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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Nov 10. 2019

오! 나의 발레

발레로 나의 세계를 쁘띠(petit) 확장합니다

나에게는 꽤나 수줍은 취미가 있다.  취미면 취미고, 부끄러운 것이면 부끄러운 것이지, ‘수줍은’ 취미라니.

하지만 나의 작은 발레 생활에는 ‘수줍은'이라는 형용사 외에는 다른 마땅한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발레 하는 여자다.


발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목이 얇고, 늘씬하고 (- 때때로 마르고), 손가락 마디까지 가는 사람들을 의례 떠올리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온몸의 구석구석이 짧고,  날씬 보다는 통통이라는 형용사가 잘 어울리고, 목은 또 왜 이렇게 짧은 지 목티를 입으면 턱끝까지 옷 선이 올라온다.  

그래서 자연히 내가 발레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일관된다.  당황함과 약간의 웃음이 뒤섞인..,


“응? 네가?"


그들이 나의 발레 생활에 놀라움을 표하듯, 나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간혹 무례하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괜히 말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취미 생활을 ‘부끄럽다’라는 말 대신 ‘수줍다’라는 말을 붙이는 데에는 발레에 대한 나의 각별한 애정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면 꼭 학원에 등록해 수업을 듣곤 했다.  이 시기에는 사춘기 소녀처럼, 이틀에 한번 정도는 아무나 붙잡아두고 발레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곤 했다.  그리고 요즘처럼 여유가 없어 수업을 못 듣는 시기에는, 다시 수업을 들을 그 날을 아련하게 기다려 본다.






나의 유별난 발레에 대한 애정은,

처음 발레를 하기로 마음먹은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직후에 학교 근처 합정동에서 자취를 했었다.  소식하고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며 의외로 건강한 루틴을 가지고 살았던 파리 생활 때와 달리, ‘복학 버프’를 받아 야간작업을 거의 밥먹듯이 하며 정말 빠른 속도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여기에 자취까지 하며 밥도 거르기 일수고, 작업하는 때 말고는 잘 움직이지도 않으니 부모님의 걱정이 날로 심해졌다. (사실 나는 이때의 기억 때문에, 자취를 하지 않는 다. 아무튼, )

그래서 ‘운동 좀 하라!’는 부모님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운동을 꾸준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꽤 큰돈을 내고 운동시설에 등록하여 열심히 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맞는 운동을 먼저 찾을래요’라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곤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와중에, 돌연 엄마가 발레를 제안하셨다.  사실 요즘에는 성인들을 위한 취미 발레수업이 흔하고, 퇴근하고 발레 하러 가는 어른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발레 학원을 등록할 시기만 해도, 발레는 초등학생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발레를 하던 모습에 대한 환상이 오래 남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몸이 너무 뻣뻣해서, 초보자를 위한 요가 수업도 고통스러운 나에게 발레라니.   하지만  오히려 그 어이없음에 되려 엄마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어른들도 해?”

엄마는 자기 회사의 젊은 직원들 중에 강남까지 가서 발레 수업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다들 그렇게 좋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정말로 그때는 ‘취미 발레’를 검색하니 강남에만 몇 개의 학원이 있을 뿐이었다.

어 그런데 웬걸,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성인들을 위한 취미 발레학원이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초등학생들만 하는 줄 알았던 발레를 진짜 어른들도 한다는 사실에 놀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렸을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서 그랬을까.  집 앞에 취미 발레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뭐에 홀린 사람처럼 후루룩 가서 수업을 등록했다.  레오타드에 스커트에 스타킹에 슈즈까지 사니, 눈 앞에서 삼십만 원이 증발해버렸는데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첫 수업이 꽤나 기대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하고 5분이 지나자마자, 아뿔싸 싶었다.

발레가 유연성이 필요한 운동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다리를 아주 인정사정없이 쫙쫙 찢는 것이 아닌가.

