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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19. 2020

'나'라는 회사의 - '나'라는 사장, '나'라는 직원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창업기

나는 20년 넘게 내가 꽤나 자기 주도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내 일'을 시작하니, 좌충우돌 우왕좌왕 영락없는 초보 사원, 초보 사장이다. 그냥 '하면 되는 줄'알았는데, 내 일을 하려면 '일하는 나'와 '사장인 나'를 정말 잘 다스려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 "너 자신을 알라" 고.

이 유명한 격언은 특히 자신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계획을 짜는 이들에게 날카롭게 적용된다.  하지만 '나 자신만큼은 정말 잘 안다'라고 자부하던  나에게는 비껴가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노란 집 입주 3주 차 - 아직도 산더미같이 쌓인 일들 앞에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내 일' 하는 데에 매우 서툰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잔뜩 벌려진 '내 일' 앞에서, 한 없이 자꾸 작아지기만 한다.  내가 이렇게, 자기 주도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는가! 하고 말이다.



내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벅차다. 첩첩산중에서 맨땅에 헤딩하기는 덤.




사실 내가 나 스스로 나의 공간, 나의 브랜드를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착각한 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첫째, 난 학창 시절에도 엄한 선생님이나 학원 숙제 없이도 스스로를 달달달 볶았었고,
둘째, 프리랜서 기간에도 근무시간이 왔다 갔다 했을 뿐이지 일을 밀린 적이 없었고,
셋째, 아무런 보상 없는 이 브런치 글들을 어찌 됐건 계속 연재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겠노라 이리저리 뛰다가 이렇게 덜컥 계약까지 하니 말이다.


남들이 1을 시키면, 2를 하니 - 이 정도면 내 브랜드를 만드는 준비는 다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일 때든, 회사 직원일 때든, 프리랜서 일 때든 누군가가 제공해준 가이드라인에 잡혀서는 어떻게 어떻게 하겠는데, 내 공간에서 '내 일'을 하려고 하니 도무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하루는 신나게 소품샵 준비를 위한 사진 촬영을 했다.  보정까지 후루룩 진행하니, 오전이 뚝딱 하고 가더라. 그런데 한 차례 촬영 타임이 끝나고 나니, '이다음에는 뭐하지?' 하고 멍 때리게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멍을 안 때리겠다고 무리하게 계획을 세운 날은, 일들을 그다음 날은 물론이 와 심지어 그다음 주로까지 미루고 있었다.


명백한 목표와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나는, 어버버버하며 버벅거릴 뿐 어떤 행동하나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큰 계획에 맞추어 작은 계획이 세워지지 않으니 자꾸 ' 이다음엔 어떻게 하지 ' 하고 부딪히고, 계획을 짤 때는 너무 거대한 계획이 짜져 내가 감당하지 못할 스케줄을 짜곤 한다.







이 오합지졸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계획을 하는 '나'와 일하는 '내'가 같이 일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장님 역할을 해야 하는 '나'는 직원이 감당하지 못할 계획만 짜고, '일'을 해야 하는 나는, 일단 몸부터 움직이니 주어지는 일이 없으면 멈춰버린다.  내가 직원일 때나,  내가 고용주 입장에서 제삼자에게 오더를 내릴 때는 당연하게 하는 일들을, 내가 직원과 사장의 역할을 동시에 맡자마자 이 상황이 연출되었다.  나는 그만큼 '사장'인 나에게도, '직원'인 나에게도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다.



사장인 ‘나’는 감당못할 계획을 짜고, 직원인 ‘나’는 스스로의 역량에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내 일'을 할 때에는, 아주 분명하게 사장님인 나와 직원인 나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고, 그 둘이 잘 협업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해야 한다.  사장님인 내가 멀리 내다보며 큰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계획에 맞추어서 작은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지 감시하고, 직원인 나에게 너무 큰 업무가 부담되어 있진 않은지, 혹은 나의 역량에 맞지 않는 일들을 비용을 절약하겠다고 계속 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직원인 나는, 내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에 솔직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 청소, 못 박기, 전등 교체, 커튼레일 달기..

