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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Jan 11. 2019

13. 변방으로의 탈주_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영원한 잠에 빠진 엠마뉴엘 칸트의 묘지 앞에서

칼리닌그라드에서 묵었던 쑤샤네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설 때마다 주민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곤 했다. -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전과는 다른 목표를 안고 오른 여행길이었다. 관광 명소 기행, 나 홀로 첫 해외여행,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여행, 자유를 뒤쫓는 여행, 직장 때려치우고 해외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어디까지 가봤니 여행, 슬럼프 극복 여행 등은 이미 해 본 상태였다. 모두 굉장한 경험들이었고 그 덕분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지만 되돌아보면 여행의 실제 모습보다 수사가 더 화려했다. 솟구쳐 오르고 싶은 욕망으로 두 겹 세 겹 얼굴에 분칠 하던 시절이었다. 여행의 끝에서 거머쥐게 된 것이 무언지도 모른 채 무작정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르시시즘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러건 말건 주변 환경은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급성장한 IT 기술이 기성의 가치 체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고, 거대 규모로 누적된 빅데이터가 정신세계를 파고들어 개인의 행동 패턴을 흔들었다. 평생직장의 소멸, 전통적 직업 구조의 붕괴, 생산 방식의 다변화가 상식으로 통하기에 이르렀다. 시야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현란하게 변화하는 사회와 복지부동하는 개인적 속성 사이에서 갈대처럼 흔들렸다. 생존 기반도 점점 왜소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업에 뛰어든 지인들의 푸념이 주변을 떠돌았고,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한 직장인들의 무기력한 목소리가 일상을 뒤덮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학자금 대출로 저당 잡힌 청년들의 아우성이 그 사이로 메아리쳤다. 운 좋게 성공한 몇몇만이 방송에 출연해 장밋빛 인생을 열창할 뿐이었다. 


세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읽어내려 했지만 관념만이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녔다. 현상을 응시하려 해도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들이 몰입을 방해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목소리들도 혼란을 부추겼다. 돈만 되면 그만이라는 다판다주의자들, 성공을 숭배하며 욕망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석공들, 행간마다 상업 광고를 줄줄이 매단 미디어들, 쇼윈도 행복 뒤로 앙상한 몰골을 숨긴 인생들. 그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떠밀려 가다 보니 삶의 방향키가 제멋대로 돌기 시작했다. 인생이 심드렁해졌고, 상상력도 시들시들해졌다. 일상이 공회전하면서 하루하루를 의무 방어하기에 바빠졌다. 문득 사방을 둘러보니 막다른 골목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두서없이 역류하는 분노의 여울목에 발을 담근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립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질릴 대로 질린 이 세계를 탈주하기로 했다. 신선한 공기가 흐르는 곳에 가고 싶었다. 다채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곳에서 신나게 달음박질을 하고 싶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를 꽉 붙들어 줄 바위 하나를 채굴하고 싶었다. 그럴 만한 곳이 어디인지를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내 더듬이가 포착한 장소는 변방이었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통제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 그리하여 지배적인 가치 질서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 지도를 펼쳐 놓고 이제껏 가보지 않은 곳들을 살폈고, 그중 문화적, 역사적으로 가장 익숙하지 않은 지역을 추렸다.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와 극동 유럽으로 선택지를 좁힌 후 여행의 목적과 현지 상황을 두루 고려한 끝에 극동 유럽을 최종 낙점했다. 대부분의 극동 유럽국들이 서구식 경제 체제인 시장 제도를 도입했다지만 아직까지 보존돼 있을 저마다의 문화와 전통이 새로운 관점을 선사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도심에서 마주친 오바마 피자. 그의 선거 구호인 'Yes, we can'을 변형한 'Yes, we eat'라는 문구도 간판에 적혀 있다. -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여행지를 정하고 나자 다시금 힘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삶의 작동 원리가, 세계의 뒷골목 풍경이 궁금해졌다. 공유 경제를 앞세운 공산주의는 어떤 풍경을 잉태해 세상에 꺼내 놓았을까?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공산주의 혁명은 정말로 실패한 걸까? 혁명이 출산한 결과는 어떤 표정으로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을까? 공산주의의 공동체 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개별화를 주창하는 자유주의 사회와는 그 풍경이 어떻게 다를까? 스스로 일어서는 자립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아가는 연대는 서로 반대말인가? 자립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연대를 할 수 있는가? 연대를 통해 자립에 이를 수는 없는가? 