 

정말 괴로웠던 요가학원을 등록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나의 몸을 꾹꾹 누르며 매일매일 스트레칭 해지면 유연 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수업을 들으며, '태생적으로 요가에 적합한 몸이 따로 있구나’를 정말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며, ‘아 발레도 나와 맞지 않는구나’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의 점점 새파랗게 질려가는 얼굴을 보신 걸까? 발레 선생님은 스트레칭을 돕는다며 나를 정말 인정사정없이 누르셨는데, 돌연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못마땅한 스트레칭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되니, 선생님이 하는 것의 절반도 하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무리가 가지 않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그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스트레칭 시간이 끝나고 바를 잡고 동작을 배우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1번 발부터 시작해서, 2번 발, 4번 발, 5번 발을 차례로 배우고 기본적인 자세 들을 하나씩 배웠다. 마지막으로 발레를 한 것이 여덟살쯤인 것 같은데, 발 동작의 명칭이나 손가락 모양들을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큰 무리 없이 바로 동작을 외운 것이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자신감이 한껏 올라가며 ‘발레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예외 없이 곧장 추락했다.  8살 때의 기억과 달리, 내 몸은 그 후 15년 넘게 지속해 온 나쁜 자세와 습관 들에 의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선생님은 직접 나의 뼈 마디마디, 근육 마디마디를 짚어주시며 어떤 것이 바른 자세인지 지도해주셨다.  그런데 그 바른 자세가 너무 말도 안 되게 불편해서 선생님이 잘못 가르쳐주시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냥 제대로 서있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서, 선생님 구호에 맞춰 동작을 하나하나 할 때면 다리가 파르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지나갔고, 나의 첫 발레 수업이 끝났다.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는데 벌겋게 상기된 빵떡 같은 얼굴이 정말 발레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몇십만 원 내고 시작한 것이라 책임감에 몇 번 오고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받았다.

역시 하던 것을 해야 해. 발레도 나랑 잘 맞지 않아.

탈의실을 나오던 차에, 선생님이 갑자기 내 팔을 딱 잡고 속사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발레가 처음이죠? 처음에는 다 그래요. 그런데 발레 배우는 것은 젓가락질이랑 비슷해서 정말 처음 몇 번만 참고 견디면,  어떤 힘도 들어가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까지 얘기하니, 내가 수업 내내 표정이 너무 어두웠나 싶어 괜히 미안하고 머쓱 해져 대화를 이어갔다.

“아 네, 사실 제가 운동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라서 조금 힘든 것 같아요.”

“아~ 발레를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작은 취미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도움이 되실 거예요.”


이 힘든 것을 취미라니.  발레는 건강에 대한 죄책감에 등록한 또 하나의 ‘운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기야 선생님은 이런 운동을 좋아하니까 이 일을 하고 계신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며, 역시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아하.. 네.. 제가 항상 취미로는 앉아서 끄적끄적하는 것 밖에 하지 않아서 낯선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고 나니, 정말로 내가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가 금방 포기하고 나에게 ‘익숙한 것들’을 하는구나 싶었다.

파리에 있을 때는  돌연 통기타를 배우겠다고 중고로 하나 구매한 적이 있었다.  처음 구매할 때만 해도, 사라 바렐리스 노래들을 완주하겠다 (그때 당시 좋아하던 가수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코드 몇 개 해보고는 ‘역시 나는 음악이 안 맞아’라며 포기해버렸다.

친구를 졸라 선물 받은 거품기도 마찬가지었다. 쿠키 몇 번 만들고, 부엌 싱크대 밑에 쳐박힌 거품기는 다시 빛을 볼 날이 없어 보인다.  

결국 나에게 남은 활동들은 너무 오래전부터 내가 해오던 활동 들과 유사하여 처음부터 큰 무리가 없었던 활동들이었다.

차근차근 내가 하는 활동들을 적어보니, 어느 정도 서로 이어져 있는 데다  모두 나를 중심으로 딱 ‘한 발짝’만 떨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활동들 밖으로는 ‘익숙함’이라는 장벽이 두텁게 쳐져 있어, 그 장벽 밖의 것들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해왔다.


나는 '익숙함' 너머의 것들은 너무나 쉽게 포기해 왔다.


발레도 몇 번만 참고하다 보면, 젓가락질처럼 익숙해질 거라는 선생님의 말이 기억났다.  이번에는 왠지 발레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선생님의 말이 시무룩한 신입생을 위한 빈말이건, 진심이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대해보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수업을 이어갔다.

