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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Jan 04. 2019

7. 주체성을 배우는 나날들_리가, 라트비아

그들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는 것

모스크바 지구, 리가, 라트비아




목적지에 도착한 버스가 출입문을 열었다. 인도로 내려서는데 정류장에 서 있던 두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예쁜 얼굴에 멀대 같이 껑충한 소녀와 파란 눈동자가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소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소녀들의 볼에 홍조가 번졌다. 호기심과 부끄러움을 반반씩 섞은 표정들. 오랜만에 마주치는 풋풋한 장면에 마음이 흐물흐물해졌다.


리가에서는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지 못해 호스텔에서 첫 날을 묵었다. 이튿날이 되어 혹시나 하면서 지역에 사는 카우치서퍼를 검색하다가 지미네 집에서 카우치서핑으로 머문 기록이 있는 율리아나의 계정을 발견했다. 결손 아동을 돕는 ‘호프 포 칠드런’(Hope for Children)이라는 기관에서 일한다고 프로필에 적어 놓았기에 호기심을 발동해 연락을 취했다. 얼마 전 카우치서핑으로 지미네 집에서 머물렀다는 얘기를 전했더니 그녀가 반가움 가득한 답장을 보내왔다. 메시지를 몇 차례 더 주고받다가 호프 포 칠드런 아동센터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내가 아동 센터에 도착하기 전, 율리아나가 아동들에게 한국에서 온 손님이 곧 찾아올 거라고 얘기했던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정류장으로 픽업을 나오기로 약속한 율리아나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현지 소녀 둘과 눈이 마주쳤다. 멀대 소녀와 사파이어 소녀. 율리아나 대신 나를 마중 나온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율리아나가 설명하길, 약속 시간 30분 전부터 정류장에 나가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단다.


두 친구의 뒤를 따라 아동 센터로 향했다. 둘 다 아직 영어가 서툴러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걸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두 친구는 연신 볼을 붉혔다.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몸을 배배 꼬기도 했다. 아동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10여 명의 아이들이 토끼 같은 눈동자를 깡총거리며 나를 반겼다. 곧이어 간식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 앞으로도 음식 한 접시가 놓였다. 간식으로 배를 부풀린 후에는 한국을 주제로 아동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동네 밖의 소식이 궁금한 그들은 양 볼에 호기심을 잔뜩 매단 채 내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그들이 갑자기 한국의 국가를 불러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난처했지만 토끼 눈을 한 채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그들의 표정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졸지에 애국가를 불렀고, 답가로 그들의 국가를 떼창으로 들었다.


호프 포 칠드런 센터의 아동들, 리가, 라트비아


한 차례 방문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은 나흘이나 이어졌다. 아동 센터로 향하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구입한 식재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기도 했고, 아이들과 다 같이 해수욕장에 물놀이를 하러 가기도 했다. 한국 음식을 만들 때는 다나와 율리아라는 친구가 나를 도왔다. 혼자서 만들 생각이었는데 두 친구가 슬금슬금 곁을 파고들어 야채를 다듬기 시작하기에 이것도 교육이겠구나 싶어서 끝까지 같이 만들었다.


하루는 아동 센터에서 잠도 잤다. 카우치서퍼인 율리아나가 아동 센터를 잠자리로 제공해 주었다. 시설 관리자인 율리아나와 출입 아동들을 통틀어 가장 맏이인 안젤리카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를 마중 나왔던 멀대 소녀 야나도 함께 밤을 보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야나는 내가 말을 걸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줄행랑을 쳤다. 유난스럽다 싶었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부끄러움으로 인해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해 온 야나가 내가 머무는 날을 기해 아동 센터를 잠자리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나 역시 사춘기를 겪었으니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동 센터가 위치한 곳은 리가에서 가장 위험하기로 소문난 두 곳 중 하나였다.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도시답게 구시가를 포함한 중앙 시가지의 모습은 고풍스러웠지만 그 사이에는 낙후된 풍경도 뒤섞여 있었다. 치안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현금이 모이는 중앙시장과 아동 센터가 자리 잡은 동네는 현지인들에게도 요주의 장소로 꼽혔다. 아동 센터가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해맑은 표정으로 아동 센터를 드나들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는 기분이 섬뜩했다.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칠렐레 팔렐레하며 드나들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큰 일을 겪을 뻔했다. 그런 이력의 동네에서 천진난만한 소녀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낮에는 내가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했지만 야심한 밤에는 동네 사정을 훤히 아는 그들이 내 수호천사로 나섰다.


호프 포 칠드런 센터가 자리한 동네의 한 폐가, 리가, 라트비아


나머지 아이들과도 사이 좋게 지냈다. 내가 아동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일과를 마치고 시내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못 가게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두루 사랑받았고, 그만큼 행복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두어 명이 짐짓 무관심을 가장했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녀석은 그동안 나를 주시해 온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빠뜨릴 것 없이 사랑스러웠다.


한국에서 예술 축제가 마무리된 상태라 ‘I am a forest’ 프로젝트를 지속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며칠간 숙고한 끝에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 참여자들에게 목적과 지향점에 대해 공감을 많이 얻으면서 프로젝트의 유효성을 충분히 확인한 상태였다. 최대한 밀어붙이다가 정 힘들면 그때 중단하기로 했다. 호프 포 칠드런의 아이들을 만날 무렵이었다.


