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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03. 2019

29. 나는 숲인가_노비 사드, 세르비아

느닷없는 감정 폭발 그리고 그 결말

컬처 익스체인지의 실내 풍경, 노비 사드, 세르비아




맹랑한 친구들의 습격을 받았다. 전시 당일 저녁, 컬처 익스체인지를 다시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융숭한 대접을 받다 보니 어느새 컬처 익스체인지가 아지트처럼 느껴져 칵테일을 시켜놓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내 주변을 뒤덮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현지 여성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구심에 찬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네가 흥미로워 보여서 그런데 괜찮으면 우리 테이블로 합석해 줄 수 있니?”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 데다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고맙고, 또 현지 문화에 대해 궁금한 것도 있어서 하던 것만 마무리하고 그쪽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테이블에 착석한 나를 향해 그들이 합석을 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를 계속 지켜봤는데 뭔가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단다. 다양한 사연을 지니고 있을 것 같고, 여행 경험도 풍부해 보여서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예감을 받았다고 했다. 해서 나에게 접근해 보는 쪽으로 뜻을 모았는데 이번에는 누가 시도하느냐를 정해야 했단다. 내 인상이 그리 인자해 보이지 않아 거절하면 어쩌지 하고 염려도 했다는 것 같았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둘 중 좀 더 외향적인 친구가 용기를 발휘해 내 자리로 찾아왔다.


습격 배경을 밝힌 그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을 소개했다. 두 사람의 이름은 똑같았다. 둘 다 티야나. 내 자리로 찾아온 친구는 어문학을 전공하는 신장 180cm의 티야나(이하 큰 티야나)였고, 자리에 남아 있던 친구는 사회학을 전공하는 보통 체구의 티야나(이하 작은 티야나)였다. 자기소개를 마친 후 양국의 문화에서부터 여행에 이르기까지 수 시간에 걸쳐 시끄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작은 티야나가 특히 적극적이었다. 낯가림이 있어서 낯선 이에게 말을 잘 걸지 못한다고 자신을 설명했는데 한 번 불이 붙으니 꺼질 줄을 몰랐다. 말풍선이 테이블 위로 어찌나 어지럽게 떠오르는지 발언을 서로 치고 들어가서 자신의 주장을 욱여넣기에 바빴다.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의 대화여서 그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 컬처 익스체인지가 문을 닫는 시각까지도, 더 나아가 막차가 끊기기 직전까지도 대화는 끝이 나지 않았다. 술값은 작은 티야나가 쐈다. 나도 술값이 있었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의 온정을 받아들였다. 잘 베풀려면 잘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작은 티야나는 이튿날 빡빡한 수업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반면 큰 티야나는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해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프리다 카페에서 큰 티야나 & 밀리차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 순간을 기록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고 한 컷, 노비 사드, 세르비아


이튿날, 큰 티야나가 밀리차라는 친구를 약속 장소에 데리고 나왔다. 프리다 칼로를 모티브로 한 그들의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다시 수다의 장을 열었다. 전날 장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티야나와의 관계는 충분히 예열해 둔 상태였는데 이제 막 인사를 나눈 밀리차와도 금세 말문을 텄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가 삽시간에 상당한 깊이를 만들어 냈다. 안전한 느낌을 받았는지 그들이 내밀한 사연을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부터 현재 직면해 있는 문제들 그리고 자신만의 장점, 고유성까지 각자의 개인사을 제법 상세하게 나열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의 높이를 맞추려고 애쓰는 사이, 마음 한켠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두 사람을 만나기 며칠 전, 내면에서 리듬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개월 증후군으로 인해 무기력이 찾아오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사람과 맞닿는 횟수가 적어졌고, 여행의 일상도 슬슬 공회전했다. 내 안에 있던 것들 중 무엇이 사라졌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리듬이 없어졌다. 박동이 사라지니 영혼도 시들시들해진 듯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다가 예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꽤 오랫동안 기분 좋은 경험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예술의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때문이었다. 지친 상태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I am a forest’ 작업에 집중했고, 거리 사진전도 몇 차례 열며 감각을 계속 활성화시켰다. 창조적인 에너지를 주고받기 위해 현지 예술가와의 접촉도 꾸준히 시도했다. 그럴수록 내면에서 리듬이 생동했고, 몸과 정신도 덩달아 탄력 있게 움직였다. 누굴 만나도 반갑고, 농담도 잘 나오고, 상대가 뭘 하자고 하면 흔쾌히 응하고, 선순환이 계속 이루어졌다. 컬처 익스체인지에서의 전시도 예술의 힘을 빌려 슬럼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결국 전시를 성사시켰고, 그 결과로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았으나 아직까지도 공허한 느낌은 남아있었다. 나의 건재를 목청 높여 선포할 결정적 한방, 살아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무언가가 필요했다.


숙고 끝에 거리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혼자서 광장에 나가서 자필 메시지를 들고 서 있기로 한 것이었다. 낯선 현지인들을 관객으로 삼아 나 자신을 전시물로 내놓는 행위예술의 실연, 내 식의 자존 선언, 참을 수 없는 실존의 몸부림이었다. 소식을 듣자 하니 한국에서는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촛불 시위가 한창이었다. 묵묵부답인 정부의 태도에 시민들의 항의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무의식에서는 더욱 과격한 움직임이 일고 있을 것이었다. 사실 ‘I am a forest’ 프로젝트도 거기에서 얼마간의 동력을 끌어 쓰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일었다. '낯선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세계인들에게 숲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나는 과연 숲 같은 존재인가?' 답답했다.


