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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02. 2019

28. 무기력을 치유하는 예술_노비사드, 세르비아

나를 표현함으로써 나를 피어나게 하는 묘약

슬로보데 광장, 노비 사드, 세르비아




3개월 증후군이 시작되었다. 장기 여행을 할 때마다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에 이르면 급격한 소진 현상이 일곤 했다. 체력과 정신력이 방전되면서 의욕이 격감했다. 낯선 곳을 떠돌며 새로운 환경에 날마다 적응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일쑤. 지역 사정에 깜깜한 상태로 도착해 숙소를 알아보고, 먹거리를 해결하고, 정보를 탐색해야 했다. 묵직한 카메라 장비를 메고 이국의 거리를 떠돌다 보면 저녁 무렵에는 시커먼 피로가 납덩이처럼 밀려왔다.  


집중력을 요하는 사진 프로젝트를 동반해 여행하다 보니 에너지의 방전량은 더욱 컸다. 시간을 어렵사리 쪼개 작업을 한 후 그 결과를 인터넷에 공유하고 나면 진이 쫙 빠졌다. 여행 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같이 작업을 한 꼴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적지 않은 작업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전의 여행들 같았으면 퍼졌어도 진작에 퍼졌어야 할 상황. 오히려 제 시점에서 3개월 증후군을 맞이했으니 나름대로는 선방한 셈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베오그라드는 깊고 진한 가을의 무게로 나를 반겼다. 발칸 반도 내에서 대안 문화가 가장 융성하고 있는 곳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절정의 계절을 지난 후였다. 홍대 앞을 10년 이상 거점으로 삼아 온 나에게 대안 문화는 일종의 정서적 뿌리와도 같은 것이기에 도시 곳곳을 쏘다니며 그 흔적을 열심히 더듬었다. 하지만 가을색이 깊어진 베오그라드에서 대안 문화는 숨이 잔뜩 죽어 있는 상태였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문을 박차고 들어가 흥취를 즐겨 보리라 생각했지만 마음을 잡아 끄는 곳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철을 지났음을 알리는 텅 빈 풍경들이 오히려 쓸쓸함을 더할 뿐이었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헛헛했다.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인 스카다르스카,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세르비아 제2의 도시라는 노비 사드로 이동하기로 했다. 현지에 나눔 문화로 유명한 복합 문화 공간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터라 한 번 찾아가 볼 심산이었다. 전시도 가능한 곳이라면 한국에서 인화해 간 사진들로 전시를 타진해 볼까 싶었다. 관계자들에게 현지 나눔 문화의 양상도 묻고 싶었다. 유고 연방이 해체된 후, 연방의 중심이었던 세르비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리하여 지금은 어떤 상태에 도달했는지도 궁금했다. 베오그라드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지만 그러한 의문을 해결해 줄 이는 만나지 못했다.


사진 전시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에서도 한 차례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내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던 르마시가 지역에서 가장 성업 중인 복합 문화 공간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제니알리스티데 클루비’라고 말하면 현지인들이 대충 알아듣는 곳이었다. 르마시가 자신의 단골 공간이라며 나를 끌고 간 그곳은 수많은 청년들로 북적였다. 전시 공간은 물론 공연 공간, 위락 공간, 야외 콘서트 무대, 커피와 술을 마실 수 있는 넓은 마당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공간의 짜임새도 무척 훌륭했다. 국내에 있었다면 금세 전국적 명소로 등극할 만한 환경이었다. 전시회를 타진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공간 측에 사진을 보여 주며 전시가 가능한지 묻자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왕이면 폼 나게 전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중형 사이즈로 재 출력해 액자에 표구하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예술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소형 사진들을 그대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엄숙주의가 지긋지긋해진 시점이었다. 실험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터라 전시 장소는 공식적인 전시벽 대신 중앙 홀의 한가운데에서 공간을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골랐다. 전시의 내용과 작가 소개를 손글씨로 적은 종이를 붙이고, 기둥의 두 면에 사진을 부착했다. 르마시가 사람들의 손이 많이 탈 것 같다며 우려감을 표현했으나 나로서는 손을 많이 타면 많이 탈수록 좋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예술을 더 가까이에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른 자리였다. 경건한 표정의 관람객들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들에 가까이 다가와서 만지고 쓰다듬기를 바랐다.  


후에 르마시가 알려온 바에 따르면, 그가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사진이 하나씩 사라져 있더란다. 방문객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씩 떼어서 집으로 가져간 듯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마지막 사진은 전시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을 무렵 사라졌다고 했다. 그 순간을 기해 전시가 막을 내렸으니 전시의 시작은 내가 했다면 그 마무리는 관객이 한 셈이었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제대로 인터렉션이 이루어진 것이다. 쓰다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을 텐데 지역민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뜯어 집으로 가져갔다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그림이 나온 듯했다. 소식을 전해 듣는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제니알리스티데 클루비, 타르투, 에스토니아


이후에는 거리 사진전을 몇 차례 열었다. 그러나 분주한 일정에 쫓겨 더 이상의 시도는 하지 못했다. 마침 3개월 증후군을 돌파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제껏 예술은 내가 변화를 필요로 하는 길목에 서 있을 때마다 가장 효과적인 처방으로 작용해 왔다. 그중에서도 전시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예술가가 자존을 선언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회이니 당연할 것이었다.