길을 나섰다.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해 보려고 'I am a forest' 프로젝트를 겨드랑이에 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실험 도구이자 세계와 소통하고 교감하기 위한 장치로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를 선택해 배낭에 넣었다. 사진을 판매해 여행 자금을 현지에서 확보해 볼 생각이었다. 이른바 자급자족의 실험. 그 과정을 통해 경제적 자립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으면 했다. 판매 경험을 누적한 후에는 시야를 사진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범위로 넓혀 더 많은 해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거리에서 사진 판매를 시도했다가 난항에 부딪히면서 방향을 ‘판매’에서 ‘공유’로 바꿨다. 개인 경제의 순환을 도모할 길이 막혔다. 


절망감은 느끼지 않았다. 진정한 자립은 경제적 자립 하나로는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아무리 자유롭다고 해도 그것이 남들을 따라 사는 삶이라면 결코 자립적이라 할 수 없었다. 자신만의 관점을 생산해 그것으로 세계를 독해할 수 있을 때라야 삶은 주체적인 표정을 드러내 보일 것이었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나다운 가치관과 신념을 내 삶의 영토 위에 세우는 것, 자신에게 적합한 방향으로 자립의 조건을 산출해 내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립일 것이었다. 경제적 자립 역시 그 토대 위에서 얻은 게 아니라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소치에 불과할 것이었다. 


청과물을 비롯해 각종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중앙시장,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국경을 통과해 얼마간을 달린 버스가 어느새 칼리닌그라드에 도착했다. 철의 장막 속에 가려져 있다가 뒤늦게 그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는 서구의 영향력 아래에서 오랜 기간을 지내왔던 우리에게 변방의 종주국이나 다름없었다. 침묵 어린 시선으로 내 행동거지에 주목하는 수많은 현지인들의 모습에서 변방에 왔음을 실감했다. 더욱이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영토 중 유일하게 본토와 떨어진 곳이었다. 미국의 알래스카처럼 그 맥박을 본토에 잇지 못한 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철옹성처럼 에워싸인 모습이 외로운 섬을 연상시켰다. 변방의 종주국인 러시아 내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곳이니 일부러 변방을 찾아 나선 나로서는 제대로 찾아온 셈이었다.  


도착 첫날, 도심을 돌아다녔다. 서구 브랜드가 잔뜩 입점해 있는 쇼핑몰 하며, 가상 경제에 기반한 영미식 금융업이 한껏 활개를 치고 있는 거리의 모습들 하며, ‘할인’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써서 내건 상점들까지 도시 곳곳에서 마주친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장 압권은 도시의 중앙에 맥도날드가 입점해 있는 모습이었다. 내부의 풍경은 미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데 간판에 적혀 있는 글씨는 러시아의 언어인 키릴어였다. 공간을 출입하는 현지인들의 표정이 공간에 꽤 익숙한 듯 보여 나로서는 그 풍경이 오히려 생경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맥도날드가 공산주의의 견고한 틈을 파고드는 데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먼 미래를 내다본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일부 시스템을 현명하게 녹여내며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공산주의의 현실적 부조리를 털어낸 러시아가 세상의 유용한 것들을 흡수하며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나는 이러한 풍경 속에서 무엇을 더 읽을 수 있을까?