스트레칭은 여전히 힘들었다. 선생님은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은 매일 연습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하셨다.  물론 2주밖에 안되었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나의 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바 운동은 그랬다.  두 번째 수업까지는 여전히 서있는 것만으로 식은땀이 났다. 진도는 또 왜 그렇게 빨리 빼시는지... 한쪽 다리로 서있는 동작을 배우는데, 복부의 힘으로 서있어야 했다. 그런데 배에 힘을 주어야 중심이 서진 다고 하는데, 아무리 몸에 여기저기 힘줘봐도 기우뚱 하기는 마찬가지 었다.  팔을 벌리는 자세를 할 때면, 팔 뒤쪽이 너무 당겨 집에 오면 팔이 후들거리기 까지 했다.  세 번째 수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한쪽 다리로 서는 것이 아니라 까치발을 든 상태로 서 있어야 했다. 이제 겨우 한쪽 다리 중심을 잡기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 수업부터 까치발로 서라고 하니,  내가 너무 혼자 진도가 느리나 싶었다.  팔도 이제 겨우 되나 싶었는데 시선처리에 다리 동작까지 같이 하니, 곱절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날도 꽤나 헉헉 되며 수업을 마쳤다.  '도대체 언제쯤 젓가락질처럼 편해질까’ 하는 마음으로 터덜터덜 탈의실에 들어가려던 차에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영지 씨! 거 봐요, 이제 젓가락질하는 것처럼 편하죠?”

해맑은 질문에, 선생님의 젓가락질이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아니요' 라고 얘기한 후 이제 겨우 한 발로 중심을 잘 서게 되었는데 까치발로 서는 것도 너무 힘들며, 팔과 다리를 같이 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속사포로 얘기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정말 어떤 때보다 빙그레 웃으며 얘기했다.

“그런데 어때요? 이제는 서있는 것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쉽지 않아요?

처음에는 서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했잖아요.”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의 말이 백번 맞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작 하나하나에 익숙해 있었다. 그다음 난이도의 동작을 하기 위해 집중을 하느라 떠올리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그냥 서 있는 자세가 너무나 익숙해진 후에는 한 발로 서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다음에는 까치발로 중심을 잡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나의 발레 젓가락질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느낌이었다.  


겨우 수업 세 번째 만에 발레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기쁨에 들떠, 집에 가는 내내 사람들이 없을 때면 수업 때 배운 스텝을 밟으며 걸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발레의 동작에는 이런 이런 것들이 있다며 오래간만에 불어를 써가며 설명까지 했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수업을 세번 연속 나갔을 뿐인데, 이미 익숙함의 장벽 너머로 한 발짝 내디뎠던 것이다.


아 물론, 난 절대 저렇게 동작을 하지 못한다.





나는 거의 매 수업마다 지난 수업보다 아주 조금씩 성장한 나를 관찰하며 발레를 점차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의무감에 가는 운동이 아니라, 나의 작은 취미 생활로 명실공히 자리 잡은 것이다.

처음 세 달은 단 하루도 수업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갔다.  화려한 발레복을 입은 다른 수강생들을 보며 밤마다 발레복 아이쇼핑을 하기도 하고, 토슈즈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을 부러워하며 나는 언제쯤 토슈즈를 신을 만큼 성장할까 상상해보곤 했다.  그때즘 되어서는 자신 있게 내 취미가 발레라고 얘기도 하고, 그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아무 말 못 할 정도로 발레에 대한 나의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무나 달라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발레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세계에 꽤나 큰 요소로 우뚝 자리 잡아 버린 것이다.



내가 이번 주 글은 발레에 대해 쓴다고 하니 친구가 약간 놀리면서 얘기했다.  왜냐면 그 친구는 알고 있다. 내가 실제로 발레를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학교와 회사가 너무 바빠 못 다녔던 시기가 더 길다는 것과 - 몇 년 동안 다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도’ 초급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나는 사실 치명적인 몸치라, 누구나 다 하는 몇 동작을 배울 때만 빠르게 성장했고 그 이후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는 명실공히 나의 ‘일등’ 취미 생활이다.  정말 눈곱만큼이지만, 조금씩 성장해가는 나를 보는 것도 즐겁고,  옷장에 하나씩 쌓여가는 발레복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선생님의 우아한 몸짓을 보며, 나도 그렇게 되는 날을 상상하는 것도 너무나 즐겁다.  내가 만약 여느 나의 시도들처럼, 첫 수업에 발레를 포기했다면 이 즐거움을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발레에 대한 나의 각별한 애정에는 발레를 통해 물고를 튼 나의 세계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제는 내가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때, ‘몇 번만 참으면 젓가락질하듯이’라는 얘기를 스스로한테 한다. 사실 이렇게 매주 글을 쓰는 것도, 처음에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요즘은 바빠서 글을 많이 못 쓰는 것이지, 글 쓰는 괴로움에 못쓰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나의 세계를 "쁘띠(PETIT)" 만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이 나의 생활에 일부가 되도록 말이다.


Fin
12화 : 오! 나의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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