노비 사드에 도착한 직후, 숙소에 여장을 풀고 지역 탐색에 나섰다. 인근을 한 바퀴 돌며 시가지의 형세를 익힌 후 노비 사드의 가장 훌륭한 볼거리라는 페트로바라딘 요새에 올랐다. 여유로운 표정들을 지나쳐 요새 꼭대기에 서자 저 아래로 시내의 전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요새를 둥그렇게 감싸고 흐르는 도나우 강 위로 빨간 노을이 장엄하게 내려앉는 모습이 탄성을 자아냈다. 일몰의 빛깔 변화에 맞춰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홀몸으로 전시를 타진할 생각에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던지라 붉게 타오르는 노을에 시선을 맞추며 용기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페트로바라딘 요새, 노비 사드, 세르비아


이제 문제의 장소로 향할 시간. 심호흡을 한 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공간의 이름은 ‘컬처 익스체인지’(Culture Exchange). 자전거 무료 수리, 세르비아어 수업, 라이브 음악 공연, 영화 상영, 예술 전시회, 커피와 케이크 판매 등 공간의 특성을 설명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기대감을 부풀렸다. 세르비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다채로운 활동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해 더더욱 걸음이 빨라졌다. 물론 그들이 나를 반길지는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부딪치고 볼 일이었다.  


컬처 익스체인지에 도착한 시각은 밤 9시경. 일반 카페라면 활기가 한풀 꺾였을 시각인데 공간의 내부는 불타는 청춘들이 만들어내는 열기로 들끓었다. 그만큼 관리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자전거를 천정에 매달아 놓은 도발적인 실내 인테리어며, 구석구석 드러나는 세월 묵은 흔적들이며, 방문자들의 감각적인 옷차림까지 공간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광경들이 가득했다. 칵테일로 목을 축이며 미리 준비해 온 대사를 속으로 몇 차례 읊조린 후 운영자가 누구인지 문의했다. 곧이어 젊은 주인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등장했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오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까랑까랑한 눈빛과 다부진 인상으로 보아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명색이 전국 최고의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든 주역이니 만만치 않은 인물임이 당연할 것이었다.


내 소개를 한 후,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고는 사진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규격이 작은 휴대용 사진들이라 그 안에 담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크게 인화해서 보면 꽤 괜찮은 사진들인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진을 하나씩 구경한 그녀가 환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고개를 쳐들었다. 멋진 사진들이라는 것. 공간의 입장에서도 근사한 이벤트가 되겠다며 내일 당장 전시를 하자고 제안했다. 3개월 증후군에 휩쓸리면서 무기력해진 기분이 갑자기 기력해졌다.


이튿날 오전 약속한 시각에 맞춰 컬처 익스체인지를 찾았다. 전날 밤 나를 맞이했던 공간 운영자 아나를 포함해 여러 명의 관계자들이 나를 반겼다. 여행을 왔다가 아나를 만나 결혼하면서 세르비아에 정착했다는 미국인 남편 앤디의 상냥하고 친절한 환영 인사가 마음을 여유롭게 했다. 곧이어 사진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주도하고 그들이 거들 줄 알았는데 앤디는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하겠다며 나를 만류했다. 공간에 훌륭한 컨텐츠를 제공해 준 초대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단호하게 나를 막아대던지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향 좋은 드립 커피와 농도 진한 맥주도 한 잔씩 내주었다. 예술에 대한 리스펙을 당연하게 여기는 다정한 서양 친구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생각했다. ‘아 참, 나 예술가였지.’


앤디의 주도로 컬처 익스체인지 관계자들이 두 파트로 나눠서 사진을 디스플레이해 준 전시벽, 노비 사드, 세르비아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71th 퍼포머

: Milos Radic


- 국적: 세르비아

- 촬영지: 노비 사드, 세르비아


다정다감한 상남자 밀로스는 컬처 익스체인지의 관계자 중 하나다. 농담을 툭툭 던지며 활짝 웃을 때마다 사람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상황을 조용히 관망하면서 필요한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해 주곤 했는데 분실물을 추적해 내 가방에 다시 넣어준다든가, 교통국에 전화를 걸어 희소한 정보를 확보해 준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그가 뒤를 받쳐 주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술도 자주 내주었다. 돈은 받지 않았다. 해서 노비 사드를 떠나올 때 키위 한 꾸러미와 귤 한 봉지를 던져 주고 나왔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이런 일은 예외라며 촬영에도 흔쾌히 응해 주었다.



75th 퍼포머

: Ana Stevens


- 국적: 세르비아

- 촬영지: 노비 사드, 세르비아


컬쳐 익스체인지는 우리로 말하면 홍대 앞 살롱문화 1번지인 이리카페 같은 곳이다. 의미 있는 행사들을 지속적으로 기획하면서 커뮤니티도 꼼꼼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전시회를 타진하러 간 날, 나를 맞이했던 이가 아나다. 내가 다녀간 후 한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아나는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여행까지 왔다. 한국에서의 재회는 당연히 반가웠다. 이리카페에도 데려갔다. 최근 이리카페가 젠틀리피케이션 문제를 겪었던 것처럼 세르비아에도 같은 현상이 시작되면서 수년간 승승장구했던 컬처 익스체인지는 얼마 전 문을 닫고 말았다. 무척 슬픈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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