호숫가에서 열린 현지 청년들의 소풍,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현지 친구들과의 교류 속에서도 의문 부호는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다녀온 호숫가 소풍에서도 물음표는 튀어나왔다. 가랑비가 짓궂게 달려드는 날씨에도 괘념치 않고 기분 좋게 소풍을 즐기는 모습들은 패기 있어 보여서 좋았다.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과 현장에서 구운 치킨 바비큐 그리고 맥주와 보드카도 아주 맛있었다. 현지에서 전설적인 대중 음악인으로 추앙받는다는 한국계 러시안 락커 빅토르 최의 노래도 그들의 선곡으로 기분 좋게 들었다.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가사가 워낙 시적이어서 현지인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는 설명이었다. 소풍에 동행한 여덟 명의 친구들은 신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겼다. 몰개성의 시대를 건너와 저마다의 생기를 한껏 뿜어내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동구권 최강국 국민의 자부심이 여전한 그들이 즐기는 문화의 유입처는 서구 사회였다. 그 풍경이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러시아에서는 변방 중의 변방인 칼리닌그라드주를 주변국들은 그냥 러시아로 여겼다. 이 역시 역설적인 광경이었다. 각도를 달리해 생각해 보면 러시아는 소비에트 시절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동구의 중앙으로 행세해 왔다. 주변국들이 독립한 이후에도 언어와 문화, 경제와 외교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비에트 시절의 흔적도 아직까지 주변국들에 잔뜩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변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앙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동토의 왕국에 와서야 깨닫고 있었다.  


도심을 관통하는 프레골랴 강의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중앙에 자리한 묘 자리 아래에는 세기의 철학자인 엠마뉴엘 칸트가 영면해 있었다. 인류를 이끈 위대한 사상가는 동 프로이센 시절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고 불렸던 이 도시에서 팔십 평생을 살았다. 지역의 지배적 사조였던 경건주의와 항구 도시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교차하는 한복판에서 온 인생을 바쳐 독창적인 사상을 직조해 냈지만 그 무대는 드넓은 세계가 아니라 협소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고장이었다. 그 사실이 변방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특정하고 있는 나를 당황케 했다. 


시가지를 떠돌며 많은 생각을 했으나 낯선 풍경들을 독해해 삶으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식 시장 경제가 지구라는 이름의 푸른 별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이 상황 속에서, 또 낡고 녹슬고 게으른 내 사고와 습관들 위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려면 생각보다 긴 시간을 들여야 할 듯했다. 내 앞으로 난 길은 여전히 변방으로 뻗어 있었다. 남은 여정 속에서 다시 한번 변방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로 했다. 자립적인 삶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더듬어 보기로 했다.


도심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맥도날드,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뒤쪽 편 외벽 아래의 묘소에 엠마뉴엘 칸트를 안장한 칼리닌그라드 대성당,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38th 퍼포머

: Ksenia Chistuakova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쑤샤(애칭)는 나에게 숙박을 제공한 현지 카우치서퍼다. 그녀 덕분에 아주 편안한 나날들을 보냈다. 내가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쑤샤가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이래저래 신세 진 게 많아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고, 이후 며칠간 그녀의 곁에 바짝 붙어 서울의 명소들을 편히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그녀가 귀국길에 오르던 날도 공항까지 배웅했다. 칼리닌그라드에서 쑤샤에게 큰 호의를 입었기에 그러한 노력들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출국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던 쑤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녀의 방한 후 우정이 다섯 배쯤 더 두터워졌다.



39th 퍼포머

: Ekaterina Mashegirova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의 첫날 밤, 내가 묵고 있던 쑤샤의 집으로 카티아(애칭)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놀러 왔다. 세 방문객이 술과 음식을 들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제법 거나한 밤을 보냈다.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러시아의 공동체 문화가 생각보다 꽤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밤새 웃고 떠들기만 한 게 아니라 저널리스트인 카티아와 열띤 토론도 벌였다. 쟁점마다 날을 세우는 카티아 때문에 자주 진땀을 뺐다. 의견이 다를 때마다 치열하게 논리 공방을 벌여야 했지만 카티아의 이지적인 태도와 합리적인 언변이 내심 보기 좋았다.