거리 예술가들이 교각의 바닥에 새겨 놓은 글귀, 노비 사드, 세르비아


커피가 식어갈 무렵, 밀리차와 큰 티야나에게 제안했다. “우리 인생살이도 괴로운데 광장으로 나가자.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며 자존을 과시하자.” 그들이 대답했다. “그러자.” 이후 지역의 중심인 슬로보데 광장으로 이동해 셋이서 나란히 서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I am a forest’라고 적은 자필 메시지를 들고 가만히 서 있는 피케팅 퍼포먼스. 각자의 아픔을 건너 여기까지 온 우리가 변함없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또한 숲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돌보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 낯선 존재들끼리 깊은 신뢰로 맞닿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나무들처럼 더불어 살자는 얘기를 행위로 전하고 싶었다. 


자필 메시지를 들고 서 있는 우리를 수많은 사람들이 유심히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키득키득 웃기도 했고,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드물게 공감의 표정을 보내온 이도 있었다. 무대 위에 서면 언제나 객석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곤 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우리를 우습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그러한 표정들에서 호기심, 혼돈, 공포 등 그들의 내면에서 진동하는 진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눈에는 명백히 포착되는 감정을 정작 스스로는 모르는 듯 보이는 이도 꽤 있었다. 집안일 때문에 밀리차가 먼저 대열을 빠져나간 후, 큰 티야나와 둘이서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혼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 홀로 퍼포먼스가 당초의 계획이었다. 잠시 물러나 줄 수 있느냐는 내 물음에 큰 티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열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내가 퍼포먼스를 마무리할 때까지 근처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살풀이를 하고 났더니 기분이 한결 후련해졌다. 내면의 움직임도 더욱 약동하기 시작했다. 큰 티야나는 나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지역의 중심 슬로보데 광장, 노비 사드, 세르비아


퍼포먼스 직후, 큰 티야나가 귀가를 알려왔다. 과제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다시 대화가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도저히 끊어지지 않아 일단 그녀의 집 방향으로 같이 걷기로 했다.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 앞.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그녀가 자신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던졌다.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집으로 전화를 돌린 그녀가 엄마의 도마질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큰 티야나의 뒤를 따라 실내로 들어서자 그녀의 엄마 고리차와 동생 페타르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그녀의 엄마가 밥을 짓는 동안 191cm 키의 우람한 고교 농구선수 페타르는 체격에 걸맞지 않게 연신 호들갑을 떨어댔다. 한국인을 처음 만나 본다며 사소한 일에도 신기해하는 표정을 감추치 않았는데 그 명랑하고 솔직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페타르의 쾌활한 말투와 허를 찌르는 유머에 가옥의 지붕이 자주 들썩였다.


그녀의 엄마가 해 준 스파게티와 현지 스타일의 가정식 수프는 집밥에 굶주려 있던 나에게 행복감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외에도 커피와 맥주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대접받았다. 그녀의 엄마 역시 큰 티야나 못지않게 영어 솜씨가 좋았는데 그 덕분에 영화, 문화, 역사 등을 주제로 삼아 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큰 티야나의 성숙한 면모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현지 가정에서 펼쳐지는 단란한 풍경을 구경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 그들의 가정에서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가슴이 뻐근해졌다.


큰 티야나네 가족, 노비 사드, 세르비아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72nd 퍼포머

:  Tijana Ristic(작은 티야나)


- 국적: 세르비아

- 촬영지: 노비 사드, 세르비아


스스로를 낯가림이 엄청 심하다고 소개해 놓고 첫인사를 나눈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던 작은 티야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깊은 그녀 덕분에 되도 않는 영어로 끝장 토론을 벌였다. 안 그래도 뼈만 앙상했던 내 영어가 더욱 너덜너덜해졌다. 그럼에도 지구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언지를 되짚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불붙은 두 번째 토론으로 인해 그녀는 막차마저 놓칠 뻔했다. 다음날에는 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마주쳤다. 과제를 위해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그녀였으나 세 번째 토론이 시작되는 바람에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73rd 퍼포머

: Tijana Sucur(큰 티야나)


- 국적: 세르비아

- 촬영지: 노비 사드, 세르비아


자신들의 자리로 합석을 청했던 큰 티야나. 풍부한 호기심이 그녀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다가서는 성격이다 보니 지식도 풍부했고, 문화예술에 대한 소양도 깊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을 받았다. K-Pop에 관심이 많기에 해당 산업의 흐름이 대중예술에서 기능성 조립 상품 생산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당연히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대답.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실제로는 K-Pop에 광분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몰래 제보한 이는 그녀의 동생인 페타르였다. 편히 음악을 즐기라고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74th 퍼포머

: Milica Mihajlovic


- 국적: 세르비아

- 촬영지: 노비 사드, 세르비아


큰 티야나가 데리고 나왔던 밀리차. 그들의 단골 공간이라는 프리다 칼로를 모티브로 한 카페에서 꽤 긴 시간 동안 기탄 없는 대화를 나눴다. 내면에 쌓인 트라우마, 현재의 고민, 절친에게도 여간해서는 털어놓지 않는 개인사 등 꽤 육중한 이야기를 해주기에 안전한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혹시나 내 태도가 미숙해 또 다른 상처를 안기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했는데 다행히도 대화가 편안하다고 했다. 신뢰의 마음으로 자신의 속사정을 공유해 주어서 고마웠다. 어린 시절 부침이 컸던 밀리차는 최근의 일상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 얘기를 전하는 음성이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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