마나 좋은지, 하지만 일이 얼마나 힘들지도 아는지, 벌이도 얼마나 적을지.

그렇지만 한번 배워볼걸 하고.  


문득 작은 생각이 스쳐갔다.

 엄마는 몇십 년 동안 수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 편히 하는 법은 잊은 것이 아닐까. 우리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이 너무 낯선 것이 아닐까 생각 들었다.


나는 아직 나 하나 간수하는 것도 너무나 벅차다. 그래서 “내가 다 책임질 테니, 엄마는 일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 다해”라는 말은 목구멍에서 맴돌 뿐 결코 소리 내어 나오지 않는다.  

아직도 어리광 부리고 싶은 딸의 마음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엄마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만 앞설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지금 당장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보다 더 단순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배짱과 근거로 나는 꽤나 무리수를 던져보았다.



엄마도 가서 배울래?



나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엄마 눈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내가 쏘아붙였다.


“엄마 포장 엄청 잘하잖아. 나보다 손재주 더 좋잖아. 엄마가 나보다 배우면 더 잘하지 않을까.”


한 2,3초의 머뭇거림이 지나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렇지 내가 손재주가 좋은데. 어쩌면 나는 진작에 이런 일 했으면 더 좋았을지 몰라.

그럴까? 언제 갈 건데? 연휴 맞춰서 쉬면 될 거 같아.






그래서 그렇게 나는 12월에 엄마와 함께 꽃 공예를 배우러 가기로 했다.

수업료가 부담돼서 나는 안들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파리 가서 쉬고 엄마가 수업을 듣고 오면 그걸로 됐다.


요즘은 내가 노트북을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내가 부럽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주제를 계속 얘기하신다.

날짜는 언제가 좋을지, 수업 커리큘럼 중에 뭘 들으면 좋을지, 가기 전에 뭘 하면 좋을지.

그러면 나는 또 귀찮다는 듯이 얼마 전에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나이 쉰 넘어서 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린 사람 이야기, 예순여섯에 바르셀로나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는 사람들 이야기.  엄마도 잘 배워와서 대박 꽃집 차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풉. 그래서 너희 외할머니가 50대가 제일 좋은 나이라고 하셨나 보다.


여든의 외할머니는 엄마가 부럽다고 하셨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딸들은 엄마가 포기한 작은 순간들을 먹으며 자라나 보다. 그렇게 부러움 아닌 부러움에, 그리고 기특함에 살아가나 보다.


12월 엄마랑 꽃 공예 여행이 끝나고 와서 엄마가 당장 무얼 시작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여행은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의 짐을 나려 놓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여행이 끝난 후에,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는 뿌듯함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9화 <엄마는 날 부러워하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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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난주 업데이트가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ㅠㅠ
일러스트 양도 적고 퀄리티도 미흡하네요. 지금 현재 잠시 출장 중이랍니다 ㅠㅠ 출장 복귀 후 보다 완성도 있는 원고로 재 업로드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항상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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