40th 퍼포머

: Elena Martynenko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호숫가 소풍은 중국행을 앞둔 엘레나를 위한 작별 이벤트였다. 영어 강사로 발탁돼 중국 현지에서 1년 이상 근무하게 된 엘레나의 영어 실력은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손색이 없었다. 러시아인이 영어를 가르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지만 다른 세상을 구경할 생각에 들뜬 엘레나에게 중국행은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일 것이었다. 그녀는 중국 체류 중 한국에도 여행차 잠시 온 적이 있는데 내가 외국에 있던 때여서 서로 만나지는 못했다. 호숫가 소풍에서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나를 계속 챙겼던 엘레나였기에 한국에서 다시 만났으면 무척 반가웠을 것 같다.  



41st 퍼포머

: Olga Kim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올가는 한국계 러시안이다. 고려인이라는 얘기다. 같은 피가 흐르기 때문인지 나로서는 올가와의 만남이 무척 반가웠다. 뒤풀이로 간 시내의 한 바에서 올가는 사촌 동생이 한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뒷면에 메시지를 빼곡하게 적은 맥주 받침대를 내밀며 한국에 돌아가면 사촌 동생에게 전해줄 수 있느냐고 묻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전령의 역할을 맡았기에 여행을 마칠 때까지 맥주 받침대를 얼마나 애지중지 보관했는지 모른다. 맥주 받침대는 귀국 후 그녀의 사촌 동생을 직접 만나 전달했다. 인증샷을 찍어 보냈더니 올가가 들뜬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42nd 퍼포머

: Katya Yedeleva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호숫가 소풍 참석자 중에는 같은 이름을 쓰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39번째 퍼포머 카티아와 지금 소개하는 42번째 퍼포머 카티아다. 카티아는 흥이 넘치는 친구였다. 다 같이 둘러 모여 휴대용 스피커로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그녀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세 명이 공연에 나섰는데 그중 카티아의 춤사위가 가장 간드러졌다. 나와도 공동 무대를 한 차례 꾸몄다. 소풍 내내 쾌활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카티아는 직업 전선에서는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후에 그녀가 SNS에 올린 사진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관능적인 작품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43rd 퍼포머

: Vladimir Eliseev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소풍에서 가장 인기 좋은 먹거리였던 닭고기 바비큐는 블라디미르의 작품이다. 바비큐 장비 일체와 함께 인도 커리 소스에 재운 닭고기를 들고 온 블라디미르는 소풍 내내 바비큐 화로 앞에서 연신 닭고기를 구웠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바비큐 장인으로 통하는지 블라디미르의 자리를 넘보는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쉴 새 없는 그의 손놀림에 모두가 포식을 했다. 소풍 도중 42번째 퍼포머인 카티아와 이상야릇한 행각을 보이기에 다른 친구에게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물어보니 연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란한 바비큐 솜씨가 카티아의 마음을 훔친 비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44th 퍼포머

: Alexey Volosovich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알게 모르게 나를 많이 챙겨 주었던 알렉세이. 세심한 관심을 끊임없이 베풀어 준  알렉세이 덕분에 러시아 사내들은 거칠고 투박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깔끔하게 깨졌다. 러시아에도 다정다감한 사내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 시종일관 나를 섬세하게 챙겨 준 알렉세이 덕분에 오래된 선입견이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소풍 현장을 누비던 알렉세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 좋은 감정이 밀려오곤 한다. 빅토르 최의 노래를 선곡해 들려주었던 친구도 알렉세이다.



45th 퍼포머

: Max


- 국적: 러시아

- 촬영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막스는 수줍음이 많은 친구였다. 소란스러운 모습은 전혀 없이 오로지 차분한 태도로 일관했는데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것 같았다. 선량한 사람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크게 써붙이고 다니는 막스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알렉세이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사내에 대한 편견을 깨 준 또 한 명의 친구였다. 소풍 당시 올가가 막스를 꽤 적극적으로 챙기기에 수상하다 싶었는데 쑤샤가 한국으로 여행을 왔을 때 물어보니 두 사람의 관계가 한창 불타고 있는 것 같단다. 프로젝트 촬영을 위해 자필 메시지를 적으면서 두 사람이 종이 한 장을 반으로 나눠 사용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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