이 모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내가 직접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소야 할 수 있지만, 청소를 하느라 하루에 세네 시간을 그냥 보내고 나면 그다음 일이 잡히지 않는다.

못 박기, 전등 교체, 커튼레일 달기 등 몸을 쓰는 일들을 조금만 하면 저질 체력이 금세 바닥나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작은 시공들이 여러 개 있는 날들은,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 안에 다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이런 일들은, 비용이 들더라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현명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옛말이다.  고생 안 할 수 있는 것은 안 하는 것이, 멀리 내다보았을 때 훨씬 좋다.  10만 원, 20만 원을 아끼겠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의 효율이 떨어지거나 차일피일 미룬다면, 절대 내 브랜드, 내 공간은 만들 수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일들을 다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 그러니 직원인 나는,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생각해야 한다.  디자인 작업이나 사진 촬영들이 그렇다. 디자인이야, 원래 본업이 디자이너니 차치하고도 사진 촬영은, 비용을 투자한다고 치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에게 의뢰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은 정해져 있으니, 여러 가지 일들 중에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은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나의 브랜드의 색깔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라면 더욱더 금상첨화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직원'일 때 어땠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일을 아무리 잘하고, 일이 재밌어도 지치는 순간에는 반드시 SOS 요청을 하고, 적절한 보상을 요구한다.  내 브랜드, 내 공간을 위해 달리다 보면 번아웃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내가 지치는지 아닌지를 계속 감시하면서, 보상을 요구하기도,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야 하는데, 내가 북 치고 장구치고 하다 보면 내가 지치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말 '직원'이다 라는 마음으로, 정확한 근무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다가 그 시간이 초과되면 나를 위한 시간과 선물을 꼭 주자. 그러지 않으면 나만의 공간이 나오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사장인 나는, 계속해서 목표를 구체화해야 한다.

망원동 노란 집을 계약하기 전에는 나도 나 스스로에게 놀랄 만큼 모든 일들을 '척척척' 해나갔다.  부지런히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가구를 고르는 것도, 시공도 말이다! 그런데 노란 집을 오픈하자마자 갑자기 오류난 기계처럼, 멍 때리는 순간이 이어진다.


사실 내가 노란 집을 계약하기 전에 바지런히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숙박업소를 운영하면서도 작업실 겸 소품샵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얻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그다음 목표가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아 모든 일들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다음 스텝에 대한 목표를 구체화하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의 노란 집이 단순한 게스트하우스, 혹은 소품샵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 말이다. 그렇게 큰 목표를 세워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들을 세운다.  작은 목표들 중에서 너무 먼 미래의 일이나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투자해야 하는 일들 말고, '내가 당장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을 구체화해본다.



나무의 가지들이 뻣어나가는 것 처럼, 큰 목표에서 작은 목표로, 그리고 작은 목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은 시간 단위로 확실하게 일을 쪼개서, '직원인 나'에게 시키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일들의 효율이 떨어지거나, 성과가 좋지 않는다면 일을 한꺼번에 너무 부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가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잘못 세운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검토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필요하다면 계획이나 운영방식을 과감하게 바꾸는 결단도 중요하다.


사실 내가 망원동 노란 집을 계약할 때만 해도, '개인실'로 운영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개인실로 운영해보니 게스트들끼리 트러블도 많고, 체크인 체크아웃이 매일같이 이루어지니 내가 하루가 멀다 하고 관리를 위해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문에 내가 디자인은 물론, 소품샵 준비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운영 시작 2주 만에 '독채 숙소'로 운영방식을 변경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같이 놀러 오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평일은 공실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대신, 비용을 조금 더 받고 투숙객들이 최대한 편하도록 더 다양한 시설들을 제공하기로 했다. 해서 어떤 주는 금요일 토요일만 예약이 차더라도 개인실을 매일 운영했을 때보다 매출은 훨씬 늘었다. 물론 내가 체크인 체크아웃 관리를 일주일에 두 번만 하니, 내 일이 줄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사실 불과 일주일 전에 노란 집 운영방식을 '대폭' 바꾸었다.  정말 오픈하고 처음에는 적자에 대한 걱정 + 예상치 못한 운영 스트레스로 속이 다 쓰렸었다. 이렇게 운영해서는 내가 계획했던 것들을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꽤나 우려가 되었지만, 막상 바꾸고 나니 오히려 매출도 좋아지고, 나의 일들도 훨씬 줄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장인 나는, 이렇게 계속 나의 운영방식을 검사하고 성과를 지켜봐야 한다.