아동 센터 출입 넷째 날, 아이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율리아나의 통역으로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자 아이들은 "숲이 없어지면 과일을 먹을 수 없다", "나쁜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등의 단순하지만 명쾌한 교훈들을 쏟아냈다. 아주 적극적이면서 솔직한 표정들이었다. 녀석들의 진지한 태도가 나를 자주 압도해 왔다. 자필 메시지를 적는 모습들 역시 인상적이었다. 종이에 'I am a forest'라는 문구와 자신의 이름을 적으면 된다고 설명했더니 자필 문구에 더해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고 종이를 찢어 붙이면서 각자의 개성을 한껏 발산했다. 문구도 다양하게 변주했다. 성인들은 시키는 대로 하기에도 급급하던데 아이들은 저마다의 감성으로 모든 규칙을 뒤바꿨다. 상상력을 거침없이 발산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감탄한 나날들이었다. 내 사고와 감성이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매 순간 깨달았다. 아이들은 더없이 주체적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행하고 요구하고 표현했다. 성인들처럼 눈치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언행이 곧 그들 자신이었다. 주체성의 가장 모범적 사례를 코 앞에서 경험하고 있는 셈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실천적 태도에 날마다 탄복했다.


내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섭섭한 감정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아쉬움을 억누르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성인의 작별법과는 완전히 반대의 방식.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들의 체온이 마음을 흔들어 댔지만 서운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머릿속의 판단과 달리 온몸에 깊이 뿌리 박힌 나잇값의 강박이 표현을 가로막았다. 울음이 얼굴에 한 가득 고인 아이들을 어렵사리 떼어 놓고 밖으로 빠져나오는 길. 나흘간 아이들이 보내 준 충만한 사랑을 뒤로하고 걷는 발걸음이 허전했다.

 

중앙시장, 리가, 라트비아


블랙헤드 하우스 앞 광장, 구시가, 리가, 라트비아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20th~22nd, 25th~27th 퍼포머 :

Jana(20th), Dana(21st), Julia(22nd), Rusland(25th), Jurants(26th), Anzhelika(27th)


- 국적: 라트비아

- 촬영지: 리가, 라트비아


촬영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율리아나가 아이들을 이끌어주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번갈아가며 솟구치고 이탈했다. 어렵사리 개인별 촬영도 했지만 한 자리에 다 같이 서 있는 모습이 그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해 촬영에 임한 8명의 아이들 중 6명의 사진은 단체컷으로 대체한다. 8명이 모두 서 있는 사진이지만 한 녀석은 뒤쪽에 숨어 자필 메시지만 살짝 보여 주고 있다. 아동 센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루슬란은 자필 메시지를 세로로 들고 있다. 이름도 자신의 이름 대신 친누나인 다나의 이름을 적었다. 글쓰기가 능숙하지 못해 누나의 자필 메시지를 베끼다가 발생한 현상이었다. 형식 밖으로 뛰쳐나가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23rd~24th 퍼포머

: Rihard(23rd), Raivis(24th)


- 국적: 라트비아

- 촬영지: 리가, 라트비아


반항과 거부는 어른들의 자기장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보호하려는 사춘기 소년들의 전략이다. 자립의 출발이자 펑크의 시작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에게는 더욱 반항하지만 이해하는 어른에게는 마음을 연다. 그렇다면 '호프 포 칠드런' 아동 센터에서의 나는 어땠을까?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했다. 리하르트는 다가왔지만 라이비스는 다가오지 않았다. 저 나름의 방식으로 관심을 표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호응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시간이 한 이틀 더 있었으면 라이비스와의 관계가 조금 더 나아졌으려나?



28th 퍼포머

: Juliana Sokolova


- 국적: 라트비아

- 촬영지: 리가, 라트비아


아동 센터에서 보낸 마지막 날, '호프 포 칠드런'의 간사인 율리아나와 함께 시내의 한 전통 음식 뷔페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아동 센터의 맏이인 안젤리카도 동행했다. 뷔페의 옆에는 작은 놀이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서 율리아나가 홀로 배회하는 한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가출 상태라는 사실을 직감한 때문이었다. 소년이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자 율리아나는 자신의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소년에게 내밀었다.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만 맡아달라며 소년이 우리에게 건넨 소지품 속에는 라이터도 들어 있었다. 소년이 돌아온 직후 얼마간 넷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29th 퍼포머

: Wassil


- 국적: 라트비아

- 촬영지: 리가, 라트비아


율리아나와 함께 '호프 포 칠드런' 아동 센터를 관리하는 간사 바실은 건장한 체구의 근육남이다. 상남자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사내답게 날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그의 일이었다. 매번 전쟁 치르듯 격렬한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바실은 힘든 내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 풍경이 워낙 화목해 보여 아동 센터가 위치한 곳이 리가에서 가장 위험한 두 지역 중 하나라는 사실은 마지막 날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바실이 없었다면 아동 센터가 그처럼 아늑하고 활기찰 수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바실은 유쾌한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자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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