“내 일하기”는 매순간 선택과 방향수정을 하는 <거친 드리프팅 운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내 사업을 하다 보면 '매출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많이 못 벌어도 좋아!'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집에 이미 포르셰가 몇 대 있는 분이시거나 아니면 그 '못 벌어도 좋아'의 기준이 이미 한 달 생계비에 용돈 할 만큼은 충분히 나오고 계신 분들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처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들 이어도, 어느 순간에 오면 노동력 대비 수익, 노동력 대비 나의 만족도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조금만 운영을 해보면 매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본업으로 사업에 뛰어든다면, 다른 수입원이 없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우리는 그렇게 매출에 집착하는 '매출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숫자에만 집착하게 되어 우리가 원래 생각했던 '나만의 공간', '나만의 브랜드'를 위한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나의 공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간을 종종 갖는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은 멈추고, 오로지 설레고 기쁜 상상들로 가득 채운다.


내가 이 공간에서 어떤 것들을 더 기획할 수 있을지.

나의 다른 일들과 이 공간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내가 누군과와 콜라보를 한다면 어떤 재미난 일들 함께 할 수 있을지.


 '사장인 내'가 얼마나 이 상상하는 시간을 갖느냐에 따라 어떤 사업이 그냥 소소한 생계수단이 될 수 있고, 꿈꿔왔던 재미난 것들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들이 실현되어 많은 돈을 벌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아니라 내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한 명이라도 더 내 브랜드를 좋게 기억해줄 수 있다면 그만한 성과가 있을까?





오늘 나는 소품샵 제품들을 인터넷에 하나씩 업로드하고, 오후에는 노란 집에 프로젝터 설치를 위한 일정을 조율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한 작가님을 만나 여행 / 공간 그리고 요가와 명상을 통한 재미난 프로젝트를 같이 기획했다.  밤에는 디자이너 친구들과 함께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이 프로젝트를 내 공간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상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장도 나요, 직원도 나인 1인 브랜드, 1인 공간은 정말 바쁘고 치이는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 나의 공간과 브랜드에 대해 상상하는 이 작은 시간은, 나로 하여금 다음날 또다시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직은 어설프기만 한 초보 사장에 할 줄 아는 것 빼고는 다 못하는 어버버 직원이지만, 그 둘의 케미는 점점 좋아지는 듯하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이 둘이 - 아니 나라는 사람이 만들 브랜드와 공간에 대한 깊은 기대를 하고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망원동 노란 집 이야기>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자신만의 공간을 꿈꿉니다.   여기, 그 꿈을 조금 '덜컥' 이뤄버린 글쓴이가 있습니다. 

'망원동 노란 집'은 글쓴이가 항상 꿈꿔오던 작은 공간으로,  

1층에는 작업실과 소품샵의 쇼룸이, 그리고 2층에는 방 6개짜리 작은 숙박업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 숙박업도, 유통업도, 심지어 디자이너 프리랜서도 다 처음인 글쓴이가, 이 노란 집에서 지내며 자신의 일과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미숙하지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자신의 창업일지를 통해,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고자 합니다. 


매거진을 구독하셔도 좋고, 브런치를 구독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https://docs.google.com/forms/d/19_tW8euLdEGyLWlmjKi1JYVagh1pECWmAZ3egjBqmnk/edit 

위 폼에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매주 <어려서 그렇습니다> 시리즈와 함께 글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쓴이